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퍼-‘사랑’이란 맹목적 신뢰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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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퍼-‘사랑’이란 맹목적 신뢰와 공포

입력 2026.07.08 06:00

수정 2026.07.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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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원균 무비가이더

흔한 소재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기교나 조급함을 넘어선 오스굿 퍼킨스만의 개성이 뚜렷이 엿보이는 연출은 공포를 빚어내는 장인의 ‘여유로움’마저 느껴지게 한다. 반면 응집력이 부족한 불길한 순간들의 모음이라는 비평가들의 질책도 있었다.

그린나래미디어㈜

그린나래미디어㈜

제목: 키퍼(Keeper)

제작연도: 2025

제작국: 캐나다, 미국

상영시간: 99분

장르: 공포, 미스터리

감독: 오스굿 퍼킨스

출연: 타티아나 마슬라니, 로시프 서덜랜드

개봉: 2026년 7월 8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공포라는 감정을 유발하는 소재는 다양하다. 특히 우리 주변에 익숙한 것일수록 그것의 변질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은 공포와 등치되기 쉽다.

그래서 가족, 집, 믿음, 신뢰, 고립, 단절 같은 단어는 요즘 유행하는 소위 ‘하이 콘셉트 호러’, ‘엘리베이티드 호러’ 장르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이중에는 당연히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이성조차 마비시키는 사랑이란 이름의 열정은 그 뜨거운 만큼이나 치명적이고 위태로운 난관으로 이어질 확률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예상 밖의 기록적 흥행수익을 올렸다 해 큰 화제가 되는 커리 바커 감독의 저예산 공포 영화 <옵세션>(Obsession) 역시 제목 그대로 ‘집착하는 사랑’이 부른 끔찍한 파국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애정을 느끼는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 갈망과 신뢰란 얼마나 섬뜩한 것인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2편의 영화가 닮은 듯 다르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공교롭다.

<키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을 나열하며 시작한다. 여러 여인의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의 단편들은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몽타주가 된다.

아름다운 여성들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지고 이내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모습으로 시작은 마무리된다.

장인의 경지에 다다른 여유로운 연출

이때 배경에 흐르는 1950년대 R&B 듀오 ‘미키 & 실비아’의 ‘Love Is Strange’는 영화의 주제와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케 하는 노골적 복선이다. 이 곡은 과거 <더티 댄싱>(1987)에서도 인상적으로 삽입돼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하다.

“사랑은 이상해요. 사람들은 사랑을 게임처럼 여기죠. 한번 시작하면 절대 그만두려 안 해요. 그래요, 사랑에 빠지면 끔찍한 곤경에 처하죠.”

그럭저럭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화가 리즈(타티아나 마슬라니 분)는 연애 1주년을 기념해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외진 숲속에 있는 말콤(로시프 서덜랜드 분)의 가족 산장에 도착한다. 말쑥한 외모와 의사라는 직업에 더해 집안까지 범상치 않아 보이는 말콤은 여러모로 리즈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은 끔찍한 악몽이 된다.

오스굿 퍼킨스가 2024년 발표한 <롱레그스>(Longlegs·2024)는 아직은 주목받는 감독이었던 그의 입지를 단숨에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작품은 ‘A24’와 함께 현대 미국 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이끄는 ‘네온(Neon)’에 의해 배급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는데, <키퍼>는 두 번째 작품 <더 몽키>에 이은 퍼킨스 감독과 네온의 세 번째 협업작품이다.

일단 지치지 않는 정력적인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의 능력은 칭찬받을 만하다.

이야기를 압도하는 분위기와 연기

최근 오스굿 감독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타티아나 마슬라니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여주인공 리즈의 불안한 모습은 영화 전체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다.

미스터리한 매력을 지닌 상대역 말콤을 연기한 로시프 서덜랜드는 명배우 도널드 서덜랜드의 아들이자, 키퍼 서덜랜드의 이복동생이기도 해 이채롭다.

영화가 공개된 후 비평가들의 평가는 양분됐다고 전해진다.

보편적 소재와 단순한 이야기 틀 안에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감독 특유의 개성 있는 연출에 대한 칭찬도 있었지만, 반면 응집력이 부족한 불길한 순간들의 모음이라는 질책도 있었다.

적어도 네온의 배급을 통해 공개된 3편의 영화만 놓고 보면 냉정히 <키퍼>가 가장 뒤떨어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대평가는 적어도 이 작품 <키퍼>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올바른 잣대로 보이지 않는다.

흔한 소재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기교나 조급함을 넘어선 오스굿 퍼킨스만의 개성이 뚜렷이 엿보이는 연출은 공포를 빚어내는 장인의 ‘여유로움’마저 느껴지게 한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도 호기심이 생긴다면 앞서 언급된 작품들과 더불어 현재 넷플릭스에서 공개 중인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작품 속에 승화시킨 비극적 가족사

www.independent.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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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오즈 퍼킨스(Oz Perkin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던 오스굿 퍼킨스(Osgood Perkins) 감독은 작품의 개성만큼이나 남다른 개인사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일단 예술가의 피를 이은 가족들의 이력이 눈에 띈다. 할아버지인 제임스 리플레이 오스굿 퍼킨스부터 유명 배우였으며, 아버지 안소니 퍼킨스(Anthony Perkins)는 스릴러 영화의 고전인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1960)에서 주인공 노먼 베이츠 역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배우 겸 감독이다.

오스굿 감독이 처음 연예계에 발을 디딘 계기도 <싸이코 2>(1983)에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본격적인 연기·연출 활동을 시작했다.

어머니 베리 베렌슨(Berry Berenson)은 유명잡지 표지를 장식한 모델이자 사진작가였고, 동생 엘비스 퍼킨스는 음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버지 안소니 퍼킨스는 나름 뛰어난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싸이코>에서의 강렬한 인상을 벗어내지 못했다. 역설적인 것은 그 스스로가 이후 혹평을 받은 속편들을 기획·출연하고 연출할 만큼 큰 애정을 가지고 매달렸다는 점이다.

안소니 퍼킨스는 양성애자로서의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는데 1992년 60세의 나이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또 어머니 베리 베렌슨은 2001년 9월 11일 제1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한 아메리칸 항공 11편에 탑승한 희생자 중 1명으로 기록됐다.

이런 비극적 가족사는 아들 오스굿 퍼킨스에게 가장의 부제와 가족의 단절과 비밀이라는 커다란 상처를 남겼고, 이는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소환되는 화두가 되고 있다고 감독은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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