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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있어도 없다?

입력 2004.04.29 00:00

경향신문 외교안보팀

'미국은 북한 핵개발을 싫어한다. 하지만 북한 핵보유가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이를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다. 미국과 북한의 `'핵게임'이 또 한 번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얘기다.

북한 핵, 있어도 없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보유 여부는 확인된 바가 없다. 미국과 한국 등의 정보당국은 북한이 영변 원자력발전소 등을 통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일정량 추출했을 가능성이 높고, 여기에 북한이 파키스탄 등을 통해 핵기술을 전수받았을 가능성을 감안하면 1~2기의 핵무기를 제조,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따라서 칸 박사의 증언은 신빙성 문제가 제기되긴 하지만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최초의 입증자료다.

'북핵'은 국제질서 재편의 도화선

그런데 미국의 반응은 의외였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칸 박사 증언이 보도된 날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핵 억지력 보유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미국 정보당국의 평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정보당국은 오래 전에 북한이 플루토늄에 기반을 둔 핵무기를 1~2기 생산했으리라고 평가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바우처는 "칸 박사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도와준 것을 인정했다. 그의 인정은 북한의 부인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핵보유보다는 우라늄 고농축 프로그램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하다.

바우처 대변인의 발언은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기본 방침에 혼란을 준다.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증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말은 했지만 절박성과 진정성은 많이 떨어진다. 심지어 북한 핵보유가 사실이라도 묵살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까지 준다. 지난 4월 15일 방한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도 칸 박사의 증언과 관련해 "그런 일 때문에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보유 사실'보다는 그 가능성에 더 천착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의 태도는 일차적으로 칸 박사의 증언이 완벽하게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그의 증언만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인정하기는 곤란하다. 칸 박사가 본 것이 실제 핵무기였는지, 만약 핵무기였다면 그것이 폭발 실험을 성공적으로 거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설사 폭발 실험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명실상부한 핵무장력을 인정받으려면 핵무기를 미사일에 부착하거나 포로 쏠 수 있게 1,000㎏ 이하로 경량화할 수 있어야 한다. 첨단정보 무기가 발달한 요즘 핵무기를 항공기에 실어 투하하는 방식만 갖고는 핵무장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비난하고 이를 막기 위해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북한이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갖고 있고, 실제로 핵무기도 갖고 있다는 핵과학자의 증언을 들은 미국의 태도로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동북아 정세를 뒤바꿀 만한 말 그대로 `'핵폭탄'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핵보유 자랑하진 않을 것

미국은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북핵 핵개발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핵무기를 이미 보유했다는 증언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배경은 뭘까.

그것은 북한의 핵보유 의혹 단계와 보유사실 확인 단계는 그 대처 방법을 바꿔야 할 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어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보유사실이 공식 확인되면 더욱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동북아 지역의 긴장고조가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 쪽에서 보면 북한의 핵보유에는 군사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수다. 미국은 한반도나 주일미군에 핵무기를 배치하거나 핵무장력을 갖춘 함대를 한반도 인근에 주둔시켜야 한다. 외교적으로는 북한을 핵보유국 명단에 올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모두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는 대단한 부담이 된다.

북한의 핵보유는 또한 미국 주도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질서의 실패를 의미한다. 기존 핵보유국가끼리 핵무기의 양과 실전배치 등을 조절하는 대신 그 외의 국가들은 핵을 보유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NPT체제가 깨지면 미국의 대외영향력은 결정적 손실을 입게 된다.

미국이 애써 태연한 이유

북한 핵, 있어도 없다?

미국의 반테러 전쟁도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된다. 북한을 비롯해 새롭게 핵무기를 만들어낸 국가가 알 카에다 등 테러-저항 세력에 핵 기술 및 핵무기를 이전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9-11테러의 위력을 경험한 미국으로서는 테러-저항 세력의 핵무기 보유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가능한 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 핵, 있어도 없다?

핵보유 선언을 하거나 핵실험을 하는 순간 북한 역시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을 감안한 처사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엄청 거세질 것이며, 정치-경제적 손실이 핵무기 개발로 인한 이익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막대한 정치-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도 부담 중 하나다.

북한과 미국의 이런 입장과 방침 때문에 북핵 문제는 긴장이 유지되면서도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는 측면이 있다. 긴장이 일정 수준에서 관리되는 모양새다. 물론 국내 정세 등이 급변하면 북한이나 미국이 정책과 방침을 바꿀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날카로운 칼을 숨겨둔 채 미국과 북한이 벌이는 `'핵게임'은 한국 국민에게는 도저히 떨칠 수 없는 고통이 되고 있다.



김정일, '핵'들고 중국 갔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월 19일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4월 22일까지 중국에 머물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대련이나 선양 등 동북 3성의 도시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2000년 5월 이후 거의 4년 만이고, 2002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취임한 후 처음이다. 특히 2002년 10월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처음이어서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은둔의 왕국 최고권력자의 중국 방문은 늘 화제를 낳았지만 북핵 문제를 다루는 2차례 6자회담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파키스탄 핵과학자의 '북한 핵무기 목격 증언'이 나오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방문에 대한 관심은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개혁-개방과 경제협력 문제 논의도 관심거리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측이 더 관심이 크다.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을 강력 권유하도록 중국측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 주 중국을 방문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도 후진타오 주석에게 북한이 핵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씻어줄 수 있는 행동을 먼저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으로선 자국의 경제발전을 통한 세계 강국 도약을 위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의 핵개발은 일본과 한국, 대만으로 하여금 강력한 핵개발 유혹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동북아 정세불안의 첫번째 요소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정세 불안은 중국 내 인권 문제와 함께 중국 경제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다. 2008년 올림픽유치에도 중대 장애요인이 된다. 중국은 한편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성공적 중재역할을 통해 동북아 영향력 확대도 꾀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도 북핵 문제가 체제유지와 민생안정,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은 최근 들어 안보 우려를 갈수록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이 이지스함을 오는 9월부터 동해상에 상시 배치키로 하고 주한미군 무기와 장비의 현대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막판으로 몰리고 있는 김 위원장이 이번 방문에서 중국의 북핵해법에 관심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 기간 동안 핵개발 문제와 관련해 중대결단을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사실 북한으로선 핵 문제보다는 중국의 경제지원이 더 큰 관심이다.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인플레 현상과 에너지난 등은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심각한 물품난으로 사회기강이 이완되고 군부마저 동요하는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는 첩보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북한과 중국은 북핵문제와 북한 경제지원 문제에 대해 일정 수준의 합의점들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의 개혁-개방 의지도 관심을 모은다. 김 위원장은 중국 방문 후 친 시장경제적 조치를 내려왔다. 2000년 상하이 방문 때 푸동지구를 둘러보며서 '천지개벽'을 외친 뒤도 신의주특구 지정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어느 지역을 둘러보고, 귀국 후 개혁-개방과 관련해 어떤 조치를 내릴 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2002년 중국이 양빈 신의주 특별행정장관을 구속한 이래 껄끄러웠던 양국관계를 회복하는 문제도 의제에 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