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없쾌’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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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없쾌’의 시대

입력 2026.08.01 06:00

수정 2026.08.0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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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스마트기기에 신문, 방송, 유튜브, SNS 등 다양한 플랫폼과 그곳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들이 펼쳐져 있다. 권도현 기자

각종 스마트기기에 신문, 방송, 유튜브, SNS 등 다양한 플랫폼과 그곳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들이 펼쳐져 있다. 권도현 기자

프로야구 콘텐츠가 장악한 SNS에서 자주 마주치는 말이 있다. ‘책없쾌.’ 처음엔 무슨 뜻인가 했는데 ‘책임 없는 쾌락’의 준말이었다. 응원팀 승패에 마음 졸이기보다 남의 팀 경기를 제3자처럼 즐기겠다는 뜻이다. 가을야구와 점점 멀어지는 우리 팀을 볼 때마다 나도 책없쾌 정신을 배워야 하나 싶어진다.

책임 없는 쾌락은 원래 조카들과 놀아주는 이모·삼촌들이 즐겨 쓰던 표현이다. 조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SNS에 올리며 “책임 없는 쾌락”이라는 글귀를 함께 쓰는 식이다. 육아 스트레스, 더 넓게는 결혼·출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아이가 주는 기쁨의 단맛만 누리면 된다. 얌체처럼 들리지만 적어도 책임이 무엇인지는 안다.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세계가 있다. 정치 유튜브다. 각 진영의 스피커뿐 아니라 정치를 논평하는 유튜브 채널은 이제 셀 수 없이 많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취재와 검증보다 주장과 해석을 앞세운 채널도 적지 않다. 누구나 정치를 논평하고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책임도 함께 커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정치 유튜브 생태계는 말의 책임보다 책없쾌의 유혹이 더 큰 곳처럼 보인다.

이 같은 얘기를 꺼낸 건 자기반성의 의미도 있다. 부서 이동 후 회사 유튜브에 출연 중인데, 정치 이슈를 주로 다룬다. 평론가들 틈에서 최대한 객관성을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말이 세게 나간 뒤 내 속은 후회로 가득한데, 시청자 반응은 그럴수록 좋다. 내가 한 말을 잘라 입맛에 맞게 재가공한 쇼츠가 회사 계정 밖 수많은 유령 계정에서 복제되기도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조회수 앞에서 나 역시 책없쾌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른바 ‘레거시 언론’에 속한 기자는 책임감이란 부채 의식을 벗어나기 힘든 구조 속에 있다. 기사를 쓰든 비평을 하든 사실을 근거로 하도록 수습기자 시절부터 이골이 나게 교육을 받았고, 혹여 궤도를 이탈하면 데스킹이라는 장치를 통해 궤도를 수정하게끔 지도를 받아왔다. 다만 유튜브 생방송 특성상 실시간으로 발화된 언어를 누가 다시 교정해줄 수는 없으니 최대한 많은 팩트를 끌어모은 뒤 정신줄을 꼭 잡은 채 방송에 임하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선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있다.

그러한 구조 밖에 선 사람들은? 책임을 질 필요도, 책임을 지게 할 장치도 딱히 없다. 책임 없는 쾌락은 책임 없는 발화를 낳는다. 조회수는 남지만, 신뢰는 남지 않는다. 정치는 현실인데, 정치를 둘러싼 말은 점점 게임처럼 소비된다. 물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려 애쓰는 평론가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갈수록 예외처럼 느껴진다.

책없쾌는 농담일 때는 웃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에서까지 책임 없는 쾌락이 미덕이 되는 순간, 그 대가는 모두가 나눠 치르게 된다. 사이다만 찾다 보면 이가 썩는 줄 모른다. 책임 없는 쾌락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가장 먼저 닳아 없어지는 것은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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