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수사권 폐지 성과 업은 정청래, 중도 확장 내건 김민석과 격돌
승자 나와도 당내 권력투쟁은 계속될 듯…정계 개편 동력은 없어
7월 29일 서울 마포구 MBC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출을 위한 후보자 방송토론회에서 김민석(왼쪽부터), 정청래, 송영길 후보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18년 4월 기자는 ‘보수 몰락, 한국사회 근본 변화의 시작일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였다.
근거가 없던 건 아니다. 당시 한국갤럽 조사에서 자신의 정치성향을 진보라고 답한 사람이 보수라고 답한 사람을 처음 앞질렀다. 20대부터 50대까지 진보성향이 우세했다. 민주당이 30·40대 중심 정당에서 20~50대를 아우르는 다수 정당으로 확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8년 뒤.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은 40·50대가 됐다. 핵심 지지 기반인 ‘386’의 60%는 686이 됐다.
올해 한국갤럽의 7월 전체 통합조사에서 50대는 진보 36%, 보수 18%였지만 20대 남성은 보수 34%, 진보 13%였다. 서울에서는 보수성향이 진보보다 높고 인천·경기는 두 성향이 팽팽했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 2018년 기사 작성 때도 인터뷰에 응했던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젠더 갈등이나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20·30대가 등을 돌렸다. 전국 단위 선거인 대통령선거에서는 젊은 세대 내부의 분화가 커졌다. 노년층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도 10년이 흐르는 동안 함께 늙었다. 유권자들의 성향 유동성이 커졌다.”
이런 조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꺼낸 말이 ‘구조적 다수’다. 지난 7월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집권 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첫 오찬회동 자리였다.
국민통합과 함께 ‘당내 단합’을 당부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그는 “내부의 단합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고 구조적 다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발언만 놓고 보면 국정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당 지지층을 중도와 다른 세대로 확장하겠다는 유권자 연합론에 가깝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합당이나 분당, 신당 창당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시민 작가가 이를 대통령 주도의 민주당 ‘재건축’으로 해석하면서 논쟁이 불거졌다. 그는 7월 15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서 이 대통령이 기존 민주당을 증축하는 수준이 아니라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재건축·재개발하는 이른바 ‘정계 개편’을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7월 29일 김민석 전 국무총리는 민주당 당대표 후보들의 첫 토론 자리에서 구조적 다수와 관련된 논의를 이어갔다. “대통령이 언급한 ‘구조적 다수’는 진보 세력과는 연대하고 조국혁신당 같은 당과는 상호토론을 통해 합당 여부를 결정하고 대대적인 보수·중도·진보를 망라하는 확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 없이는 진보·민주개혁 세력은 안정적인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 송영길 후보는 “저도 동의한다”고 답했다.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확인된 대통령 발언의 ‘진의’는 정계 개편보다 민주당의 외연 확장과 당내 주도권 재편이다. 그러나 민주당에 적잖은 영향력을 가진 유 작가는 “섣부른 재건축이 코어 지지층 이탈과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면서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의심한다. ‘구조적 다수’ 배경을 둘러싼 공방은 현실 정치 문제가 됐다.
구조적 다수의 시험대
‘구조적 다수’라는 표현을 주목하는 시각은 당 밖에도 있다.
“지지 세력을 중산층과 합리적 보수층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외연 확장론은 흔한 말이다. 지난 30년간 정치평론을 해왔지만 ‘구조적 다수’라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가 언급한 것은 김 전 총리가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당시 했던 역할이다.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간판만 바꿔 단 것이 아니었다. 제3지대에 신당을 만든 뒤 기존 새정치국민회의뿐 아니라 시민사회·전문가·중도 인사를 결합하는 과정에 당시 초선이었던 김 전 총리가 핵심적 책임을 맡아 완수해냈다는 것이다.
“김민석이 당대표가 되면 인사 몇명을 영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과 당의 관계를 일치시키고 지지 세력 확충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것이다.”
그는 연장선에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승자는 김 전 총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메가프로젝트를 이재명이 호남에 던진 것이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았다. 정청래가 당선되면 집권 2년차인 현직 대통령이 사실상 레임덕에 빠지는데, 역대 민주당계 대통령들이 주지 못했던 것을 준 대통령의 뜻을 호남이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구조적 다수를 만들 명분과 방식은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물밑에서 합의한 뒤 결과만 발표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전 대표가 당선되면 당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정 전 대표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추진했고, 검찰개혁 등 민주개혁 의제의 선명성을 강조해왔다. 중도층 유입보다 강성 당원과 민주개혁 진영의 결집에 무게를 둔 노선이다. 그가 생각하는 통합은 분명 이재명 대통령이 생각하는 구조적 다수와 차이가 있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집토끼 결집’과 ‘중도 확장’의 충돌로 정리했다.
“유시민·김어준·정청래 쪽에는 지금은 외연을 확장할 때가 아니라 내부를 단속해 집토끼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 대통령은 팬덤의 선명성 경쟁만으로는 국정운영에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철현 정치평론가는 “김민석은 대통령 중심의 여당을 주장하지만, 정청래는 당의 독자성을 강조한다”며 “대통령 중심의 여당이냐, 여당 안에서 야당 역할을 하는 ‘집권야당’이냐를 가르는 선거”라고 말했다. 친노·친문 이후 민주당의 정치적 정통성을 누가 이어갈지를 둘러싼 주류 교체 싸움도 전대의 이면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정청래의 입법 승부
국회는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거쳐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삭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검사를 수사 주체에서 제외하는 대신 경찰이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를 일정 기간 안에 이행하도록 하고 피해자와 고발인의 이의제기권을 확대했다. 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공포·시행 수순에 들어간다. 법무부 장관이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여권에서는 행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입법은 끝났지만 정치적 평가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민주당 강성 당원들은 보완수사권 폐지를 검찰개혁을 밀어붙여온 정 전 대표의 성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8월 17일 최종 결정되는 당대표 선거에서 정청래가 만만치 않은 세를 얻을 거로 보는 관측이 많은 이유다.
국민의힘 쪽 김성훈 정치평론가는 개정안 통과가 “오로지 정청래의 업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봤다. 당초 김 전 총리가 여유 있게 앞서는 것으로 보였던 경선이 팽팽해졌거나 정 전 대표가 우위에 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의 당선을 예상한 다른 평론가들도 보완수사권 폐지 관철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주간경향이 접촉한 정치평론가나 선거컨설턴트들은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한 정 전 대표의 행보에 2004년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 좌절을 소환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도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고집하다 독소조항 개정조차 이루지 못했다. 당시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론자로 ‘타협’을 거부하던 정 전 대표가 보완수사권 문제에서도 같은 행보를 걷고 있다는 비판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은 관철됐지만 향후 수사 공백과 사건 처리 지연이 나타날 경우 그 책임도 민주당이 짊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유 작가의 재건축론 자체가 앞서 나갔다고 비판했다.
“어떤 대통령이든 당선되면 반대 진영까지 끌어들이려 한다. 그것을 배반으로 규정하는 것이 온당한가. 민주당의 외연 확장은 재건축이라고 비판하면서 형사사법체계는 통째로 다시 짓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과연 그렇게 될까.
이원재 교수는 현재 민주당과 한국 정치가 처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당내 선거와 전국선거 문법의 분리라고 말했다.
“시대착오적이고 극단적인 입장이 당내에서는 사람을 동원해 이긴다. 공천을 받은 뒤 본선에 들어가면 세상 중도적인 사람인 것처럼 변신한다.”
당내에서는 형사소송법 개정이 정 전 대표의 선명성과 추진력을 증명한다. 그러나 일반 유권자는 앞으로 수사 지연과 피해자 구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고 판단한다. 전당대회에서 득표에 도움이 된 입법이 향후 총선이나 대선과 같은 전국선거에서도 정치적 자산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1일 청와대에서 대화하며 오찬장인 상춘재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당심과 민심의 균열
“동력이 없다.”
‘구조적 다수가 정계개편으로 이어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공희준 정치평론가의 답이다.
“여당도 장악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무슨 정계 개편을 하겠나. 민주당 바깥에서 이 대통령을 보고 움직이는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당내에서도 영향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공 평론가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노선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성당원을 ‘전업당원’이라고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양당이 만들어놓은 것은 직업이 당원인 사람들이다. 민심과 따로 노는 전업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한국 정치의 핵심 과제는 ‘당심이라는 괴물’을 민심의 통제 아래 놓는 것이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한 김장수 장산정책연구소장은 양당 강성 지지층을 서로 똑같은 거로 설명하면 현실을 놓친다고 부연한다. 민주당 강성 당원은 전 당원 투표와 공천제도를 통해 대통령의 뜻까지 거스를 제도적 힘이 있지만 국민의힘 강성층은 장동혁 대표의 권한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자신의 이해에 거스르면 당을 망가뜨릴 제도적 힘이 있다. 대통령이 있어도 자기 요구를 관철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장동혁이 대표이기 때문에 강성층이 당을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장동혁이 빠지면 힘이 훨씬 약해진다. 양쪽을 대칭적으로 볼 수 없다.”
김 소장은 이 대통령의 실제 목표도 외부 정계 개편보다 민주당 내부의 주류 교체라고 봤다. 몇몇 ‘퇴물’ 보수 정치인을 영입한다고 지지층이 이 대통령 지지자로 이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문제는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다. 김 전 총리가 당권을 잡아도 정 전 대표 지지층이 지도부의 결정을 비토하면 구조적 다수론은 출발부터 막힌다. 반대로 정 전 대표가 이기면 대통령이 집권당의 주도권을 잃으면서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공 평론가는 지금 민주당에서 패배한 세력이 과거처럼 비주류 몫을 인정받으며 당 안에 남을 공간이 사라졌다고 봤다. 패자는 정치 유튜브와 강성 당원 조직을 기반으로 권토중래를 도모하며 새 지도부를 흔들 수밖에 없다. 이번 전당대회가 노선 경쟁을 넘어 사생결단의 대결장이 된 이유다.
정계 개편의 조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당선무효형 판결은 국민의힘의 기존 질서를 흔들 사건이다. 그런데도 장동혁 지도부는 윤석열과 단절하거나 당을 쇄신하는 대신 부정선거론과 강성 지지층 결집에 기대고 있다. 합리적 보수층이 이탈할 조건은 쌓이지만, 이들을 실제로 움직일 정치 세력은 없다.”
김성훈 정치평론가의 평가다.
그에 따르면 한동훈 전 대표를 비롯한 비윤석열계는 신당을 만드는 것보다 장동혁 이후 당권 교체와 복당 가능성을 기다리는 편이 유리하다. 민주당에서도 전당대회에서 패한 쪽이 탈당해 독자적인 전국정당을 만들 기반은 없다.
그는 “보수진영만 갈라지고 진보진영이 그대로 있으면 정계 개편이라고 할 수 없다. 의미 있는 정계 개편은 양쪽 모두 갈라질 조건이 있을 때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실제 변곡점으로는 이르면 내년 4월, 늦어도 10월에 열릴 가능성이 높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꼽았다. 민주당이 지면 새 지도부가 흔들리고 국민의힘도 후보 선출 과정에서 한동훈 복당과 별도 세력화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 다수 논쟁의 또 다른 축은 개헌이었다. 개헌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석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정식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 문제를 두고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야당이 개헌 논의에 참여할 명분은 약해졌다. 의장실은 현행 헌법상 개헌 당시 대통령에게 연임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김능구 대표는 “이 대통령이 개헌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한 개헌 논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진척되기 어렵게 됐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누가 이겨도 구조적 다수론이 곧바로 실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총리가 이기면 당 밖으로 외연을 넓히기 전에 당 안의 강력한 비토 세력과 맞서야 한다. 반대로 정 전 대표가 당선되면 형사소송법 개정을 성과로 삼아 강성 당원의 지지를 굳힐 수 있지만, 대통령은 집권 2년차부터 여당의 주도권을 잃는다.
전당대회로 갈등이 봉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패배한 쪽은 당 운영에 참여하는 비주류가 아니라 지도부 결정을 막는 반대 권력으로 남는다. 최고위원회도 통합보다 권력 암투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구조적 다수’를 만들기 전에 민주당 내부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는 싸움이 끝나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서로 노선을 달리하는 두 폭주 기관차의 충돌이 예정된 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