한국건축답사수첩 & 빅토리아의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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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답사수첩

다양한 우리의 양식과 대표 건축물

한국건축역사학회 편, 동녘, 2만8000원

한국건축역사학회 편, 동녘, 2만8000원

건축은 당대 분위기와 정서를 대변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딕, 로코코, 로마네스크 등처럼 건축이 유행을 타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건축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실용성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용성을 무시하고 예술성만 강조하다보면 다른 건축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예술성을 무시하면 볼품이 없어진다. 개발과 성장 위주의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던 지난 시절의 네모난 회색건물이 얼마나 우리를 숨막히게 했던가.

그렇다고 우리 민족이 건축에 문외한인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나라에는 다른 어떤 국가의 건축보다 빼어난 예술성을 자랑하는 건축이 아주 많다. 뿐만 아니라 요즘 말로 인체공학적인 설계와 시공도 했다. 온돌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한국건축은 변화가 많았고 그만큼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다.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면이 숨어 있으면서 높은 기단으로 위엄을 표현해낸 궁궐, 온돌방과 대청마루가 이어져 있고 방마다 창문이 달려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살림집, 외국의 건축요소와 우리의 토착적인 요소가 잘 어울리면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청이 압권인 불교사찰,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며 절제미를 보여주는 유교 건축…. 이 건축이 모두 한국건축이다.

한국건축의 대부분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2002년 시작해 무려 4년 만에 책으로 탄생한 ‘한국건축답사수첩’이 그것이다. 어느 한 필자의 집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건축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학자 수십 명이 모여 함께 기획, 집필한 책이다. 필자가 여러 명인 까닭은 다양한 한국건축을 한 사람이 모두 꿰뚫어보는 것보다는 각자 세부전공 분야의 권위자가 하나씩 구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기획의도에 있다.

한국건축을 학술적으로 접근한 이 책은 충실한 답사안내서라고 볼 수도 있다. 답사하고 싶은 곳을 찾아 이 책과 함께 건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건축의 특징과 정보는 물론 건축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기도 한다. 책의 크기를 작게 한 것도 휴대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답사안내서가 지역별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이 책은 궁궐과 관아, 마을과 읍성, 살림집, 원림과 누정 등 건축 유형별로 구성된 특징을 갖고 있다. 건축 유형별 구성을 택함으로써 각 장 첫머리에 해당 유형의 역사와 특성을 개괄하고 이후 대표할 수 있는 건축물을 소개했다. 이 구성 덕분에 제1장에 한국건축 역사 개요, 제2장에 구조와 시공이라는 제목을 정해 한국건축을 통째로 조명했다.

이 책이 중점을 둔 것은 조선시대 건축이다. 오늘날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건축이 조선시대의 것이라는 점도 한 이유겠지만 그보다 조선시대 건축이 조형예술상 한국건축의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둥, 천장, 난간, 창호 등 건축 각 부분의 특징을 상세히 설명해줌으로써 건축을 세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은 후반부의 ‘자료편’으로 보충했다.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 책 한 권이면 한국건축의 웬만한 부분은 다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견상 책의 크기에 비해 값이 다소 비싸 보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볼 때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빅토리아의 발레

칠레인 밑바닥 인생의 애달픈 사랑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문학동네, 1만2000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문학동네, 1만2000원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작가들이 자주 썼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기법 역시 친숙하다. 그러나 ‘마술적’이라는 매력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설은 해석해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독재정권과 내전, 마약과 범죄가 난무했던 지난 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을 당대 작가는 고스란히 옮겨놓기보다는 마술적 기법을 사용해 비유했다.

하지만 한 지역의 문학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사용하는 기법이 모두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라틴아메리카 역시 모든 작가가 마술적 리얼리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민주화운동의 거센 불길이 잠잠해졌고 억압적인 독재정권도 대부분 물러난 상황은 라틴아메리카 작가에게 삶과 문학의 다양한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여유를 준 것 같다. 일상을 재치 있게 묘사한 마르셀로 비르마헤르의 ‘유부남 이야기’가 찬사를 받고 비르마헤르라는 작가가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부상할 수 있던 것도 라틴아메리카의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2003년 발표된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빅토리아의 발레’ 역시 읽고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3년 스페인어권의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고 하는 ‘플라네타상’ 수상작이다. 말 한 마리를 훔쳐 감옥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예쁘장하다’는 이유로 동료 수감자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미소년 앙헬 산티아고, 앙헬의 복수를 두려워하는 간수의 사주를 받아 가석방된 살인범 리고베르토, 모범수로 석방된 전문 금고털이 니코, 피노체트 정권의 횡포에 아버지를 잃고 학교에서마저 퇴학당한 발레리나를 꿈꾸는 빅토리아,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네 명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엄밀하게 말하면 앙헬과 빅토리아의 사랑 이야기이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가 주무대지만 작가는 번화한 거리보다는 뒷골목에 초점을 맞추고 곡절 많은 삶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작품에 묘사된 모습과 등장인물 네 명의 일상은 현재 칠레의 밑바닥 인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저마다 깊은 상처를 안고 있고 현재 삶도 무척 고달프지만 작가는 결코 암울한 문장을 쓰거나 절망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는다. 그보단 오히려 유머러스한 문장과 낙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밑바닥 인생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비록 고달프지만 삶은 저버릴 수는 없음을 강조한다. 앙헬과 빅토리아의 진실한 사랑이 이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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