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제 상황과 혼탁한 정치적 문제가 얼룩지게 했던 2003년 계미년이었다. 이제 계미년의 문이 닫히고 2004년 갑신년의 문이 열리고 있다. 봉건체제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자본주의의 근대 사회로 나아가려는 개화운동이 있었던 갑신정변은 꼭 120년 전에 일어났다. 육갑(六甲)을 두 번이나 지난 2004년 갑신년, 120년 전 혁명적 기운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원숭이띠해를 맞아 여러 분야에 몸담고 있는 원숭이띠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이들이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 것은 역시 경제난-취업난이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꽁꽁 얼어붙은 경제와 청년실업을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자신의 띠해를 맞는 것은 그다지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의 기대감은 있었다. 그 기대감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이었다.
금주의 테마
원숭이띠들의 새해 소망
수다 떤 사람들
조영주 (36, 디자인회사 ID369 실장)
이상관 (24,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3년)
김윤경 (24, 한양대 정보통신원 행정조교)
한옥재 (24, 성신여대 산업디자인과 4년)
정리 / 임형도 기자
사진 / 김석구 기자
이상관:원숭이이띠 해라고 해서 별달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지만 다른 해보다 기대가 큰 건 사실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분들도 다 원숭이띠이니깐 저랑 같은 입장 아닌가요?
한옥재:뭐..., 그런 것도 같구 아닌 것도 같구, 그러네요.
이상관:새해에 가장 바라는 점은 아무래도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는 것이겠죠. 아직 학생 신분인 저나 제 주변에서 보면 뭐니뭐니해도 취업난이 가장 큰 걱정거리거든요. 많은 사람이 취업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 한 해가 됐으면 해요.
김윤경:학생 신분은 아니지만 저 역시 현재 학교에 근무하고 있어서 대충 사정을 짐작하긴 하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취업난이 그리 심한 것 같진 않아요. 취업이 안 되는 학생들을 거의 보지 못했거든요. 심지어는 기업을 골라서 가는 경우도 봤어요. 취업난보다는 학생들이 무조건 대기업만 희망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이상관:과마다 틀린 것 아닌가요? 윤경씨는 공대 쪽 학생을 많이 접한다고 하신 것 같은데요?
김윤경:글쎄요.... 아무튼 제가 본 바에 의하면 그렇단 말이죠.
이상관:저 같은 경우, 선배들 보면 취업이 안 돼 고민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몇십 번이나 취업 원서를 낸 선배도 자주 볼 수 있구요. 공대 쪽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사회과학대나 농대 같은 데는 꽤 힘든 것 같아요.
한옥재:과마다 상황이 틀린 거겠죠. 인기 있는 학과는 걱정이 없을 테고, 인기 없는 과는 걱정이 태산일 테고.
조영주: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취업이라면 저처럼 30대 중반인 사람들에겐 구조조정이 가장 큰 문제예요. 경제가 너무 어렵고 '38선'이라는 용어도 나돌 만큼 퇴직에 대한 심려와 고민이 심각한 수준이에요.
김윤경:새해에는 정말 경제가 좋아졌으면 해요. 저 개인적으로는 남자친구도 꼭 생겼으면 하구요(웃음).
한옥재:친구들이 얼른 다 취직됐으면 좋겠어요.
조영주:그런데 취업이 힘들긴 힘든가요?
김윤경:제가 보기에는 요즘 학생들 아직 배가 부른 것 같아요. 처음부터 대기업만 선호하구요. 눈높이를 조금 낮추면 좋을 듯한데요.
한옥재:면접 간다고 해놓고 안 가는 친구도 꽤 있더라구요.
조영주:제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느냐면요. 얼마 전에 제가 직원을 한 명 뽑았거든요. 직원을 뽑는다고 인터넷 구인-구직 알선업체에 12만원 정도를 들여서 광고를 냈는데.... 그게 다 소용없었어요. 결국 아는 사람을 통해서 채용할 수밖에 없었죠.
이상관:지원자가 한 명도 안 왔나요?
조영주:오기는 많이 왔죠. 하지만 취업을 희망해 온 친구들이 모두 자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더라구요. 쉽게 말해 자기 실력은 고려치 않고 높은 연봉만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저같이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철부지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모쪼록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신중, 또 신중하게 취업을 희망했으면 좋겠어요.
김윤경:눈높이가 굉장히 높다는 말씀이시죠?
조영주:맞아요. 사실 전 지금 상당히 불쾌해져 있는 상태예요. 여기저기서 실업난이라 난리들인데 제 생각에는 실업난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과연 사회라는 것이 어떤 데인지 냉철하게 따져보고 몇 개월이든 직접 부딪쳐 고생해보자는 생각은 없고 미리 나는 이 정도 연봉은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연봉이 얼마인지보다는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김윤경: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나이답지 않게 사고방식이 늙은 건지 모르겠지만....
조영주:그 '어디든지'라는 범위가 제한적인 것은 아닐까요?
이상관:아니오. 그렇지 않아요. 정말 말 그대로 '어디든지'예요.
김윤경:너무 전공에 연연해하는 건 아닌가요? 전공을 살리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는데요.
이상관:그런 것도 아니에요. 전공 불문하고 시험 준비에 정신없는 선배들이 많아요.
한옥재:디자인계열은 그렇지 않아요.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친구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은 충무로예요.
이상관:충무로요?
한옥재: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 광고나 전단지 있죠? 충무로가 그런 것들을 만드는 총 집산지라고 할 수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제 친구들이 그런 전단지 같은 것 만드는 데를 제일 싫어해요.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하죠.
조영주:디자인의 실무를 배울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옥재:그건 맞아요. 그런데 많이 꺼려해요.
조영주:음.... 제 생각은 이래요. 디자인에 관해서만 말씀드리자면 거기는 디자인의 기초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에요. 그래서 디자인 단계부터 최종 '물건'이 나올 때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제대로 배울 수 있어요. 제가 곁에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런 과정을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어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 있죠. 자기 실력은 생각 않고 연봉만 생각하는 것, 또 경험을 쌓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네요. 가보지도 않고 무조건 가기 싫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한 길은 보이지 않죠.
한옥재:맞아요. 그리고 또 방학 때 경험하기도 해요. 방학 때 충무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죠.
김윤경:나름대로 일이 하찮다고 여기는 건 아닌가요?
한옥재:부인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거기에 안주할까봐 그걸 겁내고 있는 거예요.
이상관:지금은 아예 1년은 놀겠단 생각을 많이 해요. 1년 동안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입사지원서를 넣어보고 안 되면 그 다음에 생각하는 거죠.
조영주:본인은 어떠세요?
이상관:저요? 저도 이제 4학년이 되니까 얼른 생각해야 하는데.... 글쎄요, 앞이 캄캄하네요.
조영주:신문방송학과면 언론사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상관:저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에요.... 사실 방학 때 잠깐 신문사 경험을 했는데요, 기자들 사는 게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아서..., 힘들구나라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조영주:보람 같은 건 생각 안 나던가요? 조금 멀리 봐야겠다는 생각은요?
이상관: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조차 못했어요(웃음).
한옥재:20대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저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내보일 때, 귀를 막아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것을 아예 신경쓰지 않고 멀리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요.
조영주:전 그게 답답한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멀리 못 보는 근시안적인 안목이 정말 화나요.
한옥재:사실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들려면 어른들이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른들이 먼저 너 어디 다니니?' '돈은 많이 받구?' 같은 질문을 해요. 그런 질문 받는 게 얼마나 곤욕인데요. 그런 것들 다 신경쓰지 않고 지내기는 너무 힘들어요.
이상관:처음부터 무조건 좋은 곳을 바라는 것은 아니구요. 막상 입사했을 때 내가 경력을 어느 정도 쌓을 수 있으며 어디로 옮길 수 있는지 등을 같이 보는 거예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이왕이면 조금 나은 곳으로 가고자 한다고 할까요.
김윤경:아예 입사 때부터 이직을 염두에 두는 추세인 것이죠.
조영주:당당함-자신감이 제일 중요한 것 같군요. 사실 저 아직 시집 안 갔거든요. 그런데 아까 옥재씨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말 많이 들어요. '너 시집 안 가니?' '남자는 있니?' '언제 갈거니?' 같은 소리요. 제 생각엔 그런 식의 말은 어른들이 인사차 던지는 말 같아요. 그런 말에 위축되고 주눅 들면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에 누구보다 내가 당당해야죠.
조영주:일단 나가면 길이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자신감 부족이에요. 그리고 인내심도 필요해요. 고진감래라는 말 있죠? '내가 노력하면 인정받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라는 자신감으로 젊을 때는 좌충우돌, 이리저리 부딪쳐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조급증은 빨리 버리구요.
한옥재:경제가 하도 어렵다보니 정치에는 관심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현재 떠들썩하게 벌어지고 있는 대선자금이나 내년에 있을 총선 등 정치 문제는 젊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해요.
이상관:맞아요. 우리 학교도 얼마 전 총학 선거가 있었는데 관심 자체가 워낙 낮았어요. 제가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들은 것에 의하면 예전의 학생운동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어요. 또 지난 대선 때 아시다시피 젊은 사람들은 노무현 후보를 많이 선호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조금 퍼져 있어요.
한옥재:당장 내 코앞이 석자인 상황에서 정치는 더 이상 큰 일이 아니죠.
김윤경:자기 앞가림도 못하는데..., 그죠?
한옥재:네 맞아요. 앞가림도 못하는데 웬 정치?
이상관:저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원숭이띠를 맞이해서 우리 '원숭이'들이라도 먼저 사회에 적극 참여했으면 해요. 총선도 있잖아요. 경제든, 사회든, 취업이든, 결국 정치를 완전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한옥재:물론 정치적-제도적 문제를 간과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나 자신의 문제가 바로 앞에서 돌부리처럼 자꾸 걸리는데 딴 데 신경쓸 여지는 없잖아요?
이상관:모 방송국에서 선거만 있으면 '선택'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 아시죠? 그래요, '선택'의 주체는 바로 우리 아닐까요? 사회가 아무리 공룡이라 해도 우리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거라고 봐요.
조영주:저도 원숭이띠로서 원숭이띠해를 맞아 바라는 게 있어요. 개인적으로 우리 회사ID369가 발전했으면 하네요. 그리고..., 이젠 정말 결혼하고 싶어요. 저 독신론자 절대 아니에요.
이상관:이승엽 선수가 일본에서도 잘했으면 해요. 이승엽 선수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국가 차원에서도 잘 해야 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