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이미지 검색에 ‘부동산 급지표’를 검색한 화면. 구글 캡처
무섭다. 셋방살이에 지쳐 내 집 마련을 다짐하고 여러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한 뒤로, 어딜 가나 아파트부터 보인다. 놀러 가도, 출장 가도…. 예전에는 골목이나 가게, 숲과 강에 시선을 맞췄을 내 눈이 요새는 하늘로 쭉 뻗은 아파트를 훑고 있다. 흠칫 놀라 시선을 돌리고 이내 씁쓸해진다. 무언가에 관심을 둔 뒤 흔히 겪는 ‘초기 증상’이라기엔 너무 크고 급격한 변화 같다.
알고리즘은 이런 초심자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영상 몇개 보고 계정 몇개 팔로우했을 뿐인데, 지금 내 SNS 피드는 온통 부동산 콘텐츠로 뒤덮였다. 분양 홍보부터 거래·시세 정보, 정책 분석까지 폭포처럼 쏟아져나온다. 그 가운데 나를 가장 당황하게 한 콘텐츠는 ‘급지표’였다. 급지표란 부동산 입지 조건에 따라 동네를 쭉 줄 세운 표다. 꼭 대학 입시 배치표처럼 말이다.
땅값에 따라 동네를 줄 세운다는 것쯤이야 몰랐던 일도 아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건 그 순위표가 이 정도로 촘촘하고, 무엇보다 적나라하다는 점이다. 표 이름이 ‘급지표’나 ‘등급표’ 정도면 양반이다. 적지 않은 콘텐츠가 ‘계급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최상급지부터 최하급지까지 피라미드로 줄 세우는 것쯤은 다반사였다. 엄연히 사람들 사는 곳에 아예 ‘무급지’라는 딱지를 붙인 표도 더러 보였다. 압권은 등급을 황족-왕족-중앙귀족-지방호족으로 나눈 표였다. ‘피라미드식 줄 세우기’도 이 정도로 노골적이면 욕을 먹는데, 부동산은 예외인 걸까….
문득 나를 포함한 2030세대의 삶이 슬프게 느껴졌다. 우리는 늘 피라미드를 보며 살았다. 요람이 놓인 자리부터 서열이 시작되는 나라이고, 한 반 안에서는 물론 중·고등학교끼리도 서열이 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를 부끄러워하는 어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지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어른이 더 많았다. 배치표 어딘가의 대학에 들어갔고, 취업이라는 치열한 서열 게임을 거치니 직장이라는 또 다른 서열의 세계(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가 펼쳐졌다. 푼돈이나마 힘겹게 모아 내 집 마련을 고민할 때가 되니 이제는 아예 ‘계급표’가 나타난다. 아파트 광고가 울려퍼진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학교가 전부가 아니다, 직장이 전부가 아니다, 집이 전부가 아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란 골목은 온 담벼락마다 ‘등급표’와 ‘계급표’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곳이었다. 그 표가 버젓이 살아 떵떵거리는 세계를 설계한 이들에게는, 전부 아닌 걸 전부처럼 만든 사람들에게는 왜 그 말을 하지 않나. ‘전부는 아니’라면서 왜 힘세고 권력 있는 자들은 그것을 전부 가져가려 하고, 왜 온갖 편법까지 써가며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는가.
여하튼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이다. 어쨌거나 어른이 된 우리는, 우리보다 더 잔인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나중에 내 자녀가 “우리 동네는 몇급지야?”라거나 “아빠는 이백충이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