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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 솔로몬의 지혜

입력 2005.04.12 00:00

대한해협에서 동해를 거쳐 오호츠크해에 이르는 해역은 옛날부터 고래잡이의 황금어장이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동해에선 선사시대부터 고래사냥을 했다. ‘은둔의 왕국’ 조선이 처음으로 미국인을 만난 것도 1853년 1월, 부산 앞바다에 포경선이 표착(漂着)했을 때다. 관헌 3명이 배에 올라 입국경위 등을 조사하고 조정에 올린 보고서는 선원들이 머리는 고슴도치 같고 자신을 가리키면서 ‘며리계’라고 여러번 지껄였으나 그들의 문자는 구름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해서(如雲如畵) 말과 글 모두가 불통이었다고 썼다. 다행히 그 배에 타고 있던 일본인의 도움으로 미국선적의 포경선이 표착했음을 밝혀냈다고 한다.

1855년에도 강원도 통천 앞바다에 표착한 미국의 포경선 선원 4명을 융숭하게 대접해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개국 이전부터 외국의 포경선이 동해 연안에 출몰한 것은 이 해역이 고래잡이의 황금어장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울산의 장생포는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연근해에 유명한 고래잡이 전초기지였다. 그 장생포에 일촉즉발의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오는 6월, 울산에서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 총회를 앞두고 고래잡이 재개를 주장하는 울산 어민들과 이를 저지하겠다는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4일과 5일 이틀 동안 울산항에서 고래잡이 재개를 반대하는 대대적인 해상시위를 벌이기로 했고 울산의 어민단체들은 고래잡이 본거지에서의 포경 반대운동을 묵과할 수 없다며 이들의 입항을 원천 봉쇄하겠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고래를 잡지 못했던 울산어민들의 주장은 포경금지가 원래는 멸종위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고래가 오징어 등을 마구 먹어치워 연근해의 어족자원이 황폐해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2000년 국립과학원이 육안으로 관찰한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연안에는 긴부리 참돌고래 6만여 마리와 밍크고래 2500여 마리 등 약 11만마리의 고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포경재개추진협의회에 따르면 어류의 먹이사슬 정점(頂點)에 있는 고래들이 인간의 총 어획량 3배를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민들이 고래잡이 재개를 주장하는 것은 고래들이 오징어, 꽁치, 멸치, 쥐치 등 연근해 어족자원의 씨를 말려 어민들이 생업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민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일본은 포경금지 중에도 돌고래는 무제한으로 잡게 하고 국제포경위원회가 못 잡게 하는 고래도 ‘조사 포경’이란 구실로 매년 700여마리씩 잡도록 하는데 우리는 모든 고래를 다 잡지 못하게 묶어 놓았다는 점이다.

오는 6월의 국제포경위원회 총회가 고래보호를 주장하는 그린피스의 손을 들어줄지, 아니면 생업을 위협받는 어민들의 손을 들어줄지 ‘고래 싸움’의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구의 환경이나 생태계 보호를 앞세우는 녹색단체의 주장과 생업이나 경제발전을 내세우는 주장 사이의 갈등을 명쾌하게 조정할 ‘솔로몬의 지혜’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새만금사업이나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에서 보았듯이 환경보호라는 명분과 생업 또는 경제개발이라는 논리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슬기롭게 조정하고 해결할 묘안이 보이지 않는 오늘의 시대상황이 갑갑할 따름이다.

<이광훈 경향신문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