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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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2026.01.16
  • [정태겸의 풍경] (98) 경기 시흥 관곡지-하늘도, 연밭도, 사람도 다정하다
    [정태겸의 풍경] (98) 경기 시흥 관곡지-하늘도, 연밭도, 사람도 다정하다

    도로를 달리다가 눈에 띄는 이정표를 찾아 들어갔다.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곳 중 하나인지라 오늘은 어쩐지 이곳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기록에는 관곡지가 조선 세조 때 연못이라고 나온다. 사헌부 감찰이던 권만형의 집안에서 소유한 사유지였다고. 여기에 권만형의 장인인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연(蓮)의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그는 문신이자 농학자였고, 가져온 씨앗은 관곡지에서 시작해 널리 퍼져나갔다. 그래서 시흥에서는 이 마을을 연꽃의 마을이라며 ‘연성’이라 불렀다.가을마다 이곳이 생각난 건 몇 년 전 보았던 풍경 때문이었다. 한여름 우아한 자태를 뽐냈을 연꽃은 지고 이파리며 줄기는 이미 시들었지만, 촘촘히 모여앉은 가을의 연밭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볕 좋은 날 관곡지를 찾은 사람들은 고샅길을 따라 걷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며 가을을 즐기는 풍광. 이때쯤이면 어디든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겠지만, 이곳은 아직 남...

    1651호2025.10.29 06:00

  • [김우재의 플라이룸] (67) 노벨상의 쓸모, 혹은 망령
    [김우재의 플라이룸] (67) 노벨상의 쓸모, 혹은 망령

    10월의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면 어김없이 한바탕 열병이 한국사회를 휩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낭독되는 몇몇 과학자의 이름이 지구 반대편의 나라를 통째로 들었다 놓는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면역 관용’의 비밀을 파헤친 메리 E. 브렁코, 프레드 램스델, 사카구치 시몬에게 돌아갔다. 물리학상은 거시적 양자 터널링 현상을 발견해 양자컴퓨터의 기틀을 닦은 미셸 H. 드보레, 존 M. 마티니스, 존 클라크가 수상했고, 화학상은 가스를 가두고 물을 수확하는 분자 구조물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한 기타가와 스스무, 리처드 롭슨, 오마르 M. 야기에게 수여됐다.세계는 새로운 지적 영웅들의 탄생에 잠시 환호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한국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언론은 옆 나라 일본의 수상자 숫자를 헤아리며 자조 섞인 기사를 쏟아내고, 정치권은 ‘과학 강국’을 부르짖으며 공허한 약속을 남발한다. 온 국민은 마치 오래된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학생...

    1651호2025.10.24 15:08

  • [신간] 중독에 대한 색다른 생각
    [신간] 중독에 대한 색다른 생각

    우리가 기댄 모든 것마쓰모토 도시히코, 요코미치 마코토 지음·송태욱 옮김·김영사·1만8800원알코올, 니코틴, 음식, 스마트폰… 우리는 수많은 중독의 위험 속에 살아간다. 통상 모든 중독을 ‘뚝’ 끊는 것을 ‘중독 치료’의 목표로 두곤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알코올, 음식 등 수많은 의존증과 함께 살아온 문학평론가와 중독 전문 정신과 의사는 중독에 대한 통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문학평론가 요코미치는 책에서 ‘중독’은 쾌락을 얻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몸짓이라고 말한다. 이때 무조건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해봤자 근원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다른 중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 마쓰모토는 중독인 채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의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중독을 터부시하는 시선 자체가 회복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가 중독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1650호2025.10.22 06:00

  • [시네프리뷰] 8번 출구-뫼비우스의 고리에서 탈출하는 법
    [시네프리뷰] 8번 출구-뫼비우스의 고리에서 탈출하는 법

    왜 하필 8번 출구인가. 8은 뫼비우스의 띠와 닮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고리에서 탈출하는 법은 끊는 것이다. 끊으면 나선이 된다. 지적으로 설계된 영화다.제목: 8번 출구(The Exit 8)제작연도: 2025제작국: 일본상영시간: 95분장르: 스릴러, 공포감독: 카와무라 겐키출연: 니노미야 카즈나리, 고마츠 나나, 코치 야마토개봉: 2025년 10월 22일등급: 12세 이상 관람가수입: ㈜미디어캐슬배급: NEW원작 게임에 에셔(M.C. Escher)의 그림 포스터가 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리뷰를 쓰면서 유튜브에 올라온 게임플레이 영상을 확인해보니 역시 없다. 감독의 해석이다. 영화 속 지하철역 통로에 게시된 에셔 전시회 포스터 그림은 에셔의 그림 ‘뫼비우스의 띠 II(붉은 개미)’(1963년 작)다. 안쪽과 바깥쪽의 구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는 에셔의 여러 작품에 영...

    1650호2025.10.22 06:00

  •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79) 부산 북형제섬 인근-온순하고 느긋한 박쥐물고기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79) 부산 북형제섬 인근-온순하고 느긋한 박쥐물고기

    박쥐물고기(Batfish)는 독특한 외모와 성격으로 인해 다이버들과 해양생물 애호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는 어종이다. 분류학상 농어목 제비활칫과(Ephippidae)인 박쥐물고기는 일반적인 어류와는 다른 독특한 체형을 하고 있다. 짧은 몸길이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높은 체고가 가장 큰 특징이다. 옆에서 보면 삽(Spade)처럼 납작하고 넓게 퍼진 형태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어권에서는 “Batfish(박쥐물고기)” 또는 “Spadefish(삽물고기)”라고도 불린다.박쥐물고기는 성격이 매우 온순하고 느긋하며, 움직임도 빠르지 않아 다이버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특별히 경계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수중 사진가들에게는 좋은 피사체가 되며, 교감의 대상이기도 하다. 유어기와 성어기의 외형이 매우 달라 초보 해양생물 관찰자라면 서로 다른 종으로 착각할 수 있다. 유어기에는 지느러미 끝이 뾰족하고 몸 전체가 납작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몸통이 넓어지고 형태가 둥글...

    1650호2025.10.22 06:00

  • ‘쌍꺼풀’ ‘혀 말기’가 우성? ‘궤도 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진 질문
    ‘쌍꺼풀’ ‘혀 말기’가 우성? ‘궤도 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진 질문

    학창 시절 과학 시간을 떠올려보자. 혀를 ‘U자’ 모양으로 말 수 있는 것을 ‘우성’, 혀 말기를 못 하는 것을 ‘열성’이라고 배웠다. ‘혀 말기’는 상염색체에 있는 한 쌍의 대립유전자로, 멘델의 법칙을 따른다’고도 배웠다. 혀 말기가 되는 이의 유전자를 ‘RR’ 혹은 ‘Rr’로, 불가능한 이의 유전자를 ‘rr’로 표기하며 혀 말기 가계도를 분석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혀 말기가 안 되는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난 자녀 역시 혀 말기가 안 된다.과학계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설명이 잘못됐으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1940년 혀 말기가 우성 형질이라는 얘기를 처음 꺼냈던 미국의 유전학자 스터티번트는 혀 말기가 안 되는 부모에게서 혀 말기가 되는 자녀가 나오는 등 예외가 다수 있다는 점, 이후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서도 멘델 유전과 맞지 않는 사례가 나왔다는 사실을 들어 1967년 자신이 쓴 <유전학의 역사>에서 자신의 오류를 인...

    1650호2025.10.20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58) 라이브 연주로 다시 쓴, 비극의 희망연대
    [이주영의 연뮤덕질기](58) 라이브 연주로 다시 쓴, 비극의 희망연대

    드럼의 첫 타격이 울리자, 객석과 공간이 동시에 전율한다. 몸보다 먼저 심장이 쿵쾅거린다. 기타 피드백(앰프에서 나온 소리가 기타의 진동을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픽업으로 들어가 순환하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색)의 진동이 객석을 가르고, 배우의 록킹한 포효가 라이브 밴드 사운드와 맞물리며 객석을 덮치듯 달려든다. 록 뮤지컬의 강렬한 서곡(오버추어)과 첫 번째 넘버는 관객의 심신 상태와 작품의 서사 및 음악적 세계관을 빠르게 연결해주는 매개다. 무의식중에 주파수대가 동기화됐다면 작품과 관객의 물아일체는 시간문제. 감정은 더 이상 대사나 표정, 안무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로이 확장된다. 슬픔은 음향으로, 연민은 박동으로, 공감은 진동으로 바뀐다. 뮤지컬 <쉐도우>와 연극 <안트로폴리스 Ⅰ: 프롤로그/디오니소스>(이하 안트로폴리스)는 이 진동을 다시 감정으로 전환하는 감각 중심 작품이다. 비극을 재현하지 않고, 비극의 파동을 체험하게 이끈다는 점에...

    1650호2025.10.17 14:51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14) 소녀는 어떻게 여자가 되는가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14) 소녀는 어떻게 여자가 되는가

    오정희의 <유년의 뜰>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유년부터 중년을 보낸 한국 여성의 일대기를 연작 형식으로 그린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개 단편의 주인공이 동일 인물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별사’를 제외하고 각 단편의 주인공은 모두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고, 그들이 살고 있는 연대나 거주하는 장소도 특정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이 하나의 연작소설처럼 읽히는 것은 작중 여주인공들의 경험이 6·25전쟁기부터 개발독재기에 이르는 시기 동안 한국 여성들이 어린아이에서 성인 여성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복잡다단한 경험을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사회서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 탐문<유년의 뜰>은 생애의 다른 시간대를 통과하는 여성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결, 고통과 체념을 적확한 문체로 표현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문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정희...

    1650호2025.10.17 14:50

  • [IT 칼럼] ‘소라 2’가 창조하는 완벽한 허상
    [IT 칼럼] ‘소라 2’가 창조하는 완벽한 허상

    2024년 12월 오픈AI의 동영상 생성형 AI 소라(Sora) 첫 버전이 대중에게 공개됐다. 그 잠재력은 인상적이었지만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했다. 물리 법칙을 종종 무시했고, 인물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지난 9월 30일 공개된 소라 2는 이전 버전의 한계를 뛰어넘어 놀라운 도약을 이루었다.이제 사용자는 “주인을 향해 달려가는 골든레트리버”와 같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1920년대 무성 영화 스타일로, 안개 낀 금문교를 배경으로 회한에 찬 표정을 짓는 늙은 탐정의 클로즈업 샷, 카메라는 그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을 따라 천천히 줌 아웃한다”와 같은 복잡하고 감성적인 디렉팅까지 가능하다.소라 2의 핵심은 ‘맥락적 일관성’과 ‘물리적 정확성’의 경이로운 향상에 있다. 영상 속 인물은 여러 장면에 걸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표정의 결을 유지하며, 자연스러운 미소, 흩날리는 머리카락 등 실제 촬영한...

    1650호2025.10.17 14:47

  • 해방촌 골목에서 지켜낸 ‘읽기’의 시간···독립서점 ‘고요서사’의 10년
    해방촌 골목에서 지켜낸 ‘읽기’의 시간···독립서점 ‘고요서사’의 10년

    지난 9월 26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용산구 해방촌 골목에 자리한 문학서점 ‘고요서사’ 안.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여덟 명의 참석자가 둘러앉아 있다. 이날은 황인숙 시인과 함께하는 정기 프로그램 ‘마지막 금요일 저녁때’가 열리는 날이었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마다 서점에 모여 그달의 책을 함께 낭독하는 행사로 이날은 9월의 도서인 박혜경 시집 <한 사람을 생각했다>를 함께 읽는 자리였다. 프로그램은 황 시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황 시인은 “정부의 지원이 끊겨서 동네책방이 힘들다는 기사를 읽고 평소 자주 드나들던 고요서사가 걱정이 됐다. 독서 전초 기지 같은 공간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한 달에 한 번 책 1권을 1시간 동안 이어읽기 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낭독회가 시작되자 황 시인을 시작으로 참석자들이 차례로 시를 소리 내 읽어 나갔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이 시간 동안 참석자들은 온전히 ‘읽기’에 집중했다....

    1649호2025.10.13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