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MH 유지 승계 "아내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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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MH 유지 승계 "아내의 이름으로"

입력 2003.11.13 00:00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신임 회장이 첫 출근하던 10월 27일.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상한가로 화답했다. 재미있는 것은 상한가의 이유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가지 재료가 작용했다. 고 정몽헌 회장의 타계 이후 표류하던 현대그룹이 주인을 찾음으로써 경영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하나이며, 또 하나는 현 회장과 현대가(家)의 지분경쟁 가능성이다. 고 정 회장의 장모이자 현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여사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8.57%가 현대가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6%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현 회장이 경영 안정을 꾀하기 위해 지분을 더 늘리지 않겠느냐는 기대심리가 작용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현 회장과 현대가측의 갈등구도를 전제로 한 것이다. 선장이 바뀐 현대호(號)는 이같이 태생의 불안함을 잉태한 채 닻을 올렸다.

KCC 채무 갚아 지분 되찾을 계획

[경제]MH 유지 승계 "아내의 이름으로"

현 회장이 취임까지 겪은 우여곡절은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정 회장의 사후 외국인들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엘리베이터 지분을 대거 사들이며 그룹지배구조를 위협했다. 이에 맞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을 비롯한 범현대가에서는 상선과 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이며 방어에 나섰다. 정 명예회장의 과도한 방어는 '지원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비쳤고 분위기는 묘하게 돌아갔다.

정 명예회장측은 과연 순수한 '백기사'였을까. 정 명예회장은 조카 가운데 맏형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뚝심과 성격을 빼닮은 정몽헌 회장을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외부로부터 현대그룹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유명을 달리한 조카와 큰형님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라는 게 정 명예회장의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이것이 피가 다른 며느리 쪽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간 KCC 쪽에서 간간이 그룹 경영에 관여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은 사실이다. 결국 정 명예회장측이 지분을 사들인 것은 조카에 대한 '지원'과 며느리에 대한 '견제'의 성격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단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현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정 명예회장 쪽에 빌린 돈을 갚아 담보로 잡힌 엘리베이터 지분을 되찾아오겠다고 밝힌 것도 서둘러 관계를 정리하고, 그룹 회장의 위상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용하고 검소한 외유내강형

온갖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서도 현 회장측 가족은 초지일관 '상식선에서 이해해달라'고 주문했다. 김문희 여사(용문학원 이사장)는 고 정몽헌 회장의 49재이던 지난 9월 21일 우이동 도선사에서 그룹 경영의 향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렵게 생각말고 상식선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이후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상식'이라는 단어를 거론했다. 이는 고 정 회장의 현대그룹 지분과 유지를 제대로 승계할 수 있는 사람이 그룹을 맡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현 회장이 취임하면서 '상식'의 의미는 분명해졌다.

최고경영자로서 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차분하면서도 똑똑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평가는 고 정 회장의 장례와 49재를 거쳐 첫 출근 때까지 비친 일련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자는 현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지난 10월 21일 휴대전화로 전화통화를 했다. 비록 긴 통화는 아니었지만 그는 질문에 또박또박 답했다. 그룹을 총괄할 전문경영인 선임은 고려치 않고 있으며, 지금의 사장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고 본인이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대표이사를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이사를 맡는다는 것은 회장으로서 단순히 상징적인 자리보다는 그룹 경영을 책임지겠다는 의미이다.

현 회장은 지난 10월 28일자 조간신문에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현 회장이 휴대전화를 받으며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을 사진기자들이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휴대전화를 받는 모습이 왠지 어색했는데, 그것은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 모션'이었다.

현 회장은 지인들 사이에서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기보다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품의 전형적인 '내조형'이나 '현모양처형'으로 알려져 있다. 또 재벌집안 며느리답지 않게 매우 검소하고 평소 이웃들과도 허심탄회한 인사와 대화를 나누는 등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가 내부의 평가는 다소 다르다.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강단'이 있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는 것이다. '후계구도'를 겨냥한 포석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딸 지이씨(26)를 11월 초 현대상선에 입사시킨 것에서도 현 회장의 성격이 드러나고 있다. 현 회장은 전화통화에서 "경영수업이라는 측면보다는 다른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현대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이씨의 향후 그룹 내 위치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봐야죠"라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딸 지이씨가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고 하자 현 회장은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현 회장의 공식적인 첫 대외일정은 백일 탈상(11월 15일) 직후인 11월 18일 열리는 금강산 관광 사업 5주년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 회장은 앞으로 상선-택배-엘리베이터-증권-아산 등 핵심 계열 5개사의 경영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위치에 서게 됐다. 대북 사업은 현재 큰 차질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북측의 모호한 태도, 평화항공과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향후 전도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통적으로 여성 불모지였던 현대가에서 현 회장의 경영수완도 관심사이다. 향후 정상영 명예회장측과의 관계 설정도 현 회장의 몫이다. 특히 재계 일각에서 현대가의 일부 인사가 정씨 피가 섞이지 않은 현 회장에게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맡기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현 회장이 현대그룹 경영을 총괄하며 앞으로 어떤 카드를 내밀지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형곤[헤럴드경제 산업1부 기자] kimhg@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