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4세 미만 SNS 가입 제한·14~19세 알고리즘 규제
연령 제한 넘어 중독 알고리즘 설계하는 플랫폼 책임 강화
휴대전화로 SNS를 하고 있는 미국 청소년들. 연합뉴스
정부가 14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SNS에서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이버 범죄와 괴롭힘, 중독 유발 알고리즘으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이하 방미통위)가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SNS를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의 청소년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은 7월 29일 MBN <프레스룸>에 출연해 청소년 SNS 과몰입 문제에 대해 “공론화를 거쳐 부모 동의와 연령 확인 의무화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법적 규제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재차 밝혔다.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만 14세 미만 SNS 가입 제한과 연령 확인 의무화, 청소년 과몰입 유발 알고리즘 등의 기능 제한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한 후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는 교육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하다”며 “플랫폼 사업자의 협조가 충분하지 않다면 연령 확인 의무화나 만 14세 전후 가입 시 부모 동의 제도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미통위는 플랫폼 사업자의 보호조치 이행 의무도 강화한다. 매출액 10억원 이상 또는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청소년 보호 책임자를 지정토록 하고, 유해 정보 차단과 보호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제도를 시행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회에 발의된 청소년 SNS 관련 법안 7건을 종합해 구체적인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법안에는 연령별 가입 제한과 추천 알고리즘 금지, 심야 시간대 알림 제한, 부모의 자녀 계정 관리 기능 강화 등이 담겼다.
세계도 아동·청소년 SNS 중독에 몸살
국내 청소년의 SNS 중독은 심각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 정보 격차·웹 접근성·스마트폰 과의존 조사’를 보면 2025년 기준 청소년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43%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청소년의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시청 시간이 일평균 3시간 20분에 달한다는 언론진흥재단의 보고서도 있다.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으로는 인스타그램 릴스(37.2%)가 1위에 올라 유튜브(35.8%)를 처음으로 제쳤다. 보고서는 “청소년의 미디어 소비 축이 롱폼에서 숏폼으로 텍스트에서 이미지 기반 소통으로 완전히 이동했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에서도 SNS 중독이 청소년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이 사이버 폭력과 범죄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SNS 규제가 ‘뉴노멀’이 됐다. 호주는 작년 12월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의 SNS 가입을 제한하는 법안을 시행했고, 프랑스도 7월 21일(현지시간) 15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아동의 플랫폼 접근을 막고 중독 알고리즘을 제한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 외 일본과 인도네시아 등 10여개 국가도 유사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확산하는 청소년 이용 제한 움직임에 플랫폼 기업들은 이미 연령 제한 등 미성년자 보호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이 제한을 두더라도, 꼼꼼한 검증 절차가 없는 경우 실효성은 별로 없다. 실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청소년 SNS 이용에 빗장을 건 호주도 법 시행 후 6개월이 지났지만, 부모 계정 도용과 가상사설망(VPN) 접속 등 우회가 잇따라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호주 뉴캐슬대학 연구진이 지난 6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2~16세 호주 청소년 408명 중 85% 이상이 규제가 시행된 후에도 여전히 SNS를 이용했다. 사용자가 나이 등을 직접 입력하는 방식인 만큼 마음만 먹으면 허위 정보 기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이용자 나이를 정확히 확인하고 연령 기준에 맞지 않는 계정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막느냐가 향후 규제의 실효성을 가늠할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미통위는 플랫폼 기업의 연령 확인 의무 책임을 강화한 후 법적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다만 플랫폼 업계에서는 본인 인증을 강화할수록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커져 논란이 일 수 있고, 우회 접속 등으로 아동·청소년의 SNS 이용을 100%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고상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플랫폼마다 제각각인 청소년 보호 기준을 사회적 합의와 숙의를 통해 함께 기준을 만들고 책임을 나누는 공동 규제 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프라이버시 침해를 줄이면서 신원 확인이 가능한 연령 보증 기술 표준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 연령 확인 안 할까 못 할까
추천 알고리즘 설계에 대한 규제도 만만치 않다. 방미통위는 만 19세 미만 이용자에 대한 무한 스크롤·맞춤형 추천 기능의 기본 제공 제한 등을 검토하고 있다. 플랫폼의 서비스 설계와 추천 방식을 규제하겠다는 것으로, 청소년 보호를 플랫폼 자율에만 맡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청소년 중독을 극대화하는 알고리즘 설계는 그대로 둔 채 이용자들만 제한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미통위가 추진하는 추천 알고리즘 제한은 모든 콘텐츠 추천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다. 이용자의 관심사와 이용 이력을 분석해 유사 콘텐츠를 연속적으로 노출하는 맞춤형 추천 기능을 청소년 계정에서는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자동 재생과 무한 스크롤, 야간 알림 등 장시간 이용을 유도할 수 있는 기능도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1심 법원에서 열린 SNS 중독 소송에서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다만 추천 알고리즘은 SNS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이어서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추천 알고리즘 시스템은 기업들의 주요 수익원이자 핵심 영업비밀이다. 하지만 각국 법원들은 규제 입법 전부터 SNS 알고리즘에 “유죄 판단”을 내리고 있다. 올해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1심 법원 배심원단은 메타와 구글 유튜브가 청소년 중독을 강화하도록 설계됐다며 600만달러(약 90억원)를 배상토록 했다.
메타의 경우 “청소년·여성·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또는 정서적으로 취약한 계층일수록 사회적 비교 등 부작용으로 SNS에 더 집착할 수 있다”는 내부 문건을 갖고 있는 것이 소송 과정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법원은 이들 기업이 청소년 중독 실태를 알면서도 수익을 위해 방치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SNS 중독성 설계에 대한 책임을 처음 인정한 판결이다. 청소년 중독이 비즈니스의 의도적 설계에 따른 결과로, 현재 미국 전역에서 유사한 소송 수천건이 진행 중이다.
미국의 일부 주에선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고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뉴욕주는 SNS가 알고리즘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추천 게시물을 제안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2024년에 통과시켰다. 법안엔 SNS 플랫폼이 자정부터 오전 6시 사이 미성년자에게 ‘추천 게시물’에 대한 알림을 보내려면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외 캘리포니아주 등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이어지고 있다.
미성년자 돈벌이 삼는 설계 막아야
정부 규제가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을 제한한다는 반론도 있다. 중학생인 A씨(13)는 “SNS는 친구와의 소통, 뉴스 같은 각종 정보 등을 접하는 주요 창구 역할을 하는 일상의 일부다. SNS를 막으면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텔레그램과 게임 커뮤니티, 네카오(네이버+카카오) 오픈채팅방 등 규제를 우회할 방법은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유니세프도 SNS 금지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 정보 접근권 등 아동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방미통위는 “청소년은 보호 대상자인 동시에 권리 향유자인 만큼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는 정책 개발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더 이상 규제를 미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B씨(42)는 “사춘기 딸이 친구들 사이에서 ‘뼈말라’ 열풍이 유행한다며 SNS에서 이상한 약 광고를 보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자지 않아 매일 (딸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금연구역 지정으로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처럼 SNS 부작용을 사적인 문제가 아닌 ‘공공의 문제’로 인식해 접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전한 플랫폼 시스템 설계와 디지털 교육은 장기적으로 진행하되, 단기적으로는 유해 콘텐츠나 중독 유발 기능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고상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청소년 규제가 상대적으로 더딘 측면이 있다. 미성년자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삼지 않도록 현행 5000만원인 국내 과태료 상한을 올려 EU처럼 플랫폼 기업 매출액에 연동하도록 해야 한다”며 “기업 책임 부과를 넘어 청소년이 디지털 문해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사회적 생태계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