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권리인가 발전인가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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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권리인가 발전인가 ③

입력 2026.07.17 14:26

  •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국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7월 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선 가운데 개표소 내부에 투표지 보관박스가 쌓여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7월 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선 가운데 개표소 내부에 투표지 보관박스가 쌓여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글에서 사실의 차원과 권리의 차원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내가 군만두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그 서비스가 무조건 내 권리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다.

권리 기반 정책과 시혜적 정책

한국의 국가가 시민에게 다양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들은 시민의 사회적 권리에 근거하는가?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상당수가 시혜적으로 제공된다. 사회 정책의 기본 목표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데 있다 보니, 항상 ‘과도한 복지 지출’을 방지하고, ‘부정 수급자’를 단속하는 것에 집착한다. 상징적 사례 중 하나가 예전 칼럼에서 다룬 ‘예산 소진 시까지만 제공되는’ 긴급복지지원이다(박이대승의 소수관점 56 - 예산 떨어지면 중단되는 한국의 복지 서비스). 이른바 ‘줬다 뺐는 기초연금’도 또 다른 사례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지 7년이 넘었지만, 장애인들이 아직도 ‘권리 보장’을 외치며 거리에서 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권리에 기반한 사회 서비스인가, 아닌가?’는 서비스의 양적 가치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 수당이 권리에 기반한다고 해도 필요에 따라 수당 액수를 줄이거나, 수혜 자격을 더 엄격히 제한하거나 수혜자에 대한 통제 수단을 강화할 수 있다. 권리 기반으로 제공되는 수당의 액수가 시혜적 수당보다 적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혜적 서비스와 권리 기반 서비스를 구별하는 것은 정책의 형태와 작동 원리다. 한국의 시혜적 서비스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로 고려되는 것은 예산의 한계다. 쓸 돈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누구에게 배분할지 논의하는 식이다. 반면 권리 기반 서비스는 규범적 관계를 먼저 고려한다. 즉 시민의 권리는 보장돼야 하고, 국가는 거기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의무가 있으므로 필요하다면 증세라도 해야 한다.

한국 복지정책의 시혜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관련 규정이다. 이를테면 어떤 저소득 시민의 자식이 부자일 경우, 그 자식이 실제로 그를 부양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 시민은 급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규정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지금도 부분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권리 기반 정책에서는 이런 식의 규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국가가 저소득 시민의 기본 생활을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면, ‘당신과 가족이 알아서 생계유지 방법을 찾아라’는 식의 요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런 기이한 예외 규정이 보여주는 사실은 기초생활보장이 시혜적 정책이라는 것, 즉 국가가 시행하는 일종의 ‘불우이웃 돕기’라는 것이다.

정책의 합리성도 중요한 구별 기준이다. 권리 기반 정책의 구성 요소는 모두 정당성을 갖춰야 하고, 요소들 사이의 일관성과 체계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의 권리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시혜적 정책은 권리-의무 관계에 기초한 것이 아니므로 정당성은 필수 조건이 아니다. 이런 정책의 목표와 내용은 정세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한국 사회정책의 지난 20년을 돌아보자. 기초연금의 내용은 정권에 따라 수시로 달라졌고, ‘청년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서비스가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정책의 변화는 매번 격렬한 정치적 논쟁을 불러왔다. 이런 혼란의 근본 원인 중 하나도 정책의 시혜성에 있다. 정책의 목적이 시민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것보다 ‘어려운 노인 또는 청년을 도와주는 데’ 있었던 만큼 정책의 기본 형태는 내적 합리성이 아니라 정치적 세력 관계 같은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권리 없는 사회와 국가

지난 두 번의 칼럼과 오늘의 칼럼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국가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침묵하고, 노동 관련 법령은 권리보다 ‘국민 경제의 발전’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한다. 한국의 복지는 어려운 사람을 시혜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것이지, 시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권리 개념을 회피, 은폐, 왜곡하려는 경향은 어디서나 쉽게 발견된다. 국가 조직뿐 아니라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으로 집값이 내려가면 ‘재산권 침해’라고 항의하는 집주인들이 있다. 온라인 공간에는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느냐?’는 비웃음이 가득하다.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시키며, 교육 현장의 혼란이 교권의 약화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이 모두가 권리 개념을 오해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후,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오랫동안 참정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던 이들, 특히 장애인과 이주민의 권리를 함께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권리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보편성에 있다. 즉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모두 같은 권리를 가진다. 시민의 권리는 모든 시민에게, 인간의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노동자의 권리는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자신과 동일한 지위에 있는 타인의 권리에 대해 침묵한다면, 이는 결국 자신의 권리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선택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애초에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방선거 이후에 언급되는 ‘참정권’은 정말 권리를 의미하는가? 시민 모두의 권리로 다뤄지지 않는 것을 과연 권리로 볼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단순하고 특수한 상황에서만 권리라는 말이 정확히 사용된다. 백화점에서 돈을 낸 소비자는 구매한 물건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이 소비자의 권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나아가면 다시 혼란이 발생한다. 돈을 낸 소비자는 백화점 직원을 ‘아랫사람’으로 취급할 권리도 있는가? 적지 않은 사람이 이를 권리로 오해한다. 육아휴직을 할 노동자의 권리는 명백한 법적 권리지만, 직장에서는 권리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가는 권리 개념을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권리는 근대 사회와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지만, 한국은 이 요소를 결여하고 있으며, 이런 결여에서 발생하는 효과가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노동자의 권리’나 ‘시민의 권리’가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적 어휘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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