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MC메타가 지난 7월 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연주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힙합 1세대 그룹 가리온의 MC메타가 들려준 1990년대 중반 이야기다. 그와 동료들은 홍대나 신촌의 카페를 대낮에 빌렸다. 밤도, 클럽도 아닌 한낮의 카페였다. 함께 어울리던 이들 중에 미성년자가 있어 술집에 갈 수 없었던 탓이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출장길에 사온 스눕 독의 새 싱글을 꺼내 들면 다들 “우와” 하고 몰려들었다. 그는 소중히 받아 든 CD를 플레이어에 걸고, 모두가 파르페를 앞에 두고 “아, 이 그루브” 하며 무릎을 쳤다. 정보가 귀하던 시절,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것을 나누려고 아이들은 그렇게 모였다. 그 시절을 그는 낭만이라고 불렀다.
가리온 1집이 나오기 전인 2001년,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유일한 무대였던 클럽 마스터플랜이 문을 닫았다. 설 곳을 잃은 이들은 남의 파티에 얹혀 새벽 시간을 얻어 무대에 올랐다. 홍대의 한 클럽, 사람들이 이른바 ‘부비부비’ 춤을 추며 몸을 붙이는 그 한복판에서, MC메타는 자아를 성찰하는 문학적인 가사를 뱉었다. 그러나 MC메타는 담담했다. “그것조차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고. 뿌리내릴 땅이 없던 장르가 어떻게든 살아 있으려고 발버둥 친 흔적이었다.
지면에는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한동윤 음악평론가와는 최근 불거진 힙합의 ‘극우화’를 두고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 래퍼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한 사건을 힙합 특유의 ‘브라가도시오’, 즉 허풍과 과시 문화가 조롱으로 뻗어나가다 끝내 선을 넘어 망자에게까지 닿은 사례로 봤다. 더 나아가 미국의 정치적 힙합이 빈곤층 지원 부족이나 교육 불평등 같은 정책을 겨냥했다면, 한국은 좌우 이념 갈등이 워낙 거센 탓에 정책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을 향한 1차원적 비아냥으로 흐른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취재를 마친 내 마음은 비관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거품이 빠진 지금이 오히려 뿌리를 단단히 내릴 시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자리에서도 좋은 앨범은 알음알음 꾸준히 나오고 있고, 힙합에 뿌리를 둔 BTS는 K팝 시장을 세계로 넓히는 선봉에 서 있다. 힙합이라는 나무가 시들어 죽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그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고 더 많은 대중에게 가닿게 하는 노력이 부족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파르페를 나눠 먹으며 음악을 듣던 그 마음, 부비부비 춤 앞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뱉던 그 고집이 힙합의 본질이라면, 그것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화려한 시절은 지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힙합의 본질에 더 귀 기울이고, 그 깊이를 오래 음미할 시대의 초입일 수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힙합은 ‘여전히’ 멋있다.
박효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