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이스]세상을 뒤집는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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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이스]세상을 뒤집는다 고로 존재한다

입력 2004.07.29 00:00

패러디 업계에도 스타는 있다. 이번에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의 '요염한' 여주인공으로 둔갑시킨 '첫비'(본명 신규용씨-33)도 바로 그러한 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첫비의 유명세는 지난해 10월부터 패러디사이트 라이브이즈닷컴에 '대선자객'이라는 연작패러디물을 연재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소재로 유명 정치인 등을 차례로 등장시킨 '패러디 무협극화' 대선자객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첫비는 하루 아침에 사이버 세계의 영웅으로 등장했다.

[패러다이스]세상을 뒤집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 일을 계기로 첫비는 노사모 홈페이지의 캐릭터 디자인이나 만화-그래픽을 도맡게 됐다. 노사모 활동에 빠지면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둔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여의도 아는 사람의 사무실에 아예 눌러앉았다. 패러디사이트 라이브이즈닷컴은 이렇게 시작됐다.

노사모 활동해온 '첫비' 신규용씨

현재 라이브이즈닷컴의 대표작가로 활동하며 모 언론사에도 작품을 연재중인 첫비가 작품 소재를 얻는 방법은 단순하다. 라이브이즈닷컴의 김태일 대표는 "시사패러디라는 것은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 꼴불견인 장면을 꼬집는 것"이라고 전한 뒤 "자신의 느낌과 상식을 바탕으로 이에서 벗어나는 일은 모두 패러디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양의 패러디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첫비가 가장 몰두하는 부분은 정치인 사진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것. 이 부분은 가장 품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다. 인터넷 상에 공개된 사진은 제한적인데다 인물의 표정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몹 헤딩라인뉴스를 진행하는 이명선씨(27)는 패러디뉴스라는 독특한 분야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방송사 아나운서를 꿈꾸던 이씨는 '참한' 외모와 달리 엽기적인 멘트를 서슴없이 날려 네티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일정한 틀에 갇힌 기존 앵커들의 모습을 '패러디'하는 방식으로 뉴스의 호소력을 극대화하는 것.

말이 패러디지 사실 헤딩라인뉴스의 뉴스 제작과정은 일반 뉴스프로그램을 방불케 할 정도로 꼼꼼하고 복잡하다. 미디어몹 최내현 대표는 "오전에 작가팀과 그림팀, 총피디의 회의를 거쳐 아이템이 결정되면 오후 2~3시께 대본이 나온다. 이후 그림과 음향을 적절히 합성하고 성우의 목소리를 더빙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한 두 꼭지 제작에 꼬박 하루가 걸린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대개 패러디라고 하면 영화포스터 등에 주인공의 얼굴을 따붙이는 정도인데 우리는 그 과정을 기본으로 동영상까지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종합 패러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며 웃었다.

패러디사이트 풀빵닷컴의 '차차'(본명 차세정-24)는 최근까지 인기를 끌었던 '최성국 시리즈'를 만든 주인공이다.

올초부터 사이버 세상에 떠돌기 시작한 최성국 시리즈는 탤런트 최성국이 2년 전 록가수 복장으로 TV에 출연한 모습을 합성한 사진들이다.

어설픈 록가수로 바뀐 최성국이 전혀 예기치 않은 사진과 결합했을 때 던져주는 웃음의 폭발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 이와 함께 얼마 전에는 최성국의 미니홈피까지 공개되면서 최성국의 인기가 치솟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최성국의 미니홈피에는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최성국 본인의 친절하면서도 엽기적인 답변이 기다리고 있다.

[패러다이스]세상을 뒤집는다 고로 존재한다

박분자-최성국은 풀빵닷컴 스타

사이버가수 '박분자' 역시 풀빵닷컴이 낳은 스타다. '휴지의 시' 등 패러디 곡 3편을 남긴 박분자는 500만 히트를 기록하는 등 적어도 사이버상에서는 웬만한 인기가수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선보인 노래는 MC the MAX의 '천사의 시'를 패러디한 '휴지의 시'와 빅마마의 'break away'를 패러디한 '잡히지마' 등이다. 기존 노래에 엽기적인 가사를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박분자의 경우 이렇게 인기가 치솟고 있지만 아직 그 실체가 공개되지 않아 네티즌들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많은 스타를 낳기도 한 패러디지만 작가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패러디와 명예훼손이라는 합법과 위법 사이에서 위험한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하얀쪽배'라는 이름으로 맹활약하던 패러디작가 신상민씨(26)씨는 정치패러디물을 인터넷에 올려 후보자를 비방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당한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라이브이즈닷컴 김태일 대표

"박 대표는 정당한 비판 수용해야"

라이브이즈닷컴은 어떤 회사인가.

"지난해 11월 출발한 라이브이즈닷컴은 네티즌들 스스로 시사나 정치 등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소다. 표현에는 패러디뿐만 아니라 글이나 그림, 음악 등 모든 장르가 동원된다. '패러디 작가'나 '시사패러디'라는 영역을 대중화한 것도 라이브이즈닷컴이었다. 첫비의 '대선자객'은 패러디 작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상근 작가는 얼마나 되나.

"첫비를 포함, 4~5명이다. 첫비 이외의 작가들은 자신의 필명과 소속을 공개하기 꺼린다. 전업작가인 첫비를 제외하곤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교사나 학생, 심지어 공무원도 있다."

문제 작품이 청와대 게시판에 오른 것을 어떻게 보나.

"패러디가 대중화되다보니 청와대 담당자도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겠나. 일부 언론에서 작품이 전달하는 전체 메시지는 무시한 채 '박 대표가 침대에 누워 있는' 포스터만 물고 늘어져서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나온 배경은.

"작품에 나온 대로 수도 이전에 대해 조-중-동이 자꾸 말을 바꾸고 한나라당이 이에 부화뇌동하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와 일부 맥락이 일치한다."

유치하고 조잡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작품 전체가 아니라 포스터만 떼내고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않았다면 인터넷의 특성상 이와 같은 생명력이나 감염력은 없었을 것이다."

명예훼손은 아닌가.

"아니다. 첫비가 쌍욕이라도 했나. 박 대표는 공인인 이상 정당한 비판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패러디는 허다하다. 한나라당도 '좋은나라닷컴'이라는 패러디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인터넷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