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극우 앞에 선 래퍼들…랩으로 쓸 얘기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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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쇼미더머니> 시즌 5 결승전 후 참석 가수와 래퍼들이 피날레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엠넷 제공

혐오와 극우 앞에 선 래퍼들…랩으로 쓸 얘기 얼마나 많은데

입력 2026.07.13 06:00

수정 2026.07.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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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조롱 논란 이어 멸공 메시지도…“1020 남성의 인터넷 문화, 랩에도 반영”

내부 자정작용 보이지 않는 힙합 신…자유로움과 다양성, 힙합 문화 특성 살려야

엠넷 <쇼미더머니> 시즌 5 결승전 후 참석 가수와 래퍼들이 피날레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엠넷 제공

엠넷 <쇼미더머니> 시즌 5 결승전 후 참석 가수와 래퍼들이 피날레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엠넷 제공

최근 힙합 신(scene)에 벌어진 두 개의 장면이다.

#장면 1. 20세 래퍼 ‘리치 이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당일인 지난 5월 23일 공연을 계획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리치 이기는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아동 대상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랩 가사를 썼다. 공연 출연자 명단엔 팔로알토, 더콰이엇 등 유명 래퍼가 포함돼 있었다. 노무현재단이 혐오 공연이라며 반발했고, 공연은 취소됐다. 리치 이기는 “저의 행실과 부주의를 깊이 반성한다”며 사과했다.

#장면 2. <쇼미더머니> 시즌 5 우승자인 인기 래퍼 ‘비와이’가 지난 3월 <쇼미더머니> 시즌 12 무대에서 “싹 다 까보면 놀라겠지. 그 급은 마치 선구안 위”라는 랩을 했다. 12·3 불법 계엄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한 상황에서 나온 랩이라 선관위 저격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5월 발표한 정규 3집 앨범 곡인 ‘사우스사이드 프리스타일’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육성이 삽입됐다. 가사엔 공산주의를 겨냥한 듯한 표현이 담겼다.

사회학자인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는 책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에서 오늘날 극우는 이념적 무장과 조직적 활동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스포츠, 패션, 요리, 온라인 채팅방 등의 일상적 문화 속에서 극우적 정서가 퍼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타벅스는 프로모션 문구를, 서울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은 응원 구호를 5·18 광주민주화운동 조롱 표현으로 써 논란이 됐다.

힙합, 랩 음악은 어디로 갈까. 리치 이기, 비와이의 두 장면은 랩을 즐겨듣는 한국의 10~20대 남성들의 인식과 정서가 어떻게 보수화·극단화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과거 여성 혐오적 가사로 비판을 받았던 래퍼들은 이제 극우적 정서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 배제할 것인지의 분기점에 섰다. 차별이 범죄가 만연하던 미국 빈민가에서 흑인들이 평화와 저항의 뜻으로 읊었던 랩이 한국에서 어떻게 변모해 여기까지 왔는지, 그 배경을 살펴봤다.

<쇼미더머니> 시즌 6의 한 장면. <쇼미더머니> 화면 캡처

<쇼미더머니> 시즌 6의 한 장면. <쇼미더머니> 화면 캡처

유명해지고 싶은 젊은 래퍼들

리치 이기의 곡 ‘Junseok Lee’에는 “난 단일화 없이 달려, I feel like a 이준석”, “2025 Rich Iggy는 노무현처럼 jump”, “너는 중국이랑 친해 문재인이구나” 등의 가사가 담겨 있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을 희화화하고 중국과 우호적 관계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대남’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갈라치기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무현’, ‘운지’, ‘일베’, ‘응디시티’ 등 일베 관련 용어로 가사 검색을 해보면 리치 이기 외에도 여러 곡이 나온다. 래퍼 치트키의 곡 ‘머글래’에는 마약을 먹는다는 내용과 함께 “난 노무현처럼 노무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다른 래퍼들의 곡엔 “I’m a real mc, No 무현 MC”, “난 음악으로 요리해 MC무현 짱” 등이 나온다. 대체로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맥락 없이 ‘밈’(meme·인터넷 유행어)으로 사용한 경우다. 일베 용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상당수 랩 가사에서는 돈 자랑과 과시(플렉스), 여성 비하와 성적 대상화(반페미니즘), 나의 랩 실력으로 성공한다(능력주의)는 정서가 발견된다.

랩 음악을 하거나 연구해온 이들 사이에서 리치 이기와 비와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기준은 래퍼가 자신의 소신, 신념을 갖고 랩을 썼는지, 가사에 설득력이 있는지다. 제한 없이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추구하는 랩의 특성상 다소 과격한 표현을 썼더라도 그 표현을 쓴 이유가 분명하다면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혐오와 조롱, 모욕적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리치 이기는 “가사 안에 왜 노무현을 말하는지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 반면, 비와이는 “잃을 게 많은데도 그런 가사를 쓴 것은 신념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 대부분의 래퍼가 자극적인 혐오 가사를 쓰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계엄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하고 극우적 움직임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인기 래퍼인 비와이의 행보는 상징성과 파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런 랩들이 담고 있는 정서와 감각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러한 정서가 축적됐는지다. 리치 이기는 사과문에서 “고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대중과 관련 유가족분들이 보기에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언행을 단지 유명세를 위해 일삼아 왔다”고 밝혔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혐오·조롱 가사를 썼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따져보면 리치 이기는 20세로 <쇼미더머니>(2012년 시작)로 랩을 배운 세대다. 래퍼들이 대결을 펼치고 순위 경쟁을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극대화됐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능력자로 인정받았다. 명품 옷을 입고 슈퍼카를 타는 래퍼 도끼는 랩으로 자수성가한 표상이다. ‘힙합은 자유’라는 명분 아래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정당화됐다. 돈을 마음껏 쓰고 과시하는 ‘플렉스’가 유행했다. 청년들이 취업난과 고용 불안, 열악한 주거환경 등 경제 양극화를 몸소 느끼면서도 뭉쳐 싸우기보단 능력주의를 믿으며 각자도생하는 현실은 쇼미더머니와 흡사했다.

지난 7월 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입구를 봉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7월 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입구를 봉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비슷한 시기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가 만들어졌다. 이곳에선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약자 혐오, 지역 비하 표현이 공공연히 나왔다. ‘재미’를 내세운 혐오와 조롱의 언어들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청소년·청년들의 일상 용어, 놀이 문화로 퍼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 7월 7일 발표한 설문조사(전국 초·중·고교 교사 1109명 대상)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가 89.3%나 된다. 청소년·청년세대 내에 형성된 정서가 랩 가사로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쇼미더머니>의 위력은 엄청났지만 반대로 <쇼미더머니>가 없으면 좋은 랩 음악도 흥행하기 어려웠다. 잘 팔리는 것을 찾는 래퍼들의 공간에 자극적인 혐오 가사가 밀고 들어왔다. 일종의 혐오 비즈니스다. 래퍼 최삼은 “철학이나 신념 이야기하는 래퍼가 많지 않은 이유는 결국 돈이 안 돼서”라고 했다. 최삼은 “10~20대가 거의 비난에 가까운 인터넷 문화에 젖어 있는데, 그걸 랩으로 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것 같다. 리스너가 많아지면 체급이 알아서 커진다”고 했다.

래퍼 탐쓴은 “자극적인 가사들을 보면 아무런 뜻도 없이 인신공격과 남을 상처 입히는 데만 집중돼 있다”며 “혐오 조장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며 자란 세대가 랩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랩에도 (혐오 가사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탐쓴은 한국 힙합의 현실에 대해 “아직까지도 좋은 음악의 힘이 한국 힙합을 부흥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낭만일 뿐”이라며 “현실적으로는 AI(인공지능) 뮤직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찾아 듣는 음악은 점점 더 자극에 몰두하게끔 패스트푸드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좋은 음악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좋은 음악이 나와봤자 이 사람과 앨범의 존재 자체를 모르면 의미는 미미하다”며 “그렇다 보니 결국에는 슈퍼스타가 먼저 돼야 하고 (래퍼가) 유튜브를 먼저 켜는 1인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힙합과 극우를 연구해온 문화평론가 윤광은씨는 리치 이기 논란에 대해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는 힙합 신의 일반적 동향, 구조적 문제가 작용했다고 본다”고 했다. 윤씨는 “일베란 커뮤니티 자체는 자연 소멸하고 있지만 ‘일베적인 것들’이 밈의 형태로 퍼져나가 젊은 남성들 중심의 인터넷 문화, 사회의 극우적 성향과 연결된 채 공유되고 있고, 리치 이기 같은 래퍼는 그런 동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 사건이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사건과 같은 시기에 터진 건 극우적 인터넷 문화가 오프라인 대중문화로 침투하는 흐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것이기에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윤씨는 한국 힙합의 발상지가 인터넷 힙합 동호회였고, 그 이후 신이 재생산돼온 거점도 인터넷 힙합 사이트였던 점을 짚었다. 윤씨는 “(힙합이) 인터넷 문화 아래 놓여 있는 측면이 있고, 2010년대부터 일베의 등장과 함께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우경화돼온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며 “젊은 세대 우경화의 중요한 특징은 반민주당, 반페미니즘 정서인데 젊은 래퍼와 리스너들이 이런 성향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7월 1일 서울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스타벅스 가야지” 등 구호를 외쳤다.  연합뉴스

지난 7월 1일 서울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스타벅스 가야지” 등 구호를 외쳤다. 연합뉴스

1020 남성의 집단적 정서 반영

정창훈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 힙합의 우경화가 힙합 장르 본래의 법칙, 내부 논리 속에서 발현된다고 분석한다. 힙합은 제한 없이 자신을 표현하되 발언권이 주어진 순간 스스로를 ‘주변부’로 정체화하고 중심부를 향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1970년대 미국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에서 힙합이 태동할 때 흑인들은 인종차별과 빈곤, 범죄 등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주변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백인 중심의 주류문화와 상업주의에 대한 저항, 반발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주변성은 최근 한국 힙합에서 변질했다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래퍼인 10~20대 남성은 주변부에 위치시키고 여성, 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 진보 정치인, 소수자, 국가폭력의 피해자 등을 저항, 반발해야 하는 ‘중심부’로 여기는 식이다. 약자의 위치는 현실과 달리 설정되기도 한다.

정 교수는 “(한국에선) 예를 들어 내가 인종차별을 당하고 우리 집이 정말 가난해서 주변성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낸다”고 했다. 정 교수는 “그렇다 보니 어른들의 문화가 싫은 것이고, (입시 등) 성공법칙에서 이탈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주변성을 만들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문화가 된 것”이라며 “‘그걸 랩으로 역전시킬 거야. 내가 모든 걸 차지해버릴 거야’라는 논리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는 또 “힙합은 범죄와 갱단이 있던 빈민가에서 출발한 문화였고 힙합이 갖고 있는 정신은 unite(연합)이었다. 밖에서는 싸우고 총을 쏴도 파티 문화 안에 들어오는 순간 총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이라며 “힙합이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문화인 이유가 그 문화를 소중하게 키워왔기 때문인데, 그런 것은 상실됐다”고 했다.

힙합문화연구자 박하재홍씨는 “랩은 수다와 대들기에 특화된 장르다. 그래서 랩에는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의 남성들이 지금 무엇에 대들고 싶어하는가, 어떤 수다를 떨고 싶어하는가가 그대로 드러난다”며 “(이를테면) 지금 민주당이 주류이고 권위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대들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박하씨도 역시 최근 한국 랩 음악은 원래 힙합 문화가 추구하던 것과는 다르다고 봤다. 박하씨는 “2010년 정도까지는 미국에서도 공동체를 위해서, 뭔가 우리 삶에 의미 있는 것을 위해서 대들어야 한다는 게 있었다. 게토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사회적 차별, 괄시받는 지역의 사람들을 위한 대들기였다”며 “게토의 현실을 증언하고 항변의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지만, 2010년 이후엔 희미해졌다”고 했다.

<쇼미더머니> 시즌 7의 한 장면. <쇼미더머니> 화면 캡처

<쇼미더머니> 시즌 7의 한 장면. <쇼미더머니> 화면 캡처

대중은 래퍼들의 혐오 가사를 많이 비판했지만 정작 힙합 신 내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디스전(곡으로 서로를 비판하는 것)’도 혐오 가사를 소재로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광은씨는 “보다 근본적으로 신 내부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런 역할을 맡아줘야 할 기성 래퍼들이 침묵하거나 신의 분위기에 동조하고 편승한다는 점이 크다”고 했다. 힙합 신의 주도권을 젊은 래퍼들이 갖고 있고, 기성 래퍼들이 뭔가를 지적하면 ‘꼰대’가 돼버리는 분위기도 여러 문제를 방치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구 사람으로 대구 사투리 랩을 하는 래퍼 탐쓴은 곡 ‘역전포차’(2022년)와 ‘덥다’(2024년)에서 ‘~노’를 함부로 갖다붙이며 혐오의 의미로 쓰는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일베식 표현으로 최근 정치권에서 이를 두고 일베 감별 논쟁이 붙었다. 탐쓴은 “좌나 우를 지지해서 그런 가사를 쓴 게 아니라 사투리를 연구하고 그걸로 랩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투리가 폄훼되는 게 화가 나 쓴 것”이라며 “그런데 사실 한 번도 이렇게 수준 있는 공방은 없었던 것 같고, 이것을 힙합의 문제로 봐야 될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기 어려운 분위기도 있다. 탐쓴은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디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와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되는 랩을 하는 래퍼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나라 분위기는 말을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자유로움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여성·약자 혐오, 돈·능력 자랑을 비판해온 래퍼 최삼은 리치 이기 논란이 다소 갑작스러웠다고 했다. 10년 전 래퍼 블랙넛이 여성 혐오 가사로 큰 논란이 됐지만 힙합 신은 그닥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최삼은 “리치 이기가 유일하게 그렇게 한 것도 아니라 (다른 래퍼들이) 뭐라고 지적하거나 손절할 생각은 못 했을 것”이라며 “(자극적인 혐오 가사를 쓰면) 주목을 받아 돈을 벌 수 있고, 다들 그냥 뒀고 오히려 샤라웃(지지)을 해주는데 당연히 그 길로 가지 않겠나”라고 했다.

최삼은 ‘록은 1번이고 힙합은 2번이다’라는 우스갯소리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최삼은 “막상 랩 하는 사람들 만나보면 그렇지는 않다. 어느 한 부분만 갖고 전체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며 “오해받아 속상한 것도 있지만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도 맞다. 미디어에서 많이 다루고 비판을 하다 보면 내부에서도 고민하는 곳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최삼은 특히 리치 이기 공연의 출연자 명단에 올랐던 유명 래퍼들이 ‘왜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참여하려고 했느냐’는 비판을 받은 과정도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최삼은 “그걸 보고 있는 다른 래퍼들도 ‘랩을 쉽게 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겼을 것”이라며 “그러면서 조심하게 되는 것은 좋다”고 했다.

2019년 2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NM 사옥에서 열린 <고등래퍼> 시즌 3 제작발표회에서 멘토로 참여한 래퍼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엠넷 제공

2019년 2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NM 사옥에서 열린 <고등래퍼> 시즌 3 제작발표회에서 멘토로 참여한 래퍼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엠넷 제공

날것의 삶을 랩으로 풀어내다

물론 래퍼들이 모두 극우이거나 돈 자랑, 여자 이야기에만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음악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래퍼가 많이 있다. 22세인 래퍼 고트는 대전힙합노동조합을 만들고 곡 ‘칭어 딩겨’를 통해 한국 힙합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사 현장 아르바이트 등 육체노동의 시간과 감정을 가사에 녹여냈다. 고트는 “모두 다 자기만의 삶이 있고,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한국에선 (랩 가사가) 거의 다 돈, 마약, 가난인 게 신기했다”라며 “한국 힙합은 창작 문화가 아니라 성공한 스타일을 따라가는 카피 문화가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힙합에서 노동을 말하는 게 새로운 시도이고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0~20대 힙합 리스너들이 랩에서 돈 자랑과 여자 이야기만 원한다는 것도 오해일 수 있다. 고트는 노동을 연결한 시도에 대해 10대 초중반이 새로운 힙합 음악을 많이 접하는 시기이고, (그들이) 지금의 대중이라고 본 것”이라며 아티스트가 정한 콘셉트와 주제에 따라 대중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트는 “나이가 들면서 (기존 힙합의) 멋과 플렉스는 우리한테 알맞지 않은 옷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 가사 쓸 주제가 얼마나 많느냐’는 게 그의 말이다.

최삼은 “힙합은 사랑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만이 아니라 ‘돈 없어서 굶어 죽겠다’, ‘생리통 때문에 죽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엄청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는 “사랑 좋지만 현실에서 사랑을 말하지 못하는 시기도 있지 않느냐. 그 시기에도 어떤 말을 듣고 싶어서 힙합을 찾는다. 그래서 10대들이 더 힙합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한다. 겪은 삶에 대한 말이라 날것의 느낌이 있다”고 했다. 랩은 각박한 현실에 치이고 힘들 때 숨통 역할을 하고, 그 어느 음악 장르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낸다.

박하재홍씨는 게토에서 힙합이 탄생했을 때를 다시 말했다. 박하씨는 “괄시받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던 게 힙합이고, ‘그곳을 벗어나야 해’가 아니라 ‘그곳도 낙원이 될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이 힙합이었다”고 했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을 게토를 낙원으로 만들며 힙합은 전 세계적 인기를 끌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힙합은 죄가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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