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2-신의 손…금융시장 원리와 똑같은 도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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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는 말이야, 패를 읽는 게 아냐. 사람을 읽어야지.”

전국을 유랑하는 타짜 고광렬(유해진 분)이 ‘한수’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대길(최승현 분)에게 밝힌 ‘타짜론’이다. 대길은 고광렬의 전 파트너였던 고니의 조카다. 강형철 감독의 <타짜2-신의손>은 8년 만에 나온 <타짜>의 속편이다. 원작은 허영만 화백의 동명의 만화다. 총 4부로 돼 있는데 이 중 1부와 2부가 영화로 제작됐다.

대길도 삼촌을 닮아 남다른 손재주와 승부욕이 있다. 도박판에 끼었다 하면 질 줄을 모른다. 폭력배와 몸싸움을 하다 쫓기는 신세가 된 대길은 강남 도박판에서 타짜로 데뷔하지만 곧 동료들에게 배신당하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 전국의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만난 고광렬, 고향에서 짝사랑했던 허미나(신세경 분)와 함께 대길은 도박을 끊고 새로운 생활을 하려 하지만 조직폭력배들은 그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살해당한 스승과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배신당한 자신을 위해 대길은 마지막 복수의 한판에 나선다.

타짜들은 도박판을 설계한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도박깨나 한다고 뛰어들어봤자 이길 수 있는 판이 아니다. 타짜들은 판을 키우기 위해 먼저 져준다. 옆에서는 계속 바람을 넣는다. 신이 난 상대는 점점 더 큰 판으로 끌려들어간다. 판돈이 산더미만큼 커졌을 때 타짜들은 계획한 대로 한두 판 만에 싹쓸이를 해버린다. 순식간에 돈을 잃은 상대는 이성을 잃고 추가 돈을 구한다. 기다렸다는 듯 ‘작은 마담’들이 돈을 꿔준다. 도박판에서는 이 돈을 ‘꽁지’라 부른다. 빌리는 꽁지의 양은 점점 커지고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두 손을 들게 되지만 이미 늦었다.

[영화 속 경제]타짜2-신의 손…금융시장 원리와 똑같은 도박판

도박판에서 돈이 도는 시스템은 금융시장의 원리와 똑같다. 도박사(기업)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돈(자본금)을 가지고 판(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다 돈이 부족해지면 은행(작은 마담)에서 대출(꽁지)을 받는다. 사채니 높은 대출이자가 붙을 것이다. 은행(작은 마담)은 외부에서 돈을 마련한다. 금융권일 수도 있고 사채업자일 수도 있다. 조달비용은 대출이자에 반영된다. 도박사들이 돈을 벌면 작은 마담에게 꽁지를 되갚는다. 작은 마담은 원금과 이자를 회수한 뒤 다른 도박사들에게 다시 돈을 빌려준다.

도박사가 끝내 돈을 잃는다면 그는 파산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제도금융권에서 파산하면 담보로 맡긴 집 등 담보물을 압류당한다. 하지만 법적보호를 받지 못한 음성적인 도박판에서의 빚은 종종 인신매매나 장기매매로 이어진다. 도박판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조폭은 금융당국을 닮았다.

꽁지를 빌려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도박판이 커진다. 유동성이 많이 지원되면 경제규모가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꽁지의 공급은 도박판에서도 승수효과를 일으킨다. 승부가 바뀔 때마다 돈이 양쪽으로 오가면서 전체 거래 판돈은 커진다. 때때로 ‘10억대 도박단 검거’와 같은 보도가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10억’은 판돈이 아니라 그날 회전된 돈의 총액을 말한다. 전체 판돈이 2만원인데 5회 도박을 했다면 ‘10만원대 도박판’이 되는 셈이다.

도박사들은 도박을 하면서 라면을 먹거나 커피를 마신다. 혹은 줄담배를 핀다. 이들을 위해 심부름을 하는 서비스 업종도 생긴다. 도박판에서 부르는 ‘식모’다. 대길은 처음 식모를 하면서 주부도박사들에게서 귀여움을 받는다. 독점공급이니 수수료는 높다. 도박판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을수록 서비스 업종에 떨어지는 이득도 많다.

다만 도박은 돈의 유통일 뿐 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데 한계가 있다. 제조업 없는 금융도시는 오래가지 못한다. ‘카지노믹스’의 한계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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