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업계에서의 노조 조직률은 극히 낮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안팎의 문화적 이유가 있다.
네이버에 노조가 결성되었다. 규모도 상징성도 큰 IT 기업이기에 이제 노동3권으로부터 소외된 혹은 자유로워 보였던 IT에도 드디어 노조 조직률이 높아질지 궁금해진다. 조합이란 결국 무엇인가?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도와주겠다는 상호부조의 연대를 말하니, 내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콕 집어서 사측과의 마찰이 있을 때 요긴하다. 피고용인 1인이 파편화되었을 때 이미 하나의 시스템인 경영진과 대등한 교섭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국내 IT업계에서의 노조 조직률은 극히 낮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안팎의 문화적 이유가 있다.

네이버 설립 19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가 창립됐다./경향DB
우선, 실리콘밸리풍 반조합의식의 영향이다. 실리콘밸리에는 노조가 없다. 이미 1970년대부터 인텔 등 밸리의 창업자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술업계에서는 전통적 노동 스타일에 집착하는 노조가 없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컨센서스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노사대립이라는 미국 동부의 문화와는 다른 노사공존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몽상이 그곳에는 상존했던 것.
이 몽상에는 근거가 있었다. 밸리에 뿌리내리는 기업들은 모두 전례 없는 성장산업이었다. 함께 나눌 파이가 커질 참이었다. 게다가 늘 인재가 부족한 구직자 위주의 노동시장이기에 노동자로서도 권리를 충분히 획득했다고 믿기 쉬웠다. 다른 시민 대비 평균 2~3배에 달하는 급여와 후생은 나는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을 형성해 조합 결성을 회피하게 했다.(이 여파로 셔틀 운전사나 카페테리아 직원 등이 산별노조로 뭉치는 일은 있다) 노조에 기댄다면 취약한 인재로 보이게 될까 두려웠고, 어차피 일자리는 많으니 노조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이직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력 관리였다. 철저한 능력주의와 이를 긍정하는 노동자들이 유입되며 그렇게 수십 년간 반조합의식을 완성해 갔다. 이 의식이 밸리의 다른 문화와 함께 수입되었다.
두 번째로 국내 IT 노조 조직률이 낮은 이유는 기업별 노조라는 한국적 전통 탓이다. 대기업·공기업이 사회안전망을 대신하고 있는 사회에서 기업별 노조란 이 안전망의 보루였다. 그런데 이 안전망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영세기업·스타트업·SI파견기업 등에 밀집된 다수의 IT 인구는 비빌 곳이 없다. 산별노조가 갑을병정 어디에서 일하는 하청 개발자나 디자이너라도 내가 가진 직능 전반에 대해 보호를 해주는 모델을 취해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음은 실리콘밸리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 네이버노조의 공식명칭은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로 엉뚱한 산별노조 소속. 네이버 계열사를 아우르기 위한 형식일 뿐이니 사실상 기업별 노조인 셈이다. 노조가 여유 있는 대기업 정직원들의 고용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하는 데 멈춘 아이러니가 IT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경제의 낙수효과가 불분명하듯이 노동운동에서도 낙수효과란 의문스러운 일이다.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노동운동도 양극화되곤 한다.
실리콘밸리와 같은 기회도, 북유럽과 같은 안전망도 없는 곳에서는 귀하게 얻은 내 자리에 다들 집착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급성장하던 한국 IT 기업도 드디어 보통 회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거나, 이곳은 실리콘밸리가 아니었음을 노동자들도 깨닫게 된 것이거나 어느 쪽이든 간에.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