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중소기업 적합 업종 호시탐탐 노리는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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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장류 등 올해로 지정 만료되는 품목 17개사 대기업이 해제 신청

지난 7월 10일 마감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합의 신청에서 해제를 신청한 대기업은 모두 17개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제 신청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국회 산업위원회 박완주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해제 신청을 한 전체 52개 품목 중 대기업이 해제 신청을 한 품목은 기타인쇄물, 세탁비누, 아스콘, 장류(간장·된장·고추장·청국장), 기타 안전유리, 단조(보통강·특수강 등), 두부, 생석회, 다류(녹차), 다류(기타가공차), 국수, 당면 등이었다. 동반성장위는 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해제 신청만으로 동반성장을 하지 않는 기업으로 오해할 우려가 있어 해당 대기업 이름은 공개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경련 등 3개 단체서도 해제 신청
대기업 외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해제를 신청한 단체로는 전경련·한국식품산업협회·레미콘공업협회 등 3개였다. 전경련은 금형, 맞춤양복, 공기조화장치, 기타 개폐 및 보호 관련 기기(낙뢰방지시스템), LED등, DVR, 배전반, 송배전변압기, 플라스틱병 등의 품목에 해제 신청을 했다. 전경련이 주로 공산품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해제 신청을 했다면 식품산업협회는 식품류에 해제 신청을 했다. 식품산업협회는 떡, 순대, 장류, 탁주(막걸리), 김, 김치, 두부, 어묵, 원두커피, 다류(녹차·홍차 등), 단무지, 도시락, 앙금류, 옥수수유 등의 품목에 해제 신청을 냈다. 레미콘공업협회에서는 레미콘 품목에 해제 신청을 했다.

전경련은 지난 17일 적합업종제도가 중소기업의 실적 및 경쟁력 제고에 실익이 적었다는 분석자료를 내놓았다. 전경련이 명지대 경제학과 빈기범·우석진 교수에게 연구의뢰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적합업종 지정은 해당 업종 내 중소기업의 총자산 성장률, 총고정자산 성장률 등 성장성 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전경련이 적합업종 재지정·해제를 앞두고 기선 제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6월 11일 유장희 당시 동반성장위원장이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28차 동반성장위원회’를 마치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운영 개선방안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11일 유장희 당시 동반성장위원장이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28차 동반성장위원회’를 마치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운영 개선방안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식품산업협회가 여러 품목에 해제 신청을 한 것에 대해 중소기업 업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연식품공업협동조합의 황성하 전무는 “식품위생 향상을 설립 목적으로 한 식품산업협회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해 적합업종 해제 신청을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상대방은 재지정을 신청한 우리 조합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우리는 대기업을 등에 업은 식품산업협회가 도대체 어떤 입장인지, 아니면 나중에 대기업이 직접 나선다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는 전체 적합업종 82개 업종 중 77개 품목에 대해 재지정을 요청했다. 재지정을 신청하지 않은 5개 품목은 자동으로 적합업종에서 제외된다. 동반성장위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82개 중소기업 적합업종 중 중소기업이 재합의 신청을 하지 않은 품목에 대해서도 전경련과 식품산업협회가 재지정 해제를 신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경련에서는 낙뢰방지시스템에 대해 해제신청을 했고, 식품안전협회에서는 김(조미김)에 대해서 해제 신청을 했다. 또 한 대기업에서 차량용 블랙박스에 대해 해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이 세 품목에 대해 재합의 신청을 하지 않아 이들 세 품목은 자동적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된다.

동반성장위의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과 단체가 동시에 해제를 신청한 품목도 있다. 장류와 다류, 면류는 각각 식품산업협회와 2개의 대기업이 해제 신청을 했다. 두부는 식품산업협회와 한 개의 대기업이, 도시락은 식품산업협회와 2개의 대기업이 해제신청을 했다. LED등은 전경련과 3개의 대기업이 동시에 해제를 신청했다.

“동반위의 대기업 편향 운영 우려”
이들 단체·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 해제를 신청한 사유로는 수출경쟁력 저하, 중소기업의 자구노력 활동 미진, 외국계 기업 진출로 국내 대기업 역차별 , 중소기업 안정성 취약, 중소기업의 식품위생 안전 불확실, 전문 중견기업 보호 등이 제시됐다. 동반성장위는 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적합업종 재합의 초기 단계에서 편향된 신청서의 통계자료(대기업 유리)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여 신청 사유를 요약해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 자료에서 논란이 벌어진 품목의 양쪽 입장을 비교해볼 수 있다. 두부에 대해서 식품산업협회와 한 개의 대기업은 해제 신청 사유로 ‘소비자 후생과 전후방 산업에 부정적 영향’ ‘OEM 중소기업의 사업 위축’ ‘신규 생산시설 확장 자제’ ‘국산콩 사용 감소로 농업에 피해를 줌’ ‘소비자 후생에 부정적 영향’ 등을 제시했다. 이에 비해 재지정을 신청한 연식품공업협동조합은 ‘과거 고유업종 해제 이후 대기업 진출로 인해 중소기업의 시장점유율 50% 수준으로 저하’ ‘내수 위주 제품이며 제한된 시장규모(5000억원)에서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중소기업 경영 악화 우려’를 내세웠다.

또 다른 논란거리인 장류는 식품산업협회와 2개의 대기업이 ‘장류의 소매가 인상 우려 발생 및 대기업의 경영활동 위축으로 부작용 초래(연구개발 미진 등)’ ‘중소기업의 자구노력 활동 미진’ ‘수출경쟁력 저하’ ‘전문제조 중견기업의 보호 필요’를 해제 신청 이유로 제시했다. 반면 재지정을 신청한 장류협동조합은 ‘대기업의 도매유통업 인수에 따른 중소기업 제품 판로 악화’ ‘저가제품 및 과다 판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적합업종 권고에 따른 실효성 부재’를 이유로 제출했다.

세탁비누 역시 적합업종 지정으로 계속 논란이 되어왔다. 해제 신청을 한 한 개의 대기업은 ‘대기업의 사업 철수를 통해 무궁화에게만 크게 (이익이) 돌아갈 뿐 아니라 품질개선 노력없이 가격만 상승’이라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이에 비해 재지정을 신청한 5개 중소기업은 ‘기존 권고안(대기업 사업 철수) 유지’ ‘대기업 진입 시 사양산업인 세탁비누 시장에서 중소기업은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재지정 신청 이유를 밝혔다.

2011년에 지정된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9월 30일 3년 만에 만료되는 14개 품목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재합의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자율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게 되면 조정협의체를 구성해 실무위 심의 및 동반위 심의 의결을 거쳐 재합의를 공표하게 된다. 11월 30일 만료되는 2차 품목 22개와 12월 31일 만료되는 3차 품목 41개도 역시 이 같은 절차를 밟게 된다.

박완주 의원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을 앞두고 동반위가 대기업에 유리하게 편향적인 운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면서 “동반위가 중소기업·중소상공인을 위한 적합업종제도 유지·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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