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 쓰이듯, 판사 눈에도 유죄의 콩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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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 쓰이듯, 판사 눈에도 유죄의 콩깍지?

입력 2026.07.18 06:00

수정 2026.07.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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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동수 변호사·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건물. 한수빈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건물. 한수빈 기자

무죄추정은 헌법에 적혀 있다. 그러나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종종 그 반대를 경험한다. 피고인들에게 법정은 때때로 유죄추정이 작동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느껴진다.

판사들은 피고인을 쉽게 믿지 않는다. 마치 피고인에게 속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 같다. 그래서 기록 어디선가 유죄로 볼 만한 대목이 발견되면 ‘역시 그렇지’ 하며 유죄판결을 선고할지도 모른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법정 판화 속 판사들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인다. 팔짱을 낀 채 법대 위에서 피고인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오늘날 피고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도 닮았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통념이 비판받아왔다. 그런데 형사재판에서도 반대로 억울함을 못 이겨 분노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등 ‘무죄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통념 또한 경계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와는 별개다.

공소장 내용에 경계심 필요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듯, 판사의 눈에도 유죄의 콩깍지가 씌었을 수 있다. 같은 탄원서나 진술서도 유죄라는 예단을 가지고 읽을 때와 무죄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고 읽을 때 전혀 다르게 보인다. 판사들은 기록을 통해 사건을 접하고 간접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소장도 검사가 제기한 하나의 주장일 뿐이다. 민사재판의 처분문서처럼 그 내용이 곧 사실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공소장에 적힌 내용이 곧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경계심이 필요하다. 공소장일본주의에 반해 유죄의 예단을 불러일으키는 기재가 포함돼 있을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크다.

오래전 단독판사 시절 강제추행 사건을 재판한 적이 있다. 피고인이 아내와 자녀가 차에서 내린 뒤 여성 대리운전자를 강제 추행했다는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자는 착용한 의복, 피고인의 손동작 등 당시 상황을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진술했다. 처음에는 유죄 심증이 강했다.

그러나 변론을 종결한 뒤 기록을 다시 검토하면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재판으로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다. 직권으로 변론을 재개해 담당 경찰관을 증인으로 부르고 피고인 신문도 추가로 진행했다. 당시 신고 경위와 범행 전후 정황을 하나씩 짚어보니, 처음에는 중요해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되고 구체적이었다. 피해자는 피고인의 손동작을 직접 재현했고, 증언 태도도 당당했다.

그러나 그때 처음으로 구체적이고 생생한 진술이 곧 진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다른 시기와 장소의 경험을 이 사건의 기억으로 치환했을 가능성도 떠올랐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될 수도 있고, 조사 과정에서 반복된 질문과 진술을 거치며 더욱 구체적인 이야기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그때 비로소 형사재판에서 흔히 신빙성의 근거로 제시되는 요소들이 반드시 진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로고. 사진공동취재단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로고. 사진공동취재단

우리나라 형사판결에서는 흔히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생생한 진술’, ‘진술에 부합하는 듯한 제3자 진술이나 객관적인 사실과 자료’를 신빙성의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갖춰졌다고 해서 언제나 그 진술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 많은 조사관일수록 공판을 염두에 두고 진술을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서사로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증인 역시 반복된 진술과 증언 준비를 거치면서 사실과 다른 진술이라도 일관되게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증거를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변론을 종결하고 무죄 판결문을 쓰기 시작했다. 판결문이 술술 써졌다. 오랫동안 마음을 붙들던 의문이 하나씩 풀리자 이유도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선고기일에 무죄를 선고하며 피고인의 표정을 보았다. 무죄를 선고하기까지 거듭 기록을 살핀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는 항소했지만, 항소는 기각됐다. 나중에 항소심 재판장이 “그렇게 판결문을 자세히 쓰면 힘들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피고인 가족은 이미 살던 동네를 떠난 뒤였다. 만약 내가 ‘유죄가 맞겠지’라고 생각하며 쉬운 길을 택했다면 그들의 고통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죄추정 원칙의 법정 구현

그 사건 이후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판사가 사건과 피고인을 얼마나 치열하게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양형뿐만 아니라 무죄 판단에도 작지 않은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장전담판사에 따라 영장기각률이 크게 다르다는 이야기는 법원 안팎에서 흔히 회자하곤 한다. 그만큼 사실인정과 증거평가에서 판사의 태도와 관점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판사도 사회통념과 경험의 영향을 받는 인간이기에 예단 없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피고인이 무엇을 말해도 기존 심증을 바꾸지 않는 재판부 앞에서 억울한 피고인이 느낄 절망 또한 가히 가늠하기 어렵다.

때로는 흔들리더라도 양측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판사가 더 좋은 판사일 수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국민이 기대하는 재판이 아닐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실제 법정에서 구현되는 일이다. 판사는 끝까지 양측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검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자료까지 빠짐없이 제출하는 객관의무를 다해야 한다. 사회 또한 성급한 유죄 낙인을 경계해야 한다. 판사의 눈에서 유죄의 콩깍지가 벗겨질 때 비로소 무죄추정은 헌법 조문을 넘어 살아 있는 원칙이 되고 재판을 이끄는 태도가 된다.

무죄판결이 다소 늘어난다고 해서 사법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함부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감수해야 할 헌법의 비용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하며 국가가 그 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때, 사법은 비로소 헌법이 요구하는 모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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