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악마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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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악마의 끈

입력 2005.01.25 00:00

철조망은 섬뜩하다. 그 단어만 들어도 오싹해질 정도로 차가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건반사인 듯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철조망의 문화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철조망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목적으로 이용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철조망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저자는 수많은 문학작품과 사진, 삽화 등을 인용한다. 그런데 인용한 작품들에 등장하는 철조망은 한결같이 구속-차단-단절과 같은 냉혹함을 상징한다. 물론 철조망의 금속성과 뾰족한 '가시'의 영향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저자가 기술한 철조망의 역사를 차근차근 짚어본다면 철조망이 왜 그런 것들을 상징하게 됐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살인, 감금, 통제, 전쟁 등 잔혹한 상황과 연결되는 철조망은 1850년대 프랑스의 평화로운 한 농가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다. 나무로 만들어 쓰던 울타리를 바꾼 것이었다. 그 저변에는 가축들에게 해를 입혀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철조망은 가축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축을 돌보는 인간들의 힘을 덜기 위한, 가축을 더 효율적으로 가두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울러 '내땅'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도 내포돼 있었다.

철조망은 19세기 중반부터 치열하게 전개된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빛을 발한다. 서부로의 진출, 백인들의 정착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철조망은 지배와 소유를 위한 도구로 변화해 간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총칼뿐만 아니라 철조망에도 밀려났다. '악마의 끈' 철조망은 백인끼리의 싸움도 유발했다. 개척시대에 서로 땅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백인들 사이에서 영토에 대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조망을 쳐놓으면 누군가 비밀리에 그 철조망을 절단하는, 이른바 '철조망 절단 전쟁'이 곳곳에서 속출했다.

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철조망의 부정적인 기능은 초기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전쟁 중 철조망은 수시로 참전국들의 '새로운 영토'를 구획짓는 데 사용되었고 적의 침공을 차단하는, 혹은 대량학살에 이용되었다. 그 한 예가 군역사가 존 키건이 '철조망 안의 대량학살'이라고 표현한 솜(Somme) 전투였다. 독일군이 쳐놓은 철조망 때문에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6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철조망의 끔찍함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유대인 학살이다. 특히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전기 철조망은 인간의 잔혹성이 얼마나 극단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철조망에 전기를 흘려보내 몸이 닿기만 해도 치명적인 고압 전류에 감전되게 만드는 전기철조망은 유대인들에게는 '고통' '학살' 등과 동의어였다.

단지 철조망의 문화사를 시간순으로 기술하는 것에 그친다면 재미없다. '왜 철조망인가'라는 의문을 가진다면 이 책에 더욱 빠져들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철조망의 속성은 '통제와 구획'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철조망의 속성이 근대사회의 속성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아직도 담론이 거듭되고 있는 근대사회를 의욕적으로 조명하고 있지는 않다. 근대사회를 가장 명확하게 상징하는 것, 그것이 철조망이라는 것이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