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걸작 비디오]'더블 해피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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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걸작 비디오]'더블 해피니스'

입력 2003.10.23 00:00

[숨은 걸작 비디오]'더블 해피니스'

할리우드와 작업하지만 중국인으로서 자기 색깔을 지키는 감독이 있다. [뜨거운 차 한 잔] [조이 럭 클럽]의 웨인 왕은 미국에 사는 중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했고, 리안은 [결혼피로연]에서 동성애자인 대만 출신의 미국 유학생들이 부모의 억압을 맞받아치는 과정을 경쾌하게 그렸다. 이제 중국계 캐나다 여성 감독 미나 슘이 그 계보를 잇는다.

애니메이션으로 도입부 자막을 앙증맞게 꾸민 영화는 식탁 위의 즐거움부터 공개한다. 밥상머리에서 공동체 교육이 이뤄진다고 했던가.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이 빙 둘러싸인 식탁엔 지지고 굽고 튀긴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독특하다. 가족 한 명씩 카메라 앞으로 나오더니 정보를 알려주듯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큰딸 제이드(산드라 오)는 한 살 때 홍콩을 떠나 캐나다로 왔다. 부모는 어서 빨리 좋은 중국 남자와 결혼하기를 희망하지만 그녀는 부모 몰래 백인 청년과 만난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꿈꾸는 제이드에게 맡겨진 역은 기껏해야 대사 한마디 없는 동양계 식당 종업원이다. 홍콩에서 온 배역 담당자 앞에서는 한문을 한 글자도 읽지 못해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다.

[숨은 걸작 비디오]'더블 해피니스'

마지막 내레이터로 등장한 어머니는 자식을 우물에 빠뜨려 죽인 옛날옛적 중국의 벙어리 미혼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큰아들을 먼저 보낸 자신의 신세가 벙어리 여인보다 더 슬프다고 생각한다. 온 가족이 가요 반주기에 맞춰 밤새도록 노래하지만 뭔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착시를 일으키게 하는 몇몇 장면의 카메라 기교와 편집이 돋보인다.

처음에 제이드는 가족이 없는 사랑은 유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선을 본 뒤에 가정은 유령의 집으로 바뀐다. 제이드가 가출을 선언하자 풍성한 식탁은 단숨에 얼어붙는다. 마침내 제이드는 아버지의 딸에서 한 사람의 여자로 거듭난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딸을 떠미는 어머니와 얼떨결에 보물이라도 도둑맞은 듯한 어버지의 표정이 흥미롭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자기 자식을 아는 아비가 현명한 아버지다"라고.

박평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