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경제위기를 키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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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와 기업이 힘들면 정부가 지출을 늘려 숨통을 틔워줘야 하는데, 곳간을 닫아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안광호 기자

안광호 기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지난 10월 18일 내놓은 ‘정부지출 감소가 경제위기의 진앙지’ 보고서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경제의 핵심 주체인 가계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정부가 나서서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건전재정’이라는 명분 아래 되레 지출을 줄이며 경제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그나마 0.6% 성장했지만, 정부지출 기여도는 마이너스(-)0.5%포인트를 기록했다.

정부는 올해 6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세수 부족 사태와 관련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연일 강조한다. 증세를 통한 안정적인 세수확보나 적극적인 재정운용을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세수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예산 불용(미집행)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강제 (예산) 불용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일선 현장에서 순탄하게 예산을 집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정 여력이 떨어지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취약계층 대상 복지지출이 우선 삭감될 여지가 크다. 조세지출은 오히려 늘었다. 검증된 적 없는 ‘낙수효과’를 믿고 세 부담을 줄이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리란 기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자린고비 재정’으로 일관하는 동안 가계와 기업 등 민간의 부담은 커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명목 GDP 대비 가계와 기업의 빚은 올해 1분기 224.5%에서 2분기 225.7%로 늘었다. 역대 최고치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특히 가파르다.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10월 19일 기준)에서만 9월 말 대비 약 3조4000억원이나 늘었다. 계속된 고금리 상황에서 민간의 빚이 늘면 소비와 투자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까지 1년째 감소세다. 이러니 소비, 투자, 수출 등이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위기’의 발생 책임이 지출을 줄인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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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