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비극,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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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빅5’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건물에서 추락한 중학생이 2시간 동안 응급실을 찾아다니다가 심정지로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인 길병원은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소아과 전공의 충원율은 16.6%에 불과했다.

박송이 기자

박송이 기자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도 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년째 그대로인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3058명으로 동결 상태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OECD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OECD 보건 통계 2022’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평균인 3.7명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적인 숫자 증가와 함께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배출된 의사들이 수도권,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 인기과, 개원의로만 편중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2022년 7월 기준 서울(3.45명), 대전(2.63명), 대구(2.62명)순이었고, 가장 낮은 세종은 1.31명으로 서울과 2.6배 차이가 났다. 이어 충남(1.54명), 경북(1.39명) 수준으로 낮았다. 2022년 전공의 충원율은 소아청소년과 28.1%, 흉부외과 47.9%, 외과 76.1%, 산부인과 80.0%로 정원 미달됐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수년 전부터 계속돼왔다. 안타까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업무계획으로 내놓은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의 반대를 넘어 붕괴된 의료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의대 정원의 단순 확대를 넘어 왜곡된 의료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종합적인 ‘인력 공급’ 정책이 제시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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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