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발사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었다. 최근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영화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두 영화 모두 감독의 의도이든, 관객들의 해석 문제였든지 간에 영화 속 메시지가 우리 삶의 일부를 잠시나마 과거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영화는 극적 전개를 통해 우리 삶의 이야기를 정교하게 풀어줌으로써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공감, 감동을 받게 한다. 이러한 반응 속에서 무의식의 힘과 같은, 영화 속에 숨겨진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정신분석'이라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두 사람, 분석가와 피분석자가 등장하는 영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 과정에서 진행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영화와 같은 극적인 요소가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것이 전이(轉移) 현상이다.
'전이'란 피분석자가 자신의 과거를 정신분석가와의 관계로 옮겨 재현하는 것이다. 이때, 전이는 무의식의 산물이라 항상 부적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분석가를 미워하고, 좋아하고, 존경하고, 비하하는 정도가 지나치거나 이상해 보일 수 있다. 때로는 존경과 비하가 번갈아 나타나거나 너무 끈질기게 되풀이되어 분석가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피분석자의 이런 반응이 현재 시점에서는 지나치지만 과거 세계에는 적절한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고통스러울수록 과거를 현재에서 번복하려는 소망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과거를 지우려고 애쓰게 된다. 분석가는 전이현상을 이용해 피분석자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고 소용없이 노력하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피분석자는 과거를 새로운 시각으로 돌이켜 봄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전이를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아무나 섣불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수련을 받은 분석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고,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른바 과거청산의 부작용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과거에 매달려 현재를 소진시키는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대체로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니고 있다. 과거에 받은 억압을 현재에서 단순히 원망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과거에 매달려 현재를 낭비하고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이다. 과거의 가해자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해서 고통스러운 과거가 없어지거나 정리되지는 않는다.
과거 청산을 주도하는 사람과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역시 전이현상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소위 객관적 명분 뒤에는 추종자에게 각인된 '과거의 힘'이 도사리고 있다. 그 힘이 지도자에게 투사되어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인 호감을 가지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지나치면 그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험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는 과거의 개인적 경험을 가지고 현재의 명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반드시 행동이 아니더라도 전이는 느낌, 태도, 환상, 소망 등 여러 비논리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의 삶은 결국 현실과 전이의 합작품이다.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과거에 큰 피해를 받았다면, 가해 권력이나 권력자에 대해 본능적인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힘든 과거를 담담하게 회상하며 현재를 살아나가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과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일에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복수'란 물건은 괴물과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한 복수는 가능하지 않다. 과거를 지우려 하기보다는 과거의 성찰을 통해 과거를 고통스럽지 않게 회상할 수 있는 통제력을 기르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해법일 것이다.
정도언[서울의대 교수-신경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