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주의 시아보 부인의 생명연장에 대한 판결이 유럽에서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의학의 발전으로 다른 인간적 기능은 없이 단순히 생명만 연장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상태라도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절시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인지?
영국에서는 최근 태아의 성별을 사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술 도입에 대해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하원 과학기술위원회의 한 국회의원은 5명의 남자아이를 갖고 있는 부모가 6번째 아이로 여자아이를 갖도록 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함에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하느냐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반문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는 쥐의 두뇌에 인간의 뇌세포를 이식하는 실험을 대학위원회에서 허락했다고 한다. 만약 쥐가 심각한 정도로 인간의 지능에 가까워지는 행태를 보이면 실험을 중단하고 쥐들을 모두 처분한다는 전제하에서 허락이 내려졌다고 한다. 또 다른 영국의 과학자들은 호르몬을 조정하여 인간의 수명을 30년 정도 연장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21세기의 달력이 한장씩 넘어감에 따라 생명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 지금까지 형성된 도덕과 인류 질서에 대해 물밀듯 닥쳐오는 근본적인 도전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생명과학의 발전은 20세기 후반에 급속히 진전된 컴퓨터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문학이나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를 천부적 권리로 인정하는 것처럼 과학기술을 포함한 인간의 창의적 연구에 대한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 호기심은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인류의 발전에 공헌해 왔다. 마치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생명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발명들이 인류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기존 인류 역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듯이 21세기 생명과학의 발전도 인류의 사고체계와 사회적 특성을 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최근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가 피임이 성서적이 아니라고 하여 콘돔 사용을 반대했기에 아프리카의 에이즈 확산 방지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지나친 보수적 신앙이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가톨릭교회의 생명의 존엄에 기초한 피임이나 인공중절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보수적 신앙으로 이해되는 것을 보면 21세기에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우리 사고는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황우석교수의 배아복제를 통한 줄기세포의 연구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엄청난 생명의 신비와 질서에 새로운 변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유럽이나 미국의 사회처럼 이러한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생명과학의 발전 속도에 상응하는 인문사회학적 대응 논리가 준비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미래에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는 소위 과학상점(science shop)이라는 과학전문가 집단의 시민단체가 형성되어 과학기술연구의 윤리적 성격이나 연구의 적절성에 대해 자율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국가의 연구비가 투입되는 연구의 적절성에 대해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연구자 집단이 자율적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제 생명을 다루는 연구에 대해서는 국가가 단순히 과학기술 경쟁력 차원에서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나름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차원의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미래의 사회적 갈등과 인간 정체성에 대한 아노미현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염재호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