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연합뉴스
넷플릭스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돈 들이는 프리미엄 콘텐츠를 고집하지 않고, 저비용·고효율의 염가형 ‘스낵 콘텐츠’로 시청자 입맛을 테스트해 보려 한단다. 값싸게 조달한 숏폼 영상으로 사용자 체류 시간만 확보할 수 있다면 고가의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비를 굳이 부담할 필요도 없다.
실용적 접근이다. 거장 감독이 찍은 16:9 영상도, 휴대전화로 찍은 세로 영상도 내 1분은 똑같이 사로잡아 둔다. 사업자와 광고주에게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시류에 맞는 것일 수도 있다. 빈지 워칭, 정주행, 몰아보기라는 넷플릭스식 시청은 시간적 정서적 여유가 있어야 기능한다. 살기 팍팍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질수록 더 찰나적인 도파민 펌프가 당긴다. 기승전결의 템포를 기다릴 수 없다. 자극이 바로 치고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이 주삿바늘처럼 짧지만 날카롭게 파고드는 자극의 주입은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된다. 손으로 휙휙 넘기는 동작은 마치 게임을 하듯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지만, 슬롯머신을 당기는 얼개와 차이가 없다.
나온 패가 꽝이라도 상관없다. 나야 넘기면 그만이고, 업자는 나에 대해 더 잘 알 기회가 된다. 내 체류 시간만 늘면 되니,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할 동기 부여 자체가 없다. 허접한 콘텐츠로 도배가 돼버렸다 해도, 그건 내 취향 탓일 것이다.
지식 유통의 민주화가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정말 좋은 세상이 왔는지는 생각해볼 구석이 많다. 역사적 실례도 있다.
페이스북이 봉기의 플랫폼이 된 아랍의 봄.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 모으기에는 자극적인 콘텐츠와 ‘좋아요’라는 손쉬운 소통은 효과적이었다. 군중을 광장으로 모아 독재자 대통령을 밀어낼 수는 있었지만, 비전과 조직을 갖춘 대안 세력은 그렇게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후 결과는 알다시피 대학살과 혼돈 그리고 더 악랄해진 군부독재의 등장이었다. 지하조직을 만들고 지하출판물을 유통하던 독재 치하 민주화 운동의 프리미엄 동력은 ‘좋아요’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요소다.
밀도 높은 콘텐츠와 이야기는 쉽게 빚어지지 않는다. 관록과 지혜가 있는 누군가가 데스킹을 하고 게이트키핑을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과 출판은 그 용기로 존경을 받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책으로부터도 언론으로부터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체류 시간 증대를 통한 광고 수익 극대화. 종래의 출판사는 알고리즘과의 승부가 버겁다. 인공지능(AI)까지 가세했다. 팬덤 강화 전략이라며 웹툰 캐릭터를 AI로 생성해 애착 관계를 유지하게 한다. 공허하고 시답지 않은 대화가 독서의 밀도를 대체한다.
미국 4개주가 메타의 SNS 중독 설계로 인한 청소년 정신건강 피해에 대해 무려 1조4000억달러의 징벌적 과징금 및 부당 이득 환수를 청구했다. 플랫폼의 중독적 설계 기능이 어린 나이부터 중독을 일으켜 우울증과 불안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것. 향후 대기 중인 유사 소송 건수만 해도 3000여건이다.
활자도, 영상도 귀하던 시대를 그리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이 사회는 방향조차 못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