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룸메이트를 죽이고 싶어’ 괴담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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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룸메이트를 죽이고 싶어’라는 괴담을 아시는지. 요약하면 이렇다. 어느 날 일본의 유명 익명게시판 사이트인 ‘2ch’에 이런 제목을 단 글이 올라왔다. ‘왜 죽이고 싶냐’라는 답글에 룸메이트에 대한 욕을 실컷 늘어놓은 작성자는 “200번째 댓글을 단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선언한다. 200번째 댓글을 단 이는 “죽이는 쪽으로 가면 재미있겠는데…”라는 글을 올리고, 작성자는 “당첨”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인터넷 방송으로 한 남자가 목을 매 죽는 장면이 실시간 중계된다. 작성자가 룸메이트라고 쓴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 자신을 비하하며 올린 글이었다.

유튜브 아이템의 인벤토리 캡처

유튜브 아이템의 인벤토리 캡처

“말하자면 2ch 번역글의 형식을 빌려 만든 하나의 공포소설인 셈이죠.”

지난 8월 2일 한 유튜버가 올린 ‘인터넷의 온갖 기이한 사건들’이라는 영상(사진)의 결론이다.

실제 돌아다니는 ‘룸메 괴담’에는 사진이 붙어 있다. ‘룸메 괴담’은 허구지만 사진의 ‘사건’은 진짜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영상에 따르면 ‘룸메 괴담’의 최초 작성 시점은 실제 사건 전이었고, 실제 올라온 글 밑에는 가림글로 “사실 여기 창ㅋ작ㅋ방”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영상은 저 괴담을 ‘거짓’으로 판명하고 있다. 체크해 보자.

실시간 중계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2010년 11월 9일이다. 당시 정리 글에 따르면 “그 실시간 채팅방에 있던 사람들도 작성자가 결행에 옮긴 순간이나 한참 뒤에도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한 ‘퍼포먼스’인 줄 알았다”고 회고한다.

앞서 괴담 글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2014년께부터다. 창작 글에 실제 사건 사진을 덧붙여 그럴듯하게 만든 것이다. 의아한 것은 창작 글이 나온 시점이다.

‘오늘의 유머’에 asfasdf라는 사용자가 글을 올린 시점은 2010년 9월 1일.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이다. 구체적 팩트는 다르지만 실제 사건을 예견하는 듯한 내용이다. 두 달 후, 자신이 올린 창작 글과 거의 흡사한 사건이 실제 2ch를 무대로 발생한 것에 대해 창작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유명 괴담이 괜히 괴담으로 살아남는 건 아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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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