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주간경향

문화·과학

2026.06.14
  •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0) 전후 국민국가의 젠더 정치와 비국민 여성의 수난 서사
    [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0) 전후 국민국가의 젠더 정치와 비국민 여성의 수난 서사

    최정희의 <녹색의 문>은 일제 말기와 해방기,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의미심장한 시기를 배경으로 이상적 삶을 동경하던 여학생이 섹슈얼리티를 훼손당하고, 애인과 남편의 변심으로 인한 수난을 겪으면서 단단한 어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여성 성장 서사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한국문학의 주요 플롯인 여성수난사와 여성 성장 서사의 궤적을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가부장적 질서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젠더 정치학을 수행하고 있다.여학생 시절 주인공 유보화는 “하늘에 문 달린 집 보리밭처럼 푸른 문(門) 안에 살고 있는 어느 나라 왕자와 같은 눈이 서늘한 남자와”의 연애를 꿈꾼다.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신사참배가 일상화된 식민지 현실은 흐릿한 배경으로 존재할 뿐 유보화는 낭만적 연애를 꿈꾸면서 막연히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기를 보낸다. 그런 그녀가 동경 여자미술학교로 유학을 가서 우연히 하...

    1682호2026.06.05 14:49

  • [가장 급진적인 로컬, 동네서점](8) 땅의 역사 위에 마을 만들기, 제주 서점
    [가장 급진적인 로컬, 동네서점](8) 땅의 역사 위에 마을 만들기, 제주 서점

    아름다운 섬 제주. 많은 사람에게 제주도는 하나의 단일한 섬이다. 그러나 섬 내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여러 섬의 군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다양하고도 개성 있는 360여개의 오름이 존재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감탄하는 제주의 절경은 수천년간 이루어진 화산 활동과 그에 따른 퇴적, 그리고 그 환경에 기어코 뿌리를 내린 생물이 만들어낸 결정체다. 이 뒤엉킴에 인간이 마지막에 합류했다. 생태가 비·생물 간의 변화와 적응의 역사로 설명되듯이 제주의 땅, 그리고 땅에 자리 잡은 마을도 고유한 역사 없이는 충분하게 읽어낼 수 없다.그러나 제주 땅은 ‘제주4·3’ 사건으로 거대한 지형 변화를 맞이했다. 제주의 ‘폭도’를 소탕한다는 1948년 ‘초토화 작전’에서 무장대는 물론 군·경·서북청년단의 횡포를 피해 산에 오른 민간인들, 소개령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떠나지 못한 중산간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다. 또한 산과 ‘내통’했다고 의...

    1682호2026.06.05 14:48

  • [이기환의 사래자(思來者)] ‘한국인은 즉흥곡의 달인’…헐버트·나운규·BTS가 일깨운 ‘아리랑 DNA’ 영상 컨텐츠
    [이기환의 사래자(思來者)] ‘한국인은 즉흥곡의 달인’…헐버트·나운규·BTS가 일깨운 ‘아리랑 DNA’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그룹 방탄소년단 BTS의 해외공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떼창곡’이 있다. BTS의 새 앨범 제목인 한국의 대표 민요 ‘아리랑’(ARIRANG)이다.해외 공연장에 모인 글로벌 관객들이 ‘Body to Body’에 삽입된 ‘아리랑’을 합창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소름이 돋는다. 특히 ‘아리랑~’ 구절 앞에 등장하는 우리말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두 눈을 감지 않을 이 밤, 솟구치는 겨레의 마음~’ 맞다. ‘아리랑’이야말로 ‘솟구치는 겨레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곡조이다.131년전 아리랑을 소개한 서양인그런데 130년 전 한국인의 밑바닥 정서가 담긴 이 아리랑을 글로벌 무대에 알린 서양인이 있다. 그때까지 ‘아리랑’ 중 한 편을 서양 악보로 채보했다. 처음이었다. 그 이가 바로 미국인인 호머 헐버트(1863~1949)이다. 그...

    1682호2026.06.05 14:45

  • ‘어 홀 뉴 월드’ ‘뷰티 앤 더 비스트’의 그 목소리···피보 브라이슨 별세
    ‘어 홀 뉴 월드’ ‘뷰티 앤 더 비스트’의 그 목소리···피보 브라이슨 별세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와 <알라딘>의 주제곡을 부른 피보 브라이슨이 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75세.미국 피플, AP 통신 등에 따르면 피보 브라이슨은 뇌졸중으로 입원한지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전 세계 팬, 친구, 동료들로부터 받은 사랑와 기도, 지지에 깊이 감동하였다”라며 “우리의 마음이 아프지만 피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그의 목소리와 정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였는지 알고 위안을 얻었다”라고 밝혔다.1951년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에서 태어난 고인은 10대 시절부터 전문적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으며 1965년 데뷔했다. 특히 1991년 <미녀와 야수>의 주제곡인 ‘뷰티 앤 더 비스트’(eauty and the Beast)를 샐린 디옹과 함께 불러 1992년 그래미상을 받았다.1992년에는 레지나 벨과 함께 부른 영화 <알라딘>의 주제곡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

    2026.06.03 13:34

  • [문화캘린더] 전시-이리꼬뮨-1982년 이리, 여성 노동 연대기
    [문화캘린더] 전시-이리꼬뮨-1982년 이리, 여성 노동 연대기

    [전시] 이리꼬뮨일시 5월 22일~7월 5일 장소 익산예술의전당 미술관 1·2층 관람료 무료1980년대 이리(전북 익산시 일부의 옛 지명) 수출자유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노동자 투쟁에 관한 전시가 열렸다. 당시 연대를 지향했던 운동의 흔적들과 1980년대 민중미술의 활동을 함께 공유하기 위함이다.‘1980년대 이리’는 연대의 도시였다. 창인동 성당, 중앙교회, 수출자유지역의 공장이 연대의 주 거점이었다. 공적 목소리를 할당받지 못한 노동자들, 그 가운데 여성 노동자들은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노동환경에 맞서 구체적인 연대를 모색했다. 특히 의류 생산업체 ‘후레아훼숀(Flair Fashion)’ 여성 노동자들은 1982년 이리와 전북을 넘어 한국사회 그리고 글로벌 연대를 이뤄냈다. 일종의 전 세계의 여성 노동자들과 일종의 ‘꼬뮌(Commun)’을 형성한 것이다.전시에서는 노동자들의 일기, 편지, 시, 에세이, 연희(연극), 사진과 각종 기록물, 보고서, 플래카드, 판화...

    1681호2026.06.03 06:00

  • [시네프리뷰] 콜럼버스-한국계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를 주목하는 까닭
    [시네프리뷰] 콜럼버스-한국계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를 주목하는 까닭

    제목: 콜럼버스(Columbus)제작연도: 2017제작국: 미국상영시간: 104분장르: 로맨스, 멜로, 드라마감독: 코고나다출연: 존 조, 헤일리 루 리차드슨개봉: 2026년 6월 3일등급: 12세 이상 관람가수입/배급: 엣나인필름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떠오른 단어는 ‘대칭 성애자’다. 구도와 미장센에 대한 집착. 영화 교과서 같은 데 실릴 법한 영화다. 이런 장면을 어디서 많이 봤는데?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 예컨대 <만춘>(1949)이나 <동경 이야기>(1953)의 ‘필로숏’과 코고나다 감독의 이 장편 데뷔작의 주요 장면을 대비하는 영상 리뷰 같은 것이 눈에 띈다. 잉마르 베리만, 로베르 브레송의 영향도 느껴진다. 그 감독들은 감독의 홈페이지에 남아 있는 데뷔 전 발표한 ‘영상 에세이’의 주요한 주제이기도 하다.대칭...

    1681호2026.06.03 06:00

  • [신간]확증 편향에 병든 미국의 타산지석
    [신간]확증 편향에 병든 미국의 타산지석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데이비드 팩먼 지음·김내훈 옮김·창비·2만원가짜뉴스와 정치적 선동이 대중에게 잘 먹히는 시대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며 기존의 성향과 사고가 상호 강화되는 ‘에코 체임버’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미국 정치 평론가이자 유튜버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팩먼은 미국 사회가 에코 체임버 현상을 넘어 ‘에코 머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확증 편향이 시스템화됐다고 진단한다. 그는 특히 “미국의 정치판은 병들었다”며 기후위기나 보건·복지 제도 같은 명백한 사실까지도 거짓에 휘둘리게 만드는 정치권을 비판한다.투표권을 제약하는 왜곡된 선거구, 인신공격과 선동에 집착하는 정당 정치, 극단주의자들을 전문가인 양 대중에 소개하는 언론과 가짜뉴스를 확산하는 뉴미디어…. 팩먼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의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그는 공교육 강화, 비판적 사고 함양,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 등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 이 책의 내용...

    1681호2026.06.03 06:00

  • [정태겸의 풍경](113) 강원 강릉 안목해변-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정태겸의 풍경](113) 강원 강릉 안목해변-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고

    오랜만의 강릉이었다. 촬영 스케줄에 맞춰 찾은 강릉, 그 안에서도 안목해변. 커피 향이 짙어질수록 그곳을 찾는 발길이 늘었지만, 정작 내 발길은 줄어들었다. 남들이 자주 가는 곳은 덜 가게 될 수밖에 없는 여행작가라는 직업의 아이러니다. 대신 남들이 잘 모르는 곳, 이제는 잊힌 곳을 찾아보는 게 이 직업이다.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 덕에 정말 오래간만에 찾아간 바닷가. 짙푸른 그 바다는 여전했고, 평일이어서 여행자는 적었다. 길게 멀리 뻗어나가는 저 백사장도 그대로였다. 크게 변하지 않아 반가웠다.한동안 잊고 있다가 마주했을 때 반가운 건 사람만이 아니다. 여행지도 그렇다. 이전에는 점점 빠르게 늘어가는 카페의 행렬을 앞에 두고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도리어 커피를 안 마시기로 했지만, 이제는 가고 싶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터키 커피 체즈베 전문점도 보였고, 전망 좋은 자리가 욕심이 나는 곳도 있었다.고소한 커피를 홀짝이다 ...

    1681호2026.06.03 06:00

  • 마이클 잭슨의 비주얼 팝 문법, 숏폼 시대 만나 새 역사 만들었다
    마이클 잭슨의 비주얼 팝 문법, 숏폼 시대 만나 새 역사 만들었다

    세상을 떠난 지 17년.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다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 빌보드 글로벌 200차트 1위와 영국 싱글차트 ‘톱 5’ 동시에 진입했고, 국내 음원 플랫폼에서도 그의 대표곡을 찾아 들은 사람이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잭슨의 전기영화 <마이클>의 개봉이 도화선이 됐다. 마이클 잭슨이 만든 비주얼 팝 문법이 숏폼 시대와 만나 새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다만 이번 부활을 보는 시선은 음악계에서 둘로 갈린다. 잭슨이 보여준 ‘순수한 재능’에 대한 갈망의 분출이라는 해석, 영화가 의도적으로 손질한 ‘미화된 신화’의 부활이라는 해석이다. 영화가 1988년에서 끊어내 비워둔 시간의 공백이 이 같은 논쟁을 남겼다.<마이클>은 미국 현지시간 4월 24일 북미·유럽에서 동시에 개봉했다(한국은 5월 13일). 개봉 이후 한 달이 채 안 된 지난 5월 18일 빌보드 글로벌 200(미국 빌보드의 글로벌 싱글차트)에서 ‘빌리 진’이 ...

    1681호2026.06.01 06:00

  • [이주영의 연뮤덕질기](73) 대단하지 못한 사람이 삶을 견디는 법
    [이주영의 연뮤덕질기](73) 대단하지 못한 사람이 삶을 견디는 법

    찌질미의 대명사 황동만이 대세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 박해영 극본, 차영훈 연출)의 주인공으로 20년째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그는 모두에게 존재 자체가 ‘엑스(X)’ 같은 인간이다. 황동만(구교환 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변은아(고윤정 분)와 교류하면서다. 변은아는 그의 초라함 너머 감정의 결을, 그 안에 있는 반짝임을 알아본다. 왜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사는 황동만과 변은아를 보면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1899)가 떠오른다. 삶의 피로감을 딛고, 권태와 절망 속에서도 다시 하루를 사는 바냐와 소냐가 그곳에 있다현재 한국 연극계는 ‘바냐대전’ 중이다. 손상규 연출의 <바냐 삼촌>과 조광화 연출의 <반야 아재>가 무대에 올랐다. 다른 각색과 스타 캐스팅으로 같은 고전을 다르게 변주하는 풍경은 이례적이다. 안톤 체호프 원작은 제정 러시아 말기, 평생 매형을 위해...

    1681호2026.05.29 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