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7일 인천 연수구 송도 일대 아파트 공사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설치돼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높은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 위에서 홀로 일하는 조종사 한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크레인은 임대업체 소속이고, 현장은 대형 건설사가 총괄합니다. 어느 날 안전망이 낡아 위태롭습니다. 그 안전망을 새로 달지 말지, 언제 어떻게 고칠지는 누가 정할까요. 임대 업체일까요, 아니면 현장 전체를 지휘하는 원청 건설사일까요. 이 물음이 2026년 대한민국 노동 현장을 통째로 흔들고 있습니다.
옛날 월급봉투는 노란색이었습니다. 2014년, 파업했다는 이유로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을 떠안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한 시민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냈습니다. 그 봉투가 법의 이름이 됐고, 2026년 3월 10일 ‘노란봉투법’이라 불린 개정 노동조합법이 시행됐습니다. 저도 이 지면에서 여러 차례 이 법을 새겨보았습니다(52화, 61화 참조).
정작 산업 현장을 뒤흔든 것은 다른 조항입니다. 사장의 정의가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단은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봅니다. 이제 근로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만 사장이 아닙니다. 내 근로조건을 실제로 쥐고 있는 사람도, 그 쥔 범위만큼 사장이 됩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시행 첫 달에만 372개 원청을 상대로 1011개 하청 노동조합이 “당신이 진짜 우리 사장”이라며 교섭을 요구했고, 100일이 지난 6월 중순에는 그 수가 439개 원청, 1161개 하청노조, 조합원 16만400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하루 10건꼴입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조선소 급식·세탁 노동자가, 자동차 공장 경비원이 난생처음 원청 회의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범위에서는’ 사장
열쇠는 법조문의 짧은 한 구절에 있습니다. 개정 노조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고 정합니다. 바로 이 “그 범위에 있어서는”이 의제별 사용자성의 근거입니다. 원청을 통째로 사장으로 모는 것이 아니라 원청이 실제로 지배하는 근로조건의 범위에서만 사장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판정례는 시행 두 달여 만에 이 원리를 빠르게 현실로 옮겼습니다. 첫 판단은 2026년 4월 2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나왔는데, 안전관리와 인력배치 의제에 관해 공공기관의 사용자성을 인정했습니다. 같은 4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삼성물산 등)와 경북지방노동위원회(포스코이앤씨)도 산업안전 의제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섭단위 분리 신청은 기각해 사용자성 인정과 기존 교섭체계 유지를 구분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앞서 떠올린 타워크레인 사건도 그렇습니다.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이 중흥건설·중흥토건을 상대로 낸 사건에서,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2026년 6월 4일 이를 뒤집었습니다. 다만 의제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습니다. 산업안전에 대해서는 “임대 업체 혼자서는 위험 요인을 없앨 수도, 안전설비를 뜯어고칠 수도 없으니 원청이 사장”이라고 했지만, 임금에 대해서는 “그것까지 원청 사장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같은 원청이 안전에서는 사장이고 임금에서는 사장이 아닙니다. 사장이 사람 단위가 아니라 ‘의제 단위’로 쪼개진 것입니다.
여러 의제 중에 산업안전 의제를 보겠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청에게 하청 노동자의 안전까지 책임지고 현장을 지휘·감독하라고 명령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원청은 ‘우리 근로자가 아니다’라며, 하청은 ‘원청 결정이 없으면 우리는 권한이 없다’라며 서로 미루기 일쑤였고, 그 틈에서 근로자가 다쳤습니다. 하청 노조 입장에서는 안전을 실제로 쥔 원청이 안전 의제의 교섭 상대가 되면서 미뤄지던 안전설비와 예산, 재발 방지 대책이 실제 결정권자 앞으로 당겨질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른바 ‘죽음의 외주화’를 끊을 지렛대가 생긴 셈입니다. 실제로 다수의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서 산업안전과 작업환경 의제에 한해 하청 노조에 잇달아 교섭권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재계는 “안전관리는 법이 강제한 의무일 뿐인데 그것이 왜 사장의 증거냐”며 안전을 챙길수록 사장이 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리 있는 우려입니다. 다만 노동위원회가 본 것은 ‘안전 의무를 이행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작업장과 설비, 안전예산과 개선 권한이 애초에 원청에 쥐어져 있다는 ‘구조’였습니다. 하청이 홀로 위험을 없앨 수 없는 그 구조 자체가, 원청을 안전의 실질적 결정권자로 지목한 것입니다.
남은 분쟁, 뜻밖의 소득
그렇다고 모든 하청이 원청을 교섭대상으로 얻은 것은 아닙니다.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성을 판단한 원청 113곳 가운데 103곳, 열에 아홉(91.1%)이 사장으로 인정됐지만, 나머지 문은 닫혔습니다. 불인정 10곳 중 8곳이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였고, 민간에서는 2곳 정도가 손에 꼽혔습니다. 원청이라고 볼 수 없거나, 원청이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제로 좌우한다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빛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포스코가 협력사 노동자 약 7000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히자, 오히려 현장이 술렁였습니다. 회사가 이들을 기존 정규직과 다른 새 직군으로 채용해 임금에 차등을 두려 하자 하청 노동자들이 반발했고, 기존 정규직 노조는 역차별을 우려해 맞불을 놓았습니다. 하청 노조가 원청과의 교섭으로 임금이나 성과급을 끌어올리면, 같은 재원을 나눠 쓰는 원청 노동자와 이해가 부딪칠 수 있습니다. ‘노사’ 갈등만이 아니라 ‘노노’ 갈등도 예상보다 넓은 파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구법과 신법의 경계를 가장 선명하게 그은 것이 지난 5월 HD현대중공업 사건입니다. 사내하청 노조는 2016년 봄 다섯 차례에 걸쳐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HD현대중공업은 “우리는 하청 근로자와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가 아니다”라며 거부했습니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이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하청 노조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대법원 2026. 5. 21. 선고 2018다296229 전원합의체 판결). 다수의견은 “이 사건에는 옛 법이 적용되고, 옛 법의 사용자란 근로계약을 맺은 자를 뜻한다는 옛 판례(대법원 85누856 판결)가 여전히 타당하다”고 했습니다. 새 잣대를 옛 사건에 억지로 대지 말고, 앞으로 개정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 실질적 지배력을 따지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4명의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옛 법 아래에서도, 도급인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다면 교섭 의무를 진다”고 맞섰습니다. 요컨대 이 판결은 옛 사건의 문을 닫으면서도, 새 법 아래에서는 실질적 지배력으로 사장을 가리라는 이정표를 남긴 셈입니다.
노란봉투법의 답은 흑백이 아니라 원청이 실제로 얼마나 지배하는지를 근로 조건마다 한칸 한칸 따져가는 지난한 작업입니다. 노동위원회는 그 첫 100일 동안 대체로 안전과 작업환경에는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임금, 근로 시간 부문에는 신중했습니다. 승부는 이제 시작일 수 있습니다. 원청들은 중노위 재심으로, 다시 행정소송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법원에서 최종 확정되기까지 길게는 몇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어렵게 만든 노란봉투법이 진짜로 겨눈 것은 계약서의 이름과 현장의 실세가 오래 어긋나 있던 이중구조의 균열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균열을 메울 때 가장 먼저 돌아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현장의 안전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이 법이 우리에게 건넨 뜻밖의 소득일지 모릅니다. 노란 봉투가 던진 물음, ‘누가 진짜 사장인가’는 돌고 돌아 ‘원청이 산업안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답으로 돌아오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리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기 위해 노동위원회 심판정과 법정에서, 그리고 매일의 교섭 테이블에서 치열하게 한계단 한계단 써내려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