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의 한 장면.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어? 여기서 끝낼 게 아닌데. 아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느끼게 될 당혹감이다. 아, 2편이 나오겠군.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은 자체적인 완결성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정말?
영화의 타이틀 작법은 감독의 직전 작 <곡성>(2016)과 대칭을 이룬다. 영화의 주 무대가 실제 전남 곡성이지만 영화 제목엔 ‘哭聲’이라는 한자어가 부기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중의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남 곡성이라는 ‘장소’에 의미부여 하는 건 아니다. 그러면 호프는? 영제는 HOPE, 말 그대로 희망이다. 영화의 주 무대는 비무장지대 인근의 가상 바닷가마을 호포(號浦)다. 제목 호프는 이 마을 이름을 음차한 것이기도 하고, 희망을 찾기 힘들 상황을 역설적으로 붙여놓은 것일 거라고 예상했다.
전작 <곡성>과 대칭인 타이틀 작법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70년대 말 혹은 80년대 초쯤으로 막연하게 설정해놓은 것은 전략적이다. 마치 스페인 황무지를 미국 서부라고 우기는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장르 또는 그 장르의 한국적 변주라고 할 수 있는 만주 웨스턴 영화들(예컨대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1968),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2008)같은 영화)처럼 사실상 판타지 장르에서 정합성이나 개연성 따위는 좀 안 지켜도 어때, 하는 너그러움을 품은 시공간이다.
오히려 놀라웠던 것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크리처 액션 장면이었다.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 동네에 난입한 크리처가 다 때려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폭주하고, 추억의 스텔라 경찰차를 탄 검은색 경찰 제복 순경이 총을 쏘며 추격전을 벌이는 그런 액션 연출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못 봤던 장면이다. 나홍진 감독이 한국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크리처 물을 제대로 뽑아냈구나, 하고 감탄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앞서 영화의 배경인 호포마을이 뭐를 해도 가능할 법한 판타지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감독은 그 점도 포인트로 삼는다. 거의 불사(不死)의 천하무적 존재인 괴물에 맞서 마을 노인들은 무장하고 역시 추억의 복사 트럭 뒤 칸에 타고 총을 쏘는 기동타격대를 조직한다. 트럭 뒤 칸엔 온갖 총포류가 가득 실려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경찰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은 마을 노인들에게 그 무기가 어디서 났냐? 고 묻는데 신통한 답은 듣지 못한다. 비슷한 상황은 범석과 같이 출장소에 근무하고 있는 순경 성애(정호연 분)가 M-16, M203 유탄발사기, RPG 따위를 순찰차 뒤에 가득 싣고 왔을 때다. 범석은 어디서 가져왔냐고 묻지만 역시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어쨌든 중요한 건 눈앞에 날뛰는 저 괴물을 잡는 것이니까.
수십 년 전 DMZ 인근 마을이라는 공간 판타지
액션 연출 사이 사이의 내러티브는 촘촘하지 않다. 예컨대 복사 트럭을 타고 나타난 자체 무장한 마을 사람들은 ‘섬멸’, ‘타도’ 따위를 쓴 붉은 색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데 괴물이 나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런 각오를 다지는 머리띠까지 준비한단 말인가, 라는 의구심이 불쑥 떠오를 수 있다. 그 개인용 화기 중엔 휴전선 너머 북에서 사용되는 AK-47도 포함되어 있는 게 눈에 밟히지만 DMZ 인근 마을에서 한 40여 년 전쯤이 시대 배경이라는 데 뭐.
영화는 아침 일찍 논두렁 길에서 발견된 무언가의 존재의 습격을 받은 소 사체가 발견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존재의 힘이 생각보다 훨씬 압도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처음 마을 습격 장면에서 등장하는 크리처가 한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것은 안습이지만 액션 씬 연출 만은 최상의 솜씨다. 그러나 외계인 서사나 예고편에도 뻔질나게 등장했던 추락하는 시가형 UFO 같은 장면은 워낙 맥락 밖이라 영화 개봉 후 관객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뉠 듯싶다.
나홍진 감독이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호프’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목 : HOPE 호프
장르 : Sci-fi, 액션, 스릴러
감독/각본 : 나홍진
출연 :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with 알리시아 비칸데르, and 마이클 패스벤더
제작 : 포지드필름스
공동 제작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주)웨스트월드
제공/배급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개봉 : 2026년 7월 15일
관람등급 :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 156분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대한민국 중장년 남성의 무의식적 악몽
이창성 사진, 눈빛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영화의 스토리를 처음 떠올린 게 2017년이나 2018년쯤이었다고 밝혔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져요. 환한 빛과 함께. 그런데 그 기이한 일이 TV 뉴스에서 소개되는 거죠.” 감독이 전한 착상만 놓고 보면 맷 리브스 감독의 파운드 푸티지 SF영화 <클로버필드>(2008) 같은 영화일까,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확인해보니 그쪽은 확실히 아니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저렇게 죽었다면 보통 사건이 아닌데 왜 군대(DMZ 안이라면 민정 경찰)는 출동하지 않나’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할 듯싶다. 어쨌든 설정은 ‘군대나 공무원들은 때마침 산불 진압에 투입되어서 오지 못하고 마을 경찰 출장소 소장 범석과 여순경, 그리고 동네 동생 성기(조인성 분)가 이 외계인 습격 사건 해결의 주역이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한국 영화 평론으로 유명한 한 외국 평론가가 김지운 감독의 영화 <조용한 가족>(2005)의 집단 암매장 씬을 두고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렸다는 걸 읽은 적 있다. 외부의 비평적 시각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역사적 사건이 접맥되어 읽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서 복사 트럭을 탄 무장 노인들의 등장 장면에서 떠올렸던 것은 1980년 군사반란 계엄군에 맞서 파출소를 털어 빈 카빈총 등으로 무장했던 5·18 당시의 시민군, 기동타격대였다. 흔히들 대한민국 성인 남성들이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악몽을 한 번쯤은 반드시 꾼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장년층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1980년 오월 기억의 파편이 재조립되어 외계인 습격에 맞서 싸우는 나이 먹은 자신들, 이라는 악몽의 편린을 감독이 포착해 내놓은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