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무필름즈
제목: 지느러미(The Fin)
제작연도: 2025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84분
장르: SF, 드라마
감독: 박세영
출연: 연예지, 김푸름, 고우
개봉: 2026년 7월 2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벌써 3년이 지났다. 박세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다섯 번째 흉추>를 처음 보았을 때가 엊그제 일처럼 가깝고 또렷한데 말이다.
기억보다 긴 간극은 빠른 시간 탓도 있겠지만, 영화 자체가 65분이라는 애매한 상영 시간을 압도할 만큼 강렬한 여운을 남긴 때문이기도 하다.
이삿날 펑펑 쏟아진 눈을 맞아 습기가 찬 매트리스는 주인인 가난한 연인의 빌라에 놓인 채 곰팡이를 피운다. 남녀의 땀, 열정, 절망, 분노를 조용히 흡수하던 곰팡이는 서서히 새로운 유기체로 진화하지만, 결국 헤어진 연인에게서 버려진다.
화려하지만 저렴한 여관, 따뜻하지만 서글픈 병실을 거쳐 서울 외곽을 떠돌던 매트리스 속 곰팡이는 호시탐탐 인간의 척추를 갈취하며 유사 인간 형체를 굳혀가지만, 결국 뜻밖의 자리에서 새로운 단계로 변이한다.
마치 상투적 실험 영화와 신파적 멜로를 거칠게 뒤섞어놓은 듯한 <다섯 번째 흉추>는 한마디로 단정하기 힘들지만, 여운이 남기는 의문만은 분명했다. ‘대체 이 괴작의 본원은 뭘까?’
어쩌면 아직 강렬한 추상과 얄팍한 감각을 추종하는 젊은 예술가의 치기 어린 허세일 수도 있겠다는 애매한 의심에서 판단을 멈추고 결론은 유보하기로 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올해만 그의 신작이 2편이나 연달아 극장에 걸렸다.
근미래 통일 한국 디스토피아 SF
지난 2월 공개된 중편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는 오디션에 떨어진 가수 지망생이 우연히 손에 넣게 된 부서진 기타로 인해 잠재돼 있던 욕망을 분출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어 반년 만에 공개되는 이번 신작 <지느러미>는 감독이 2017년 공개했던 동명의 단편 작품을 확장한 작품이다.
오염된 바다와 장벽을 쌓은 근미래의 통일 대한민국. 이제 갓 신입 공무원이 된 수진(김푸름 분)은 탈출한 돌연변이 ‘오메가’(고우 분)를 쫓다가 미스터리한 소녀 ‘미아’(연예지 분)와 마주한다.
공교롭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제작에 시동을 건 영화는 본의 아니게 4년이라는 기나긴 제작과정을 감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않았던 많은 변화가 더해졌고, 영화는 처음 기획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결과물로 완성됐다.
이 지난한 과정에는 제작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인 제작자 필립 보베르의 참여도 한몫했다. 그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과 <더 스퀘어> 등 세계적인 화제작을 제작한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프로듀서로 <다섯 번째 흉추>가 출품됐던 사라예보국제영화제에서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과잉으로 비칠 만큼 화려한 비주얼과 극단적 편집, 예측 불가한 이야기 전개, 인공을 압도하는 기막힌 오픈세트의 활용 등 박세영 감독의 주특기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세계적 제작자가 참여한 글로벌 프로젝트
홍보사는 패션 필름, 뮤직비디오,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아트 & 커미셜 커리어를 이어온 감독을 ‘하이브리드 필름메이커’, ‘넥스트 시네아스트’라 칭송하고, 그의 작품은 영화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의미에서 ‘비욘드 시네마’라 표현하기도 한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이런 거창하고 과분한 수식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호불호를 떠나 작품이 품고 있는 생경함과 독보적 개성을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나름대로 그의 작품을 규정해본다면 과거의 전통적 영화문법에 얽매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차세대의 영화도 아닌 그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이상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는 이에 따라 그가 창조한 세계와 그것을 담아낸 영화에 대해 ‘철학’과 ‘깊이’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정당할 수 있다.
본질과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점은 이 생경한 창의는 이제 30대에 들어선 젊은 감독 박세영만이 추구하고 일궈낼 수 있는 특별한 세계이며, 나날이 상업주의와 획일화에 피폐해져 가는 현재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흐름 안에서 더욱 특별한 가치를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유튜브로 검증받은 신세대 감독들
youtube.com
이 지면에서 다수의 영화 소개를 하며 최근 신인 감독들의 데뷔가 유튜브의 성공과 직결된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과거 필름 시절 특별한 환경과 교육을 통해 영화제작의 기교와 기술을 전수해야만 어렵게 감독이 될 수 있었던 때와 달리, 디지털 기기를 통해 누구라도 쉽게 영상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지금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직관적 평가로 자신의 독보적 재능을 증명하는 창작자가 많아졌다.
구독자와 조회 수만으로도 이미 유명세와 경제적 보상이 어느 정도 뒤따르지만, 이중에는 영화계 큰손의 선택을 받아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제작환경과 명성을 선물 받기도 한다.
할리우드의 경우는 이미 이런 과정이 당연시될 정도인데, 데이비드 F. 샌드버그 감독의 <라이트 아웃>(2016), 호주 출신의 다니엘 & 마이클 필리포우 형제의 <톡 투 미>(2022), 브라이스 맥과이어 감독의 <나이트 스윔>(2024) 등은 국내에도 개봉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지난 5월 개봉한 <백룸>(2026)을 연출한 케인 파슨스는 이제 갓 20대에 들어선 약관의 나이가 더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 상반기 북미 최고의 흥행작이란 성과를 앞세워 9월 개봉을 대기 중인 <옵세션>의 커리 바커 감독 역시 10대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기본기를 쌓았다.
박세영 감독 역시 한국에서는 드물게 2016년부터 적극적으로 운영해온 개인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Parksyeyoung)을 통해 남다른 감각을 검증받아온 인물이다.
일상의 풍경부터 단편영화, 광고, 뮤직비디오를 망라한 한편의 기록이자 포트폴리오는 한 연출가의 성장역사와 심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