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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을 강정처럼 밀어붙이면 감당 못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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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식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 어떤 방식이든 주민의견 공론화 강조

전날 내린 비로 바람이 세게 불면 텐트 안으로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찬바람이 열린 입구 사이로 들어왔다.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사이 대로변에 있는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이하 비상도민회의)의 농성 천막 안에서는 한기를 피하기 어려웠다. 이곳에서 박찬식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56)은 16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지난 10월 31일 제2공항 건설에 동의하는지 묻는 도민 공론화 절차를 지원하는 도의회의 특위 구성안이 심사보류로 본회의에 회부되지 않자 그날부터 이곳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박찬식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이 11월 19일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박찬식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이 11월 19일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그는 도의회가 ‘제2공항 건설 갈등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한 11월 15일 단식을 멈췄다. 박찬식 상황실장은 지난 11월 18일과 20일 인터뷰에서 국토부가 환경부의 보완 요구와 주민 공론화 요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기본계획 고시를 강행하려 한다며 청와대가 공론화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만이라도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최근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됐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도의회의 특위 운영을 지원하겠지만 공론화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원 지사는 그간 도의회의 공론화 요구를 줄곧 거부했다. 본인이 알아서 이쪽저쪽 의견을 듣는다는 건데 ‘강력 추진’이라는 본인 생각대로 국토부와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의회 차원에서는 찬반 의견을 분명히 낸 도의원이 없다. 도의회가 앞으로 할 일은 민간 전문가나 찬반 양쪽을 포함한 인사들로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최종 결정까지 어떤 공론화 과정을 거칠지 합의하는 것이다.”

-공론화 과정으로 염두에 둔 절차가 있을까?

“공론조사와 주민투표 방식이 있다. 공론조사 방식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배심원단을 300~500명 규모로 구성해 이들이 찬반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기회를 제공하고 배심원단 토론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아는 상태에서 판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공론화 조사를 선호한다. 주민투표를 하면 결국 세력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고 조직력이 강한 쪽이 우세하게 된다. 행정 조직의 지역사회 영향력과 건설업자, 토건업자들의 자금력이 동원되면 도민 의견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주민투표 방식이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거부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이든 의견을 물어야 한다.”

-국토부가 지난 6월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해 환경부의 검토요청을 받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조류 충돌 위험성을 경고하며 대안 검토를 요구했으나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제출했다.

“조류 충돌 예방, 철새도래지 보호 같은 검토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1년 이상 걸릴 사안인데 불과 한 달여 만에 본안을 냈다. 환경부 의견을 아예 무시한 것이다. 국토부는 연내 고시를 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보완서를 내려 할 것이다. 환경부가 국토부의 보완서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은 낮고 2차 보완을 요청하거나, 조건부 동의할 수 있는데 조건부 동의할 경우 국토부가 고시할 가능성이높다. 결국 청와대가 통제해 공론화 과정이 끝날 때까지 고시를 중단시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제2공항 문제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는 상당히 힘들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제주도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상황 파악을 정확히 못 하는데 보고가 잘 되지 않는 듯하다. 제주공항의 수용능력이 현재 포화상태라고 생각하지만 제주공항은 이미 연간 여객수용 능력이 3200만 명 규모로 확장됐다. 제주도민이 제2공항을 결정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사실상 국토부, 정부가 결정한 것인데 개입할 수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어쨌든 도민이 결정한 대로 지원하겠다는 말씀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나 여당에서 도의회에서 진행하는 도민 의견 수렴 과정을 지원하고, 또 그 결과를 존중해서 정책을 결정하길 바라고 있다.”

-제2공항의 대안은 무엇인가.

“현재 공항을 확장하는 게 최선이다. 세계적 공항설계업체인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도 현 제주공항 개선으로 국토부가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제시한 ‘제주도의 장기 항공 수요(2045년 기준)’인 4560만 명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수요예측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4043만 명으로 줄었고, 기본계획에서 3891만 명으로 줄었다. 4500만 명도 가능하다는데 안 될 이유가 없다. 현재 공항의 관제시스템을 개선하고 국제선 터미널을 따로 짓고 계류장을 넓히는 데 3만 평이 안 되는 걸로 나온다. 주민 내쫓고 환경을 훼손하면서 왜 150만 평이나 되는 땅을 콘크리트로 덮나. 제2공항은 어떤 측면에서도 합리성과 적정성을 갖지 못한 계획이다. 지난 9월 22일 전략환경영향평가 공청회에서 집요하게 질문했는데도 아무도 답변하지 않았다.”

-현재의 방문객이 제주도의 환경수용면에서 너무 많다는 지적을 했다.

“2000년대 초반 올레길이 나오면서 제주의 매력이 재발견된 측면이 있고, 공급 측면에선 저가항공이 늘면서 쉽게 다녀올 수 있게 됐다. 이런 환경에서 제주 관광객이 2005년 500만 명에서 2010년 1500만 명 수준으로 늘었다. 제주보다 훨씬 큰 하와이가 860만 명, 오키나와도 연간 865만 명 수준이다. 제주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다보니 쓰레기 10만 톤이 처리가 안 될 정도로 쌓여 있다. 하수처리 시설도 용량을 초과해 정화되지 않은 물이 바다로 흘러든다. 중산간과 해안가에 온갖 리조트와 골프장 등 대규모 관광단지가 들어서면서 경관을 잃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땅값·집값이 폭등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영세상인들은 장사를 포기할 정도다. 지난 20년간 어떻게든 자본을 유치해 개발만 하면 제주도의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 엄청난 후유증을 낳고 있다. 모든 대규모 개발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때다.”

-국토부가 공항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제주의 항공수요를 어떻게든 늘리고 싶은 것이다. 육지에 공항이 많이 지어졌는데 김포·김해·제주·인천을 빼곤 적자 상태다. 국내 다른 지역끼리의 노선은 KTX가 생기면서 급격히 줄었다. 제주노선이 아니면 이 공항들의 적자는 훨씬 커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제주공항을 어떻게든 확장하려는 것이다. 제주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강정 해군기지 문제에서 제주도민이 상대적 관망 내지 방관의 자세를 보였다면 이번엔 제주도민 전체의 이해가 걸려 있다. 강정 해군기지는 안보상 이유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제2공항을 그런 식으로 밀어붙이면 감당 못 할 것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비서실장으로 청와대에 있을 때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해 도민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대통령으로서 이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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