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모두가 희망차길 바라요"
졸업-입학시즌이다. 학생들이 정들었던 모교를 떠나 상급 학교로, 혹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다. 졸업-입학식의 풍경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더 고단해질 학업-취업 걱정으로 졸업-입학식을 맞는 학생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하지만 거기엔 기대와 희망도 들어 있다. 디지털큐브 직원들이 졸업-입학식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특히 2년 전 한국에 온 캐다나인도 한 명 끼여 이채롭다. [편집자]
디지털큐브 편
김형섭(30-펌웨어팀) 김학주(29-펌웨어팀) 조종심(29-해외영업팀) 이언 화이트(28-펌웨어팀) 김가영(27-웹개발팀) 이세정(25-마케팅개발팀) 공승미(24-마케팅팀)
공승미 : 며칠 전에 뉴스에서 보니까 졸업식 끝나고 학생들이 밀가루와 계란으로 난리를 치더라고요. 심지어 입고 있는 교복을 서로 발기발기 찢느라 정신없던데요. 남자들은 졸업식 때 그렇게 하나요?
이세정 : 저는 199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요. 저 졸업할 때도 그랬어요. 일종의 추억 아닌가요? 그때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하면서 웃곤 해요.
이언 : 오 마이 갓! 모두들 미친 것 아니에요? (캐나다에서 살다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는 우리의 '과격한' 졸업식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조종심씨의 설명으로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세정 : 캐나다는 어떻게 하는데요?
이언 : 그냥 조용하게 보내요. 고등학교 졸업식은 특히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어른이 된다고 보거든요. 졸업식을 다 끝내고 난 다음에는 각자 소박한 파티를 해요.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술 마시는 파티, 다른 하나는 술 안 마시는 파티. 전 술 안 마시는 파티에 가서 친구들과 담소하면서 보냈어요.
이세정 : 진짜 재미없었겠다. 저 고등학교 졸업식 끝나고는 후배들한테도 맞고 그랬어요. 예고를 졸업했는데요, 남학생이 별로 없어서 선-후배 간에 다들 아는 사이예요. 평소에 쌓인 감정을 확 풀어버린다기보다는 그냥 일종의 한 의식이죠. 일반 고등학교는 선-후배 간에 잘 모르죠?
조종심 : 동기들도 다 모르는데 웬 선-후배?
공승미 : 근데 후배들이 때릴 때까지 넋 놓고 당하고 있어요? 그전에 잽싸게 도망가면 되지.
이세정 : 어디로 튈지 뻔하거든요. 처음부터 길목을 다 막아놔요.
김형섭 : 세정씨도 그럼 선배들 졸업할 때 선배들 때렸어요?
이세정 : 물론이죠. 일종의 전통인 셈인데요. 게다가 제가 안 때렸다면 고분고분히 맞고만 있겠어요?
조종심 : 그렇다면 후배들한테 맞아도 할 말 없네.
이언 : 교복은 왜 찢나요? 졸업식에 따로 입는 옷이 없나요? 캐나다는 깔끔한 정장을 입는데.
조종심 : 그야말로 경건한 의식이네요.
김가영 : 전 고등학교 졸업식 끝나고 친구들하고 바로 술 마시러 갔어요. 교복 입은 채로 아주 당당하게 술집에 들어섰죠. 황당해하는 주인에게 졸업했다고 큰소리 빵빵 치면서요. 그때 되게 통쾌했는데.... 그리고 대학 입학이 무척이나 기다려지더라고요. 나이트 클럽에도 무지 가보고 싶고 낭만적인 대학생활에 흠뻑 취해보고도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다들 느꼈겠지만 대학이란 데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는 않더라고요. 오히려 생존경쟁만 치열할 뿐이었어요. 특히 우리 세대는 취업 걱정 때문에 낭만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낭만을 찾자면 중-고등학교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조종심 : 대학 입학식은 저도 기억에 남아요. 공대에 진학했는데 우리 과의 한 학번 전체 110명 중에 15명만 여자였던 거예요. 입학식에서 과별로 모여 있는데 남자들 많은 거 보니까 기분 좋았죠. 여중-고를 나와서 남자 구경은 거의 못했거든요. 근데 지내다보니 남자에 대한 환상도 깨지고 남자가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어요. 여자로서는 그게 공대 진학에 있어서 가장 큰 폐해였죠. 그래도 이성에 대해 작은 환상은 있어야 하는 건데요. 하하....
공승미 : 그럼 여자친구보다 남자친구가 더 많겠네요?
조종심 : 공대에 다니는 여학생들의 특성이 여자친구는 안 사귄다는 거예요. 저만 그런 건지 모르지만요. 아마 많은 공대 여학생들이 그럴 걸요. 그리고 여자가 많은 곳에 가면 지금도 적응이 잘 안돼요.
김가영 : 저와 완전히 상반되네요. 전 식품영향학과를 다녔는데요. 남자가 거의 없었어요. 제일 부러웠던 게 여자가 두 명인 과가 있었는데 그 여학생들 생일 때면 동기 남자들이 돈을 모아서 헤어 스타일이며 옷이며 구두며, 하여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꾸며주는 거였어요.
조종심 : 그런 과는 없는데.... 그거 그냥 돌고 도는 소문 아닌가요?
김가영 : 아니에요. 제가 직접 눈으로 본 거예요. 그거 볼 때 정말 남자 많은 과에 안 간 게 엄청 후회스러울 정도였어요.
김형섭 : 저는 대학을 늦게 입학했어요. 02학번이니까 많이 늦었죠.
공승미 : 입학을 그렇게 늦게 한 이유라도?
김형섭 : 한때 음악에 미쳤거든요. 정말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기타를 배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엄청 게을렀던 것 같아요. 음악 하겠다는 놈이 연주실력 향상시킬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놀기만 했으니까요. 군대 갔다 와서 정신차리고 공부했죠.
김가영 : 그럼 대학 입학 때 기분이 남달랐겠네요?
김형섭 : 이상한 게 별로 들뜨거나 설레지는 않더라고요.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생활을 해서 그런지 대학도 직장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학주 : 직장 다니면서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보통 그런가 봐요? 저도 직장 다니면서 대학에 다녔는데요. 형섭씨와 비슷한 느낌이었거든요. 고등학교 입학 때가 훨씬 기억에 남아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가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학교였어요. 공부가 아니라 싸움 쪽으로요. 하하.... 솔직히 제가 중학교 때는 삥 뜯기는 일이 좀 있었는데 고등학교 교복을 딱 입고 다니면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죠. 오죽하면 다른 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가 무서워서 괜히 질러가도 될 길을 돌아서 갔겠어요. 소풍을 서울랜드로 가본 적 없어요. 서울랜드에서 몇 년간 우리 학교 소풍을 절대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선배들 말이 서울랜드로 소풍 가서 엄청 큰 패싸움을 벌였던 게 그 이유라더군요.
조종심 : 예전에는 졸업할 때 대다수 학생이 눈물을 글썽였다고 하잖아요. 근데 우리 때는 재미가 없어서인지,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우는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간혹 있긴 했지만 극히 소수였죠. 아마도 공부 때문이 아닌가 해요. 졸업은 마무리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내포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상급 학교로 진학해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우선 '죽었구나' 걱정부터 앞섰죠. 고등학교 졸업 때는 대학 입학이 있어서 그나마 좋았는데 대학 졸업할 때는 취업 걱정 때문에 우울했죠. 취업한 학생들만의 잔치라고나 할까요.
공승미 : 전 2년 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요. 친구들은 취업이 안 돼 표정이 어두웠는데 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비록 월급은 무지 작았지만.... 70만원이었거든요. 그리고 주말에 일하는 건 기본이고 야근도 수시로 하고 수당은 엄두도 못 내고.... 그랬지만 좋았어요. 두어 달 지나니까 월급을 올려주더라고요.
김학주 : 바꿔 말하면 가영씨는 취업이 됐단 얘기네요? 졸업식에 간 거 보니까.
김가영 : 말이 그렇게 되나....
김가영 : 외국 영화 보면 졸업식 때 다들 학사모 벗어서 던지잖아요.
이언 : 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건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죠. 전 졸업식 때 가장 기억나는 게 악수예요. 많은 사람과 악수하느라 힘들었다는 기억이 나요.
김가영 : 저는 모자 던지는 거, 그게 무척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친한 친구들과 같이 한번 해보자고 제의했죠. 친구들하고 동그랗게 모였어요. 다른 친구들이 우리가 뭘 하나 궁금해하면서 하나둘 합류하더라고요. 다들 모여서 학사모를 힘껏 던져 올렸어요. 얼마나 재밌었는데요. 몇 번씩 던졌죠.
조종심 : 대학 졸업사진 찍을 때도 기억나네요. 여자들은 1주 전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하고 나중에 사진이 자기 맘에 안 들게 나오면 재신청하기도 하죠. 근데 사진관 아저씨한테 '니 얼굴이랑 똑같이 나왔다'는 타박만 듣기 일쑤고요. 그렇게 정성들여 찍은 졸업사진 앨범을 지금 애지중지하는 사람 있나요? 대부분 쓸모없는 짐으로 인식하지 않나요? 근데 우리 과 여학생들은 미용실도 안 가고, 화장도 거의 안 하고 그렇게 찍었어요. 조금 단정하게 하기는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같은 과 남자들이 감탄할 정도니, 참.... 지금 생각하면 그런 동기들이 불쌍하고 그들에게 미안해요.
김가영 : 우리는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그때 졸업사진 찍으려고 쓴 돈만 50여 만원 될 걸요, 아마. 친구들이 서로 안 지려고 난리였죠.
이세정 : 아무튼 앞으로는 흥겨운 졸업식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 부담, 취업 걱정 없이 앞날의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졸업식이오.
공승미 : 그래도 모교를 떠난다는 아쉬움 정도는 남아 있어야죠.
정리/임형도 기자
사진/김석구 기자
디지털큐브는 '휴대용 영화관'이라고 불리는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 내수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디지털 멀티미디어 전문기업이다. 디지털큐브는 1999년 설립된 이래 꾸준한 기술개발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디지털 멀티미디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디지털큐브는 창사 1년 후인 2000년 특허기술의 MP3플레이어를 통해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이래 확고한 연구개발 네트워크와 해외 유통채널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했다. 이를 기반으로 3년 전부터 연구-개발을 시작한 아이스테이션 PMP시리즈로 국내 PMP 시장 1위로 우뚝 섰으며, 일본-중국-프랑스-홍콩 등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재 500억원의 수출계약이 확정된 상태다.
2003년, 미국 굴지의 디자인 회사인 시그마 디자인(Sigma Design)과 아이스테이션 PMP시리즈에 대한 디자인개발 협약을 체결하고, 필립스와 PMP 기술개발에 대한 업무 협약을 체결한 디지털큐브의 아이스테이션 PMP시리즈는 단순하고 모던한 디자인과 최고의 기능으로 현재 국내 및 국외 PMP 얼리어덥터들로부터 최고의 PMP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디지털큐브는 지난해 10월 아이스테이션 PMP 1000을 출시한 후, eBook을 보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멀티 태스킹 기능과 화면 크기를 조절하는 기능, 저작권이 있는 파일을 재생시키는 기능 등 지금까지 총 6회의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고객 만족도를 높여가고 있다.
'인간의 작지만 행복한 꿈을 실현한다'는 경영이념을 통해 고객, 주주 및 회사 모두 이익을 공유하는 회사로 성장해나가고 있는 디지털 큐브는 매월 비약적인 매출 성장을 보이며, 올해 1000억원대 매출을 목표로 PMP업계 세계 1위 기반을 다질 예정이다.
한재우[마케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