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형 미드필더로 ‘질식 수비’ 지휘…스페인의 두 번째 월드컵 우승 이끌어
골이 아니라 패스의 시대 증명…챔스·발롱도르 등 이어 최고의 커리어 완성
스페인 주장 로드리가 7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고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은 ‘골의 시대’가 아니라 ‘패스의 시대’를 증명한 대회였다. 대회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은 득점왕도, 결승골 주인공도 아닌 스페인 주장 겸 수비형 미드필더 로드리(30·맨체스터 시티)에게 돌아갔다.
득점은 하나도 없었고, 도움도 기록하지 못했다. 공격포인트만 놓고 보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FIFA는 이번 대회를 가장 잘한 선수로 로드리를 선택했다. 그는 골을 넣는 선수가 아니라 경기 자체를 지배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로드리는 이번 대회 8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6경기를 풀타임 소화했고, 다른 2경기도 막판까지 뛰었다. 모든 경기를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에 섰다. 그는 공격보다 빌드업, 수비보다 경기 운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포르투갈과 16강전이 끝난 뒤 “상대가 강하게 압박했지만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경기를 잘 풀어갔다. 선수들이 함께 뛰면서 상대의 패스 길을 막은 것이 승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결승전을 앞두고는 “아르헨티나는 메시만 막는다고 이길 수 있는 팀이 아니다. 모든 포지션에 좋은 선수가 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경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승한 뒤에는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끝까지 서로를 믿었다. 어린 선수들이 이번 우승을 보며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기뻐했다.
패스·성공 패스 1위에 체력도 발군
로드리는 현대 축구에서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다. 수비수 앞에서 공을 받아 상대 압박을 풀고, 경기 템포를 조절하며, 공격 출발점을 만든다. 상대가 전방 압박을 시도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공을 받기 전부터 주변을 확인하고 몸의 방향을 열어 한두 차례 터치만으로 압박을 벗겨낸다. 그리고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위협적인 패스를 선택한다.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실제 역할은 팀의 ‘컨트롤타워’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가깝다. 스페인의 짧고 빠른 패스 축구도 로드리를 중심으로 완성됐다.
이번 월드컵에 대한 FIFA 통계에 따르면, 로드리는 패스 799회, 성공 패스 747회로 모두 대회 전체 1위를 차지했다. 패스 성공률은 93.5%였다. 단순히 패스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거의 실수 없이 경기를 운영했다. 팀플레이 관여 횟수는 무려 1676회로 전체 1위였다. 공을 연결하고, 수비에 가담하고, 공격을 시작하고 함께 압박하는 등 경기 대부분의 장면에 로드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8경기에 출전해 뛴 이동거리도 96.23㎞로 전체 선수 중 가장 길었다. FIFA가 월드컵 출전 선수를 대상으로 자체 평가하는 수비 기여도에서도 로드리는 8.23점으로 수비 부문 전체 1위에 올랐다. 골과 도움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많은 패스를 연결했다. 누구보다 많이 뛰었고, 누구보다 경기 흐름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번 월드컵은 공격수의 화려한 골보다 미드필더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로드리는 공격포인트 없이도 가장 많은 패스를 연결했고, 가장 많이 뛰었으며, 가장 많이 경기에 관여했다. 스페인의 우승은 최전방 골잡이가 아니라 중원의 지휘자가 만들어낸 ‘우아한’ 작품이었다.
로드리는 큰 체격과 강한 힘을 바탕으로 태클과 몸싸움, 공중볼 경합에서 강점을 보이는 수비형 미드필더다. 하지만 그의 진짜 가치는 수비에만 있지 않고, 압박을 받은 상황에서도 공을 지키며 정확한 패스로 공격의 출발점을 만든다는 데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 밑에서는 센터백 사이로 내려가 빌드업을 돕고, 팀이 수비에서 공격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도록 경기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넓은 시야와 뛰어난 위치 선정 덕분에 후방 플레이메이커처럼 경기를 설계하며, 필요할 때는 센터백으로도 뛸 수 있을 만큼 전술 이해도와 활용도가 높다. 속도가 아주 빠른 선수는 아니지만 공간을 미리 읽는 능력으로 상대 역습을 막고, 중거리 슈팅과 득점력까지 발전시키며 현대 축구의 가장 완성도 높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다. 거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뛸 정도로 체력도 발군이다.
스페인 로드리가 7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시상식에서 대회 최우수선수(MVP)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유소년 땐 체격과 힘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난
로드리의 축구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199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그는 11세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팀에 입단했지만 “체격과 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방출됐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비야레알에서 성장해 라리가 정상급 미드필더가 됐고, 2018년 친정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복귀했다. 불과 1년 뒤 맨체스터 시티는 당시 구단 최고 이적료를 투자해 그를 영입했다. 명장 페프 과르디올라 감독 밑에서 그는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이끌었고, 2023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인터 밀란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려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을 안겼다. 그해 챔피언스리그 최우수선수도 그의 차지였다. 로드리는 2014~2015시즌부터 프로에서 총 474경기를 뛰었고 35골, 4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경고를 77차례 받았지만, 퇴장은 2번뿐일 정도로 자기 관리와 감정 컨트롤이 뛰어나다.
대표팀에서도 화려한 커리어를 이어갔다. 2023년 UEFA 네이션스리그 최우수선수, 유로 2024 최우수선수에 이어 북중미 월드컵 골든볼까지 품었다. 월드컵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발롱도르를 모두 경험한 축구 역사상 11번째 선수다. A매치 전적은 70경기 4골, 2도움이다.
축구 통계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그의 현재 시장 가치는 5000만유로다. 2024년 9월 십자인대와 반월판을 크게 다쳐 장기간 결장한 영향이 반영됐다. 하지만 부상 직전인 2024년 7월에는 시장 가치가 무려 1억3000만유로까지 치솟았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세계 최상위권 선수로 평가받는 수준이었다.
유로 2024에서 8강전을 치른 뒤 루이스 데 라 푸엔테 스페인 대표팀 감독은 “로드리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발롱도르는 지금 당장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로드리를 “완벽한 컴퓨터(The perfect computer)”라고 표현했다. 2024년 2월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로드리는 압도적인 세계 최고 미드필더”라며 “최근 몇년간 우리가 거둔 성공은 로드리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로드리가 십자인대를 다치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는 대체할 수 없는 선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2024년 11월 로드리가 발롱도르를 수상한 뒤 스페인 공격수 알바로 모라타는 “로드리 같은 선수들은 공격수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스페인 축구를 움직이는 설계자”라고 극찬했다. 2023년 12월 로드리와 프리미어리그에서 맞붙은 루턴타운 주장 톰 로키어는 “롤스로이스 같은 선수다. 압박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다음 패스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칭찬했다.
로드리는 대학 시절 만나 8년 넘게 교제 중인 여자친구 라우라 이글레시아스와 오랜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두 사람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 라우라는 의대를 졸업했다. 로드리는 프로 선수생활과 함께 경영학 학위를 취득할 만큼 학업도 중시하고 있으며, 화려한 스타 생활보다 검소한 삶을 선호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사용하지 않는 등 사생활을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