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志傳이 사라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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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志傳이 사라진 시대

입력 2005.02.15 00:00

"저 강언덕 너머| 내 다음 생(生)에는| 가끔 술도 대취하고| 아이낳고 살림도 살아보고| 바람따라 훌쩍 떠돌기도 하고| 거침없이 호연지기도 부려보며| 사람좋은 얼굴로 인자하게 살고 싶어라|...| 이번 생이 너무 처절하다| 내가 몸받은 시대가 너무 가파르고| 내게 지워진 업이 너무 크고| 남은 길이 너무 가파르다|...| 나 다음 생에는| 풀꽃이어도 좋고| 짐승몸 받아도 좋으니| 다정다감하게 살고 싶어라" 

-박노해의 시 '`내 다음 생에는' 중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이승의 삶이 고달프고 팍팍할수록 다음 생에는 좀더 좋은 팔자를 타고 나서 한번쯤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꿈을 가꾸게 마련이다. 굳이 내세(來世)까지 끌어대지 않더라도 우선 내 자식만이라도 이런 고생은 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은 모든 부모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꿈이자 희망이다. 없는 집일수록 자식 교육에 온 가족이 나서서 '올인'하는 것도 자식이라도 한번 여봐란 듯이 살게 하겠다는 한맺힌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입지전(立志傳)적 인물이 사라진 시대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주경야독 끝에 일류대학에 진학, 마침내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었다는 따위의 성공신화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지금은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을 학원에 보낼 수도 없고, 더군다나 한 과목에 몇 백만원씩 한다는 '쪽집게 과외'는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다. 자식을 조기유학 보내놓고 혼자서 산다는 이른바 '기러기 아빠'도 유학 보낼 정도로 여유있는 집안의 얘기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교과서만 갖고 공부했다"는 것은 일류대학에 수석합격한 입시생들의 앵무새 같은 모범답안일 뿐이다.

얼마 전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는 '기회의 땅' 미국이 세습적 신분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는 1월 25일자 칼럼에서 "미국이 출생 신분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신분사회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 뒤 "고등교육을 받은 상류층은 같은 동네에 모여 살면서 같은 학교에서 자녀들을 교육해 일류대학에 보내 이들이 성인이 되면 또 다른 부유층을 형성한다"고 비판했다. 한 마디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정착, 신대륙의 주류세력으로 자리잡던 시절이 지나갔다는 얘기다. 미국의 귀족계급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있기 때문에 신참자가 주류사회에 진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19세기말의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수천년을 이어오던 철옹성 같던 신분의 장벽은 무너졌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출생신분에 따라 빈부가 세습되는 새로운 신분사회적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류대학에 진학, 그 학벌을 디딤돌로 신분상승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자가 부자를 낳고, 가난뱅이가 가난뱅이를 낳는 빈부의 세습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돈 없는 집 자녀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는 교육환경에 원인이 있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형설지공을 쌓고 마침내 성공의 사다리에 올랐다는 입지전적 인물이 나올 수 없는 사회는 결국 활력이 죽은 사회다.

이광훈[경향신문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