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통일을 바란다는 문구가 적힌 자물쇠가 걸려 있다. 한수빈 기자
과거 ‘빨갱이’라는 단어가 힘을 얻었던 이유는 통일정책의 영향이 크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시작된 냉전 시기, 한국은 무력을 통해서 북한과 통일을 이루겠다고 했다. 이른바 북진통일론이다. 이에 따라 북한과 내통한다는 뉘앙스를 담은 빨갱이는 내부의 적이었다.
40여년이 지난 1990년대,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강화됐다. 한국은 북한과 교류·협력을 늘려가면서 북한의 체제 전환을 꾀한다는 전략을 짰다. 한국은 북한의 우호국인 중국·러시아와 수교를 맺었지만, 북한은 미국·일본과 수교에 실패했다. 궁지에 몰린 북한은 한국의 손을 잡았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등 교류·협력 성과도 있었다.
다시 30여년이 지난 2020년대, 미국 일극체제는 약화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패권국이지만 그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북한은 한국과 남남으로 살면서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전략을 짰다. 북한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반기를 든 중국·러시아와 같은 배를 탔다. 중·러는 북한 핵무기를 애써 모르는 척하거나 지지한다. 북·중·러의 관계가 오월동주라 하더라도, 이들은 상당 기간 같은 배에서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으니, 한국의 전략을 톺아보는 건 필수적인 일이다. 북한과 평화를 이룰 방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저버린 남북은 ‘특수관계’라는 약속을 우리는 지켜야 할까, 북한이 하는 것처럼 우리도 남남으로 살아가야 할까. 아니면 ‘특수관계이면서 남남’이라는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하는 게 유리할까.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건 쉽지 않다. 북한을 향한 상반된 시선은 한국사회의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주적’, ‘반국가 단체’, ‘협력 대상’ 등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관련 논의를 띄우는 것 자체가 정부 지지율을 깎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논의를 미룰 순 없다. 애써 지켜온 불안정한 평화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국제질서와 북한의 변화를 직시하는 데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곽희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