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한강 작가가 사내이사로 있는 서울 종로구 독립서점 ‘책방오늘’의 문에 이날까지만 영업한다는 공지가 붙었다. 문광호 기자
2019년 겨울, <우리의 만춘>이라는 CD 앨범이 발매됐다. 이아립·강아솔·수상한 커튼, 좋아하던 가수들이 참여한 앨범이라 별다른 배경지식 없이 구매했다. 북릿을 펼쳐보니 만춘은 제주에 있는 독립서점이며, 세 가수는 만춘서점의 3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을 낸 것이었다. 학창 시절 추억 한 편에 자리 잡았던 동네의 작은 서점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동네 서점에 간 것이 언제였더라.
지난해 가을 모교를 방문했다. 친분은 없는 학번 동기가 학교 주변에 서점을 냈다는 말을 듣고 근처에 간 김에 들렀다. 사장은 만나지 못했지만 작은 서점의 공기, 책 냄새가 좋았다. 평생 진보 운동을 했다는 사장의 취향 탓인가.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녹색평론이 비치돼 있어 더 고맙고 반가웠다. 책을 사면 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나마 안온함을 느꼈다. 그래, 작은 서점은 이런 곳이었지.
서점만일까. 어릴 적 주변에 있던 작은 공간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학교 앞 문구점, 동네 구멍가게, 동네 레코드점…. 파는 물건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물건에 대한 가게 주인의 해박함과 애정, 단골들과의 끈끈한 유대…. 그런 가게들은 대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 학창 시절 동네 버스 정류장 옆 레코드숍을 갈 때마다 여사장에게 신보를 추천받곤 했다. 명반 대열에 오른 동물원 1집, 유재하 1집, 빛과 소금 1·2집 LP 등은 그 사장이 권한 것들이었다.
최근 일본 영화 <산의 톰씨>를 봤다. 전형적인 힐링 영화인데, 영화 속 버스정류장 옆 문구점 사장으로 웬만한 마을 대소사를 꿰고 있을 법한 할머니가 등장한다. 할머니는 문구점에 온 아이에게 귀엣말을 건넨다. “너 수학 15점 맞았다며”, 아이가 “어떻게 알았어요?”하고 묻자, 할머니는 말한다. “너의 엄마가 알려줬어. 다음엔 50점 맞아라.” 100점이 아니라 50점이라니, 재치 있는 대사도 좋았지만 영화 속 문구점은 향수를 일깨웠다. 그러고 보니 학교 앞 문구점엔 유독 할머니·할아버지 사장이 많았다.
한강 작가의 작은 서점 ‘책방오늘’이 지난 7월 7일 8년의 영업을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한 작가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낭독회를 하는데 비가 쏟아져서 세상에 우리만 남은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있었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그런 감각이 참 좋았다.” 아마 우리가 작은 서점을 그리워하는 건 ‘함께 있다는 감각’을 느껴본 지 오래됐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건 한강 작가의 폐업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주변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고, ‘책방오늘’이 자리한 건물을 구입한 기업체는 세입자를 다 내보냈다. 세계적인 작가도 젠트리피케이션은 비껴가지 못했다. ‘한강 작가의 서점’이라는 문화자산이 없어진 게 가장 아쉽지만, 또 하나의 동네 서점을 잃었다는 사실이 쓸쓸했다.
<우리의 만춘> 음반 소개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책과 음악은 서로의 풍경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를. 우리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아 그 순간의 풍경이 더욱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께 걸으며 서로의 풍경이 된 우리들.” 책이 있고 음악이 흐르며, 사람들이 서로의 풍경이 돼주던 작고 안온한 공간이 그립다. 그곳에는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시간이 있었고, 함께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이용욱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