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용의 환경보건이야기 ‘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15) 석면피해 인정자 2334명 중 절반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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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석면폐 인정자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정지열씨와 그 가족의 경우와 같이 충청남도에 몰려 있는 석면광산지역의 주민들에게서 석면폐가 집단적으로 검진되기 때문이다.

올해 72세인 정지열씨는 정부가 인정한 석면피해자다. 정지열씨가 사는 곳은 충남 홍성군 광천면이다. 광천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컸다는 석면광산이 있다. 석면이 폐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고 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광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석면광산이 제법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석면광산을 개발했고, 1970년대부터는 석면수요가 많아져 대부분 수입했기 때문에 국내 석면광산은 폐광돼 충남·충북·경기·강원 등 석면광산이 있는 지역의 주민들도 잘 모르는 일이 돼버렸다.

석면은 불에 타지 않고 열을 차단하는 성질 때문에 매우 중요한 산업자원이자 군수물자였다. 군함의 경우 뜨거운 보일러를 덮는 단열재로, 온수를 공급하는 파이프를 이어주는 개스킷으로, 용접작업을 할 때 불꽃을 막아주는 용접포로, 석면실을 엮은 각종 석면섬유용품 등으로 사용됐다. 세계의 석면은 캐나다 퀘벡에 있는 대규모 석면광산에서 주로 공급되었는데,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석면 수입을 못하게 되자 식민지에서 석면광산을 찾아낸 것이다.

정지열씨가 사는 홍성과 보령 일대에는 크고 작은 석면광산이 수십여 개나 산재한다. 석탄광산의 경우 땅속 깊숙이 파고들어가야 하지만 석면광산은 지표면에 발달해 있어 땅표면에서부터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노천광산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석면광산의 특징이 석면광산이 있던 지역에 석면 공해피해의 재앙을 부르는 지형학적인 배경이 됐다. 석면광맥이 발달한 암석을 폭약으로 깨서 산 아래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터로 옮겨와 다시 이를 잘게 부숴 석면광맥 부분만 골라내 차로 실어내갔다. 남은 돌들은 여기저기 방치하게 되는데, 이 돌들에도 석면광맥의 흔적이 남아 주변을 오염시킨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 곳곳에 이런 식의 석면광산 시설이 존재하다보니 수십 년 동안 주민들이 사는 논과 밭, 그리고 도로 환경은 석면이 섞인 돌과 토양으로 뒤덮여졌다. 보령시 청소면의 한 마을은 논과 밭은 물론이고 집터와 마당도 모두 과거 석면광산이 가동될 때 나온 광산 잔재들로 이뤄졌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석면광산인 충남 홍성군 광천면 소재 광천석면광산의 2009년 전경. 지금은 메워지고 폐쇄되었다./환경보건시민센터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석면광산인 충남 홍성군 광천면 소재 광천석면광산의 2009년 전경. 지금은 메워지고 폐쇄되었다./환경보건시민센터

광천지역 일가친척 71명 중 26명 질환

정지열씨는 10대 때 친척들을 따라 석면광산에서 일했다. 어른이 돼서는 외지로 나가 직장을 가졌다가 다시 돌아와 광천에서 살고 있다. 마을의 남자들은 대부분 정씨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마을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20대까지 살다가 외지로 시집을 갔는데, 상당수는 충남지역에 살아 결국 다른 석면광산 지역에 옮겨간 셈이다. 외부에서 시집오는 경우도 주변환경이 비슷했다. 남자들은 광산일을 했고, 여자들은 석면으로 실을 짜는 물레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석면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정씨의 경우 일가친척들이 가까이 모여 살았는데, 어릴 적 석면광산에서 일하는 경우가 흔했다.

2007년쯤부터 시작된 정부의 석면피해조사로 광천지역 주민 다수에게서 석면질환이 검진됐다. 정지열씨가 일가친척들을 조사해보니 71명 중에서 석면질환 피해자가 26명이나 됐다. 37%로, 이 가운데 10명은 이미 사망했다. 이들 중 14명이 석면광산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고, 8명은 사망했다. 나머지 12명은 석면광산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 순수한 거주환경 속에서 석면에 노출된 경우로, 2명이 사망했다. 26명 중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인정된 이들은 18명이다. 질환의 종류는 폐암 4명, 석면폐 10명이다.

석면은 광물이지만 섬유형태를 띠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고 매우 가벼우며 부드럽다. 때문에 공중에 떠다니다가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와 폐조직에 박힌다. 불에도 타지 않는 강한 성질 때문에 녹지 않고 염증반응을 일으키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암조직으로 변한다. 석면이 일으키는 질환은 악성중피종암, 폐암, 진폐증의 일종인 석면폐가 대표적이다. 석면피해구제법은 이 세 가지 질병을 공식적인 석면질환으로 인정한다. 2014년부터는 폐를 둘러싼 조직이 두껍게 되는 미만성흉막비후도 인정질환이 됐다. 세계보건기구는 후두암, 난소암도 석면질환으로 인정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은 2009년부터 모든 종류의 석면 사용을 금지했다. 석면원료나 석면이 함유된 제품의 수입과 사용도 안 된다. 2006년 일본에 이은 아시아 두 번째 조치였다.

[최예용의 환경보건이야기 ‘환경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15) 석면피해 인정자 2334명 중 절반이 사망

1급 발암물질로 2009년부터 사용 금지

1급 발암물질 석면은 주로 석면광산, 석면원료를 이용한 제품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질환을 일으켜 직업병 문제로만 인식돼 왔다. 그러다가 각종 석면제품을 사용하는 소비과정에서도 석면 노출이 만성적으로 일어나 소비자나 일반 시민들이 석면피해를 입게 되면서 환경문제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08년 환경단체, 노동조합, 석면피해자, 의료전문가들이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를 결성해 조직적인 석면피해 대책활동에 나섰다. 네트워크는 2009년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해 석면피해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고, 그해 말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됐다. 2011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 법은 악성중피종, 폐암, 석면폐 등 세 가지 질환자들에 대해 석면 관련성 확인을 거쳐 치료비와 요양비 등을 지원한다. 재원은 석면을 다룬 산업계로부터 기금을 거둬 운영한다. 직업적인 석면 노출의 경우는 산업재해보상제도에 의해 산재처리되고, 일반 시민들의 경우 석면피해구제법으로 지원된다. 두 가지 법의 용어에서 사용되는 보상과 구제는 같은 질환이지만 지원되는 금액에서 최고 10배가량 큰 차이를 보인다. 가령 직업성 악성중피종암의 경우 수입에 따라 2억~3억원의 산재보상금이 나오지만 구제법에서는 3000만~4000만원에 불과하다.

2016년 한 해 동안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공식 인정된 석면피해자들은 모두 47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1.5%인 54명이다. 2011년부터 시행된 석면피해구제법으로 인정된 석면피해자는 모두 2334명이다. 사망자는 27.3%인 637명이다. 여기서 사망자는 피해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유족이 피해인정을 신청해 인정된 경우다. 따라서 2011년 이전에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1년 석면피해구제법을 시행하면서 예상하기로는 처음 2~3년은 사망자 신고가 많겠지만 이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봤다. 실제 인정자가 2011년에 459명이었고, 사망자는 절반가량인 210명이었다. 2012년에는 인정자 456명·사망자 226명이었다. 그리고 2013년과 2014년에는 인정자가 346명, 270명으로 줄었다. 사망자도 59명, 43명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그러다가 2015년과 2016년에 인정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333명, 2016년에는 470명으로 이 법 시행 초기보다도 많아졌다. 사망자는 거의 늘지 않아서 2015년 45명, 2016년 54명이다. 결국 생존 환자수가 늘고 있는 것이다.

질환별로 살펴보면 악성중피종암은 줄어드는 추세이고, 폐암과 석면폐는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구제법 시행 초기 2년 동안은 악성중피종이 절반을 넘었지만 2013년부터는 석면폐가 60%를 넘는다. 이렇게 석면폐 피해자가 많은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석면폐는 다량의 석면에 오랫동안 노출된 대표적인 직업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석면폐 인정자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정지열씨와 그 가족의 경우와 같이 충남에 몰려 있는 석면광산 지역의 주민들에게서 석면폐가 집단적으로 검진되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인정된 전체 석면피해 구제자 2334명의 절반가량인 1184명이 석면폐인데, 이들 대부분이 충남지역 주민들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환경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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