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잇는 착취…필리핀과 한국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연결돼 있다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국경을 잇는 착취…필리핀과 한국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연결돼 있다

입력 2026.08.01 06:00

  •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플랫폼C 제공

플랫폼C 제공

필리핀 수도 메트로마닐라 케손시티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BPO 업체가 밀집해 있다.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란 기업이 핵심 업무를 제외한 업무 프로세스를 아웃소싱하는 것을 가리킨다. 일손이 부족할 때 인력을 파견받는 인력 아웃소싱이나 단순 하청을 넘어 ‘업무 운영 및 관리 프로세스’를 넘긴다는 점에서 초고도화된 외주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BPO 산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형태는 ‘콜센터’다. 과거 삼성이나 구글 같은 대기업들은 자사 내에 상담원을 직접 고용해 콜센터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제는 고객 상담 업무를 통째로 유베이스나 텔레퍼포먼스 같은 전문업체에 위탁한다. 원청 기업은 상품 개발이나 마케팅에만 역량을 집중하고, 까다로운 감정노동과 인사관리가 필요한 콜센터 업무는 비용을 깎고 또 깎아 하청을 주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BPO 산업은 연 300억달러의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며(GDP의 약 8%), 종사자 수가 180만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필리핀 정부는 자국 내 BPO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경제구역을 지정하고, 이곳에 입주한 BPO 기업들에 법인세 면제와 무노조 경영도 보장해준다. 콜센터 업무라는 게 결국 노동자들을 극도로 착취해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먹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무노조’는 매력 포인트다.

더구나 BPO 산업은 철저하게 비정규직화돼 있고, 글로벌 하청 구조의 가장 밑단에 위치해 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부여한 실적 목표치에 미달하면 바로 해고될 정도로 상시적 고용 불안을 감내해야 한다.

사모펀드는 한국에서 가장 큰 콜센터 아웃소싱 기업을 인수해 국내 BPO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동시에 필리핀에서도 대형 콜센터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을 향한 착취가 국경을 잇고 있는 셈이다.

업무 강도도 심각하다. 초 단위로 통화를 제한하고, 가혹한 패널티가 있는 데다 밤낮이 바뀐 교대근무로 인해 수면장애나 면역력 파괴 같은 산업재해도 다반사다. 성차별적 언사나 인종차별적 폭언을 퍼붓는 서구 선진국 고객들을 상대로 무조건 참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케손시티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BPO 산업 직원네트워크’를 결성해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발하는 자료를 배포하며 동료들을 조직하고 있고, 항의 집회를 연다(사진). BPO 빌딩 앞에선 피켓을 든 노동자들의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사모펀드의 수탈을 중단하라” 구호가 울린다.

실제 한 사모펀드는 한국에서 가장 큰 콜센터 아웃소싱 기업을 인수해 국내 BPO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동시에 필리핀에서도 대형 콜센터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을 향한 착취가 국경을 잇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플랫폼 기업은 상담 업무를 외주화하고 있다. BPO 기업들은 콜센터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며 인공지능 자동화를 위한 상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도심에서 ‘콜센터 노동자 하루 멈춤의 날’이 열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날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원청이 직접 교섭에 나서 감정노동 보호조치와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고용안정 대책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40만명에 달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을 방조하거나 조장해선 안 된다.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보장함으로써 가장 심각한 불안정 노동의 현장에 있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일터에 생존과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한다. 권리 없는 일터에 민주주의란 없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