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4) 페미니스트 소설가의 수행적 자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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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 (34) 페미니스트 소설가의 수행적 자기 쓰기

입력 2026.07.31 13:27

수정 2026.07.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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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하련 ‘산길’

지하련 작가.

지하련 작가.

유명인의 가족이라는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하련(본명 이숙희·옛 필명 이현욱)의 경우는 행운이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는 월북 작가이기도 하지만 임화(林和·1908~1953)의 아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문학사의 유령을 면치 못했다. 임화의 시인·비평가·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로서의 독보적 이력,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 영화배우를 했을 만큼 빼어난 외모 등 여러 이유로 빗금이 간 존재였던 것이다. 임화가 미국의 스파이로 몰려 숙청되자 치마끈이 풀어진 채 통곡하며 평양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지하련은 수난에 휩싸인 남성 영웅 서사를 비극적으로 채색해주는 에피소드적 존재가 되기도 했다. 기실 지하련은 연약한 몸 “어디에서 그런 수다스러운 정열이 나오는가”(정태용) 놀랄 만큼 열정적인 다변가이자 수다쟁이로 청순가련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소설은 착 가라앉아 무기력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한시도 사색을 멈추지 않고 있어 격렬하고 뜨겁다.

임화의 아내이며 월북 작가

지하련은 1912년에 경남 거창의 부농 이진우와 첩실 박옥련 사이의 서녀로 태어나 마산에서 성장했다. 마산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동경소화고녀를 거쳐 동경여자경제전문학교에 진학했지만 곧 중퇴했다. 지하련은 동경에서 여성 사회주의자로 성장했다. 1927년 사회주의계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 본부가 창립되고, 1928년 1월에 동경지회가 설립되자 7월에 개최된 전국대회에서 ‘현 계단의 부인운동’을 주제로 강연했으며, 1929년에 개최된 근우회 제2회 전국대회에서 정칠성을 포함한 34명의 중앙집행위원 중 한 명으로 피선됐기 때문이다(허예슬 <지하련 연구 – ‘여성해방주의’와 ‘고독’을 중심으로>, 박정선 <지하련의 생애와 일제강점기 마산>).

지하련은 1936년에 임화와 결혼하고 “폐로운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글을 쓰기 시작해 1940년 ‘문장’에 단편소설 ‘결별’을 발표하며 작가가 됐다. 해방 후에는 ‘도정’(1946)이 조선문학가동맹에서 주최한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소설 부문에 후보작으로 추천되며 전성기를 구가하는 듯했다. 그러나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된 창작집 <도정>의 발간을 보지도 못한 채 1948년 월북했다. 평안북도의 한 교화소에 수용됐다가 1960년 49세의 나이로 병사했다고 전해진다.

지하련의 단편소설 ‘산길’이 수록된 <한국 여성문학 선집 2>. 민음사 제공

지하련의 단편소설 ‘산길’이 수록된 <한국 여성문학 선집 2>. 민음사 제공

‘산길’(1942)은 ‘체향초’(1940), ‘가을’(1941)과 함께 여성문제 3부작 중 하나다. 주인공 김순재는 지하련을, 하필이면 아내인 순재의 절친 연희와 바람이 난 남편은 임화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자기 서사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남편의 여자 문제로 인해 “나는 진정 네가 조타!”라고 고백할 만큼 가까웠던 최정희에게 “이제 내 맘도 무한 허트저 당신잇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편지’)라고 절연을 통고한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피해자로서의 위치를 만천하에 알리고 가해자를 징벌하기 위한 의도된 고백이거나, 기존 사회 질서와 갈등을 일으키다가 화해에 이르는 진부한 이야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 소설은 자기를 쓴다는 행위가 벌거벗은 노출증이 아니라 한 개인이 자기를 형성, 변형, 재구축하는 ‘수행적 기술(performative technology)’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고뇌와 사색 보여주는 내성 소설

‘산길’은 친구 문주를 통해 남편의 불륜 소식을 알게 되고, 연적이 된 연희를 만나기까지 이틀간을 배경으로 한 순재의 고뇌와 사색을 보여주는 내성 소설이다. 순재는 애초 남편과 절친의 불륜 스캔들에 큰 충격을 받지만, 공정한 판단자가 되기 위해 자기의 감정과 사유에 대한 성찰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순재는 자신을 사로잡는 분노가 기실 “군색하기 짝이 없는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결혼은 두 남녀의 사랑이 전제가 된 거래(계약)라고 여기기에 이미 사랑에서 진 자신이 분노의 주체여도 되는지 의심한다. 상처 입은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순재는 “그분은 남편인 동시에 자기였든 것이고, 연히는 내 동무인 동시 아름다운 여자”였다는 “싸늘한 이해”조차 시도한다. 순재의 “싸늘한 이해”는 순진한 낭만주의자의 어리석은 관용과 그 성격이 다르다. 균형을 취하기 위해 고투함으로써 순재는 조강지처라는 진부한 역할에 함몰되지 않고 남편을 사실 그대로 보게 되는 한편으로 여성으로서 연희가 보여준 용기에 감탄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란 이런데로부터 오는것인가? 평화해야만 하는 부부생활이란 이런데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야릇한 생각에 썸둑 걸린다. 문듯 좌우로 무성한 수목을 헷치고 베폭처럼 히게 버더나간 산길을 성큼 성큼 채처올라가든 연히의 뒷모양이 눈앞에 떠오른다.

역시 총명하고, 아름다웠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했다.

연희를 만나고 돌아온 밤, 순재는 남편과 잠자리에 누워 불미스러운 사건에도 흔들리지 않은 자기 가정의 평화에 의혹을 느낀다. 남편은 “연애란… 분별 있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 순 없는 일이거든. 본시 어른들이란 훨신 다른 것에 많은 시간이 분주해야 허니까”라며 자신의 불륜을 가벼운 일탈 정도로 취급하고 순재에게 편리한 사과를 한다. 순재는 사랑 앞에서도 결코 자기를 잃지 않고 건재한 남편에게 환멸감을 느끼고, 이를 계기로 연희의 사랑이 한낱 추문이 아니라 정직하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다.

위 장면은, 주체는 언어나 문화적 규범 이전에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규범을 반복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혹은 권력을 변형할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에 급진적이다. 순재는 내면을 일종의 원고지 삼아 자기에게 닥쳐온 사건을 곱씹고 재기술하는 과정을 통해 인고하는 좋은 아내나 희생적인 조강지처의 역할을 의심하고, 그러한 역할 수행을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순재가 새롭게 형성하게 될 자기는 약자로서 같은 여성에 대한 동맹자 의식을 가진 페미니스트 여성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퀴어페미니스트들의 이 작품에 대한 뜨거운 해석처럼 순재의 성적 리비도가 ‘이성애 규범성’을 뚫고 연희를 향하고 있는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성애자냐 동성애자냐라는 성애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여성의 욕망이 언제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성에 부여된 권위나 지배력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살아갈 용기나 즐거움을 누구에게 끌어오느냐를 중심에 두고 사유해보면, 여성은 대부분 이성애자라고 할 수 없다는 우에노 치즈코의 흥미로운 주장을 곧이 가져오지 않아도 될 만큼, 거의 모든 여성이 할머니, 엄마, 이모, 자매, 동성 친구 등 여성에게서 삶을 살아갈 양분을 끌어온다. 그렇게 에너지를 끌어 쓰고도 사회의 타자로서 같은 여성에게 동맹자 의식을 갖지 못하는 일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역시 총명하고, 아름다웠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했다”는 연희에 대한 순재의 감탄은 성녀와 악녀, 혹은 지루한 조강지처와 유혹적인 내연녀라는 가부장제의 여성 분단 지배의 틀을 흔드는 것이다. 순재만은 세상이 쉽게 말하듯이 연희가 이혼을 하고 자유연애에 빠져버린 탕녀가 아니라 고독하고 용감한 자유인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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