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민 열풍
최근 우리 주위에서 이민을 갔거나 가고자 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특히 30대 젊은 사람들이 이민에 대한 욕망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무엇 때문에 이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것일까. 메틀러토레도코리아 직원들이 그 속내를 풀어놓았다. [편집자]
박영서(32, 기술영업부)
이기훈(31, 기술영업부)
성정애(30, 기술영업부)
박우현(29, 기술영업부)
김태율(24, 마케팅부)
정리 임형도 기자
사진 김석구 기자
성정애 : 전 정말 해외로 나가고 싶어요.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나라는 살기 힘들고 외국은 살기 좋을 것 같거든요.
이기훈 : 이민을 생각하는 30대가 늘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도 태율씨 빼고는 나이가 다 그 또래인데 아마 이민에 대해서 다들 고민해봤을 거예요. 왜냐하면 해외가 어떤지 알거든요. 다들 밖에 나가봤고 본 것도 많으니까요.
김태율 : 요즘은 또 애들 교육 때문에 많이 나가잖아요.
이기훈 : 솔직히 전 아이들 교육은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아요. 미혼이니까요.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민 가는 건 보통 40, 50대 부모님이죠. 우리 나이에 이민을 고민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 살기가 조금 버거워서 그런 것 아닐까요? 10년 전만 해도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웬만큼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도저히 안 되잖아요. 열심히 일해서 잘 산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됐어요. 기회도 공평하게 분배돼 있지 않고요.
성정애 : 맞아요. 나한테 언제 기회가 올지도 모르죠.
박우현 : 이민 간다고 돈을 안 벌지는 않잖아요?
박영서 : 물론 벌어야죠. 대신 여기서보다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죠. 모든 사람이 여유가 있을 테니까요. 여긴 너무 빡빡하잖아요. 뭐에 쫓기는 듯하고.
성정애 : 문제는 직업이에요. 한국에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거기서도 보장받는다면야 지금 당장이라도 가겠죠. 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 외국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요? 설거지? 세탁소?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박우현 : 그런 거 보면 전문기술자가 훨씬 유리하죠.
성정애 : 부모님이 아직 시골에 사시는데요, 난 한국 땅 자체도 좁은데 부모님은 이 넓은 지구에서 평생을 그곳만 알고 사시는 거잖아요. 답답해요.
김태율 : 관점의 차이겠죠. 평생 한 곳에서만 살아도 행복해하는 사람 많아요.
성정애 : 아까도 나온 얘기지만 우리는 바깥세상 어떤지 알잖아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죠. 우물 밖을 본 개구리는 우물 안에서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저 역시 아주 평범하게 직장생활하고 시집가고 그랬다면 못 느꼈을 거예요.
박우현 : 많은 사람이 이민을 경제적 이유와 관련 짓는데요. 다른 이유도 분명 있을 거예요. 심적으로 넉넉하게 살려는 사람이나 여유롭게 살려는 사람도 많아요.
성정애 : 이민에 관심이 많아서 사이트에 들어가면 문의하는 사람 대부분이 30대예요. 아직 패기는 남아 있고 삶과 부딪쳐보고 싶고.... 뭐 그런 감정들이 30대에게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기훈 : 장래에 대한 불안감도 이민을 부추기겠죠. 우리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해봐야 얼마나 다니겠어요. 더욱이 퇴직이 갈수록 빨라지잖아요.
박우현 :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증거죠. 국민연금만 해도 그래요. 친구들과 만나면 국민연금을 어떻게 하면 타먹을 수 있을까 논의한다니까요.
성정애 : 이민 가면 다 받을 수 있어요.
김태율 : 이민 가면 그곳에서는 결국 외국인 아닌가요?
박우현 : 그렇다면 이민을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건데요?
성정애 : 그럴지도 모르죠. 확실한 건 여기서 탈출하고 싶다는 거예요.
박영서 : 외삼촌이 한국에서 서울대 교수였어요.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수라면 그래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외숙모랑 아이들이 아주 좋아해요. 한국에서 답답한 생활을 하다가 그 넓은 곳으로 가니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투잡을 한데요. 외삼촌은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하는데 외숙모와 아이들이 절대 안 된다네요.
성정애 : 그곳은 여자들이 살기 편하니까요. 대신 남자들은 엄청 심심하죠. 우리처럼 일 끝나고 퇴근 후에 같이 모여서 소주 마시고 노는 문화가 없으니까요.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국이 더 그리울 거예요.
성정애 : 우리나라 술 문화가 특이하지.
김태율 : 지금 젊은 사람들은 외국을 멀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하지 않을까요?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죽어도 이 땅에서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지금 젊은 사람들은 해외연수다, 배낭여행이다 하면서 다들 외국에 갔다 왔고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외국을 마치 옆집처럼 인식하고 있어요.
성정애 : 맞아요. 맘만 먹으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언제든 볼 수 있고.
박영서 : 우리나라는 영어, 영어, 영어..., 영어에 강박관념을 갖고 있어요. 말은 글로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영어 아닌가요? 게다가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병역 문제! 내 자식들을 영어와 병역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서 해방시키고픈 심정도 강할 거예요.
이기훈 : 생각보다 되게 멀리 본다. 솔직히 난 자식 생각 같은 건 안 해봤는데. 곧 결혼할 여자친구와 이야기할 때도 항상 '우리 둘'에 대해서만 말하지 자식은 없었거든요. 이민을 가자는 얘기가 나와도 '우리 둘'의 문제만 거론하고요.
박영서 : 결혼하고 나면 달라질 거예요. 저도 총각 땐 그랬어요.
이기훈 : 여기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쫓겨다니는 일도 많아요. 대개 몇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잖아요. 왜 그렇게 결혼 청첩장은 많이 날라오는지 원. 돌잔치도 널려 있고... 각종 경조사가 너무 많아요.
박영서 : 그럼 나 기훈씨 결혼할 때 안 가도 되겠네? 그런 거에 치이는 게 싫다면.
이기훈 : 우린 또 그런 건 안 되지. 하하.
김태율 : 그런 게 없다면 인생이 정말 재미없지 않나요? 아마 왕따당할걸.
이기훈 : 아무튼 사람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건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일 거예요. 사람들에게 치이고 좁은 데서 사는 것보다는 행동반경이 넓고 시원시원한 데서 살고 싶어 하는 거죠.
박영서 : 가더라도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야 해요. 우리는 대개 '이민 가서 잘됐다'는 얘기만 듣지 '이민 가서 쫄딱 망했다'는 소린 못 듣거든요.
성정애 : 요즘은 또 이민 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예전처럼 쉽지도 않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부동산값과 생활비도 엄청 올려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김태율 : 그곳에서의 외로움을 극복할 자신도 있어야겠죠. 나이가 들수록 향수와 외로움에 시달린다는데 그것에도 대비해야 하고요.
박영서 : 우리나라 사정이 좋아진다면 이런 거 저런 거 전부 필요없어요.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데 뭐하러 이민 갈 생각을 하겠어요.
성정애 : 맞아요. 너무 많은 사람이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삼기 전에 우리나라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문제삼아야 해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모든 게 원활하다면 밖으로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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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모〈기술영업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