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의 산증인 ‘가리온’ MC메타 인터뷰
래퍼 MC메타가 7월 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연주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건전 가요’와 함께 자란 소년은 처음 힙합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힙합은 금기를 깨는 일 같았다. “설탕을 한 번도 안 먹어보다가 꿀을 한 주먹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었죠. 힙합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말투로 뱉을 수 있는 유일한 장르였어요.” 30여년이 흘러, 그는 힙합과의 첫 만남을 이같이 회상했다. 지금도 그는 힙합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힙합의 개척자이자 산증인 MC메타 얘기다. 지난 7월 3일 서울 마포구 합주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속한 힙합듀오 가리온(MC메타·나찰)은 1998년 결성됐다. 사람으로 치면 30세를 바라보는 나이다. 국내 힙합 역사에서 가리온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엠넷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즌 10 우승자인 조광일이 결승 무대에서 ‘가리온’이라는 제목의 곡을 부르며 자신이 한국 힙합 계통의 ‘적통’임을 내세웠을 정도다.
긴 시간 한국 힙합을 지키고, 또 지켜봐온 그에게 한국 힙합 위기론을 묻기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항상 위기라서 그런 질문을 들어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저한테는 한국 힙합의 흥망성쇠가 그다지 와닿지 않아요. 늘 그냥 고만고만했죠. 조금 더 좋아 보이거나 덜 좋아 보이거나 이런 차이지. 힙합은 늘 언더도그였죠.” 다음은 일문일답.
래퍼 MC메타가 7월 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연주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한국 힙합은 위기인가.
“<쇼미더머니>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을 거다. 올해 시즌 12가 방영되기 전까지 약 3년 동안 위기론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힙합은 그냥 늘 이렇게 뿌리를 못 내리고 떠 있는 형태였다. 뿌리를 내리려면 땅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힙합은 공중에 떠 있는 나무 같다. 언제 나무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허술한 땅이다. 열매가 제대로 맺힐 리 없다. 그러다 보니 늘 불안감이나 위기의식이 있다.”
-왜 뿌리를 못 내렸나.
“힙합 클럽 마스터플랜이 2001년에 문을 닫았다. 이후 그와 유사한 형태의 정기 공연을 여는 소규모 공연장이 단 한 번도 생긴 적 없다. 그 역할을 2012년 시작된 <쇼미더머니>가 한 것도 같다. 그런데 스티로폼 같은 느낌이었다. 능력 있는 힙합 뮤지션들이 노력도 많이 했다. 미국 남부 힙합을 가져와 한국에 잘 접목했고, 새로운 뮤지션들도 나왔다. 하지만 땅이 튼튼하지 않으니 그걸로는 부족했다. 하이라이트레코즈, VMC, 일리네어레코즈 등 한국 힙합을 대표하는 3개 레이블이 다 문을 닫았다. 우리가 마스터플랜에서 랩할 때와 규모 차이만 있지, 한국 힙합은 여전히 연약하다.”
“저한테는 한국 힙합의 흥망성쇠가 그다지 와닿지 않아요. 늘 그냥 고만고만했죠. 조금 더 좋아 보이거나 덜 좋아 보이거나 이런 차이지. 힙합은 늘 언더도그였죠.”
-그럼에도 힙합을 떠나지 않았다.
“1996~1997년쯤 랩을 시작했다. 그 전의 나는 힙합 음반 수집가였다. 당시 배고팠던 게 첫 번째가 정보, 두 번째가 음반이었다.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미국 음악방송을 봤고, 지하상가에서 밀수 CD를 웃돈 주고 샀다. 그러다 20세 무렵 ‘힙합퍼’가 됐다. 흑인음악 동호회 ‘검은소리’를 했다. 회원들이랑 반은 추측, 반은 어설프게 해석된 정보를 가지고 때려 맞추고는 했다. 그게 엄청 재밌었다. 힙합은 계속 바뀌었고, 예측불허였다. 그런데 이건 ‘추억팔이’가 아니다. 힙합의 신선함은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퇴진의 영순위와 도둑놈패’라는 곡을 냈다.
“힙합을 하며 지켜온 가치관에 부합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당시 공연할 때 채증을 당하기도 하는 등 별 일 다 있었다. ‘쫄지는’ 않았다. 다만 가족들이 걱정했고, ‘나만 생각할 게 아니구나’ 싶었다. 지금의 나는 훨씬 더 음악 쪽에 에너지를 쓰지만, 여전히 안테나 하나는 정치·사회에 가 있다.”
-요즘 힙합 음악은 예전보단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내가 모든 Z세대 힙합 뮤지션들의 곡을 찾아본 것이 아니라서 답변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현재 젊은 세대는 본인들의 방식으로 자기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과는 모양새가 다를 수는 있구나 싶다. 동시에 (음악이 사회와)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도 느낀다.”
-Z세대 힙합엔 ‘불나방’이 드물다.
“그럴 수 없는 시대다. Z세대는 똑똑하다. ‘나한테 별 도움 안 되는데 굳이 왜?’라는 계산이 된다.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힙합신에서) 사라지지 않나. 반면 나는 영리한 롤 플레이를 할 수 없다. 나는 음반 수집가일 때부터 ‘언제나 진실해라’, ‘페이크(가짜)가 되면 안 돼’라고 스스로 세뇌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예 다른 생각을 가졌겠다는 생각도 한다.”
-리치이기 사태는 어떻게 봤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게 끝이다. 자기표현이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는 래퍼의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세대, 환경 등에서 얼마만큼 받아들여지고 얼마만큼 배척되는지는 본인이 감내해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볼 때 ‘이거 끝내주는데, 왜 이렇게 못 알아보지?’ 하고 혼자서 삐지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 먹고 보니 (당시 대중의 반응이) 맞았다. (대중의) 반응은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낳은 총체적 결과다. 어릴 땐 수용을 잘 못 하지 않나. 나만 ‘억까’(억지로 깎아내리는 것) 당하는 것 같고, 내 음악만 제대로 평가 못 받는 것 같고. 그런 이상한 착각을 했다.”
-후배 래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히려 내가 어린 래퍼들에게 많은 말을 듣고 싶다. 딥플로우가 가리온 3집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를 했다. 당시 딥플로우에게 ‘랩 구리면 욕해라’, ‘이딴 게 랩이야?’라고 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전권을 줬다. 그때 엄청 많이 배웠다. 우리는 음악밖에 몰랐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여러 관점 혹은 위치에서 음악을 바라봐야 하는데 우리는 늘 한 방향으로만 왔구나 싶었다.”
2010년 발매된 가리온 2집.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시상식 최우수 랩&힙합 음반 부문에서 수상했다.
-8월에 신보가 나온다.
“8월 11일 오후 6시 정규 4집이 나온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빈티지’다. 트렌디한 힙합을 듣는 분들에게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1~3집과 달리 이번 4집은 소속사나 외부 프로듀서 없이 나랑 나찰 단둘이서 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한 음반이다.”
-제작 기간은.
“3개월 걸렸다. 올해 초에 인천음악창작소에서 낸 공모전을 발견했다. 음반 제작 지원 사업이었다. 통상 그런 공모전은 신예 뮤지션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건 경력 제한이 없었다. 정규작 부문에 지원해 선정됐다. 그래서 2월 말부터 급하게 음반 준비를 했다. 창작소 지원 덕에 마스터링도 해외 최정상급 스튜디오로 보냈다.”
-3개월 만에 앨범 제작이 가능한가.
“우리도 3개월 만에 음반 하나를 뚝딱 만든 게 처음이다.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일했다. (제작 기간이 빠듯하다 보니) 외부 인사의 모니터링이나 피드백은 전무한 상황이다.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