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인터뷰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지난 6월 30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다. 이 우화는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을 개방의 길로 나오게 한다는 햇볕정책, 즉 대북 관여정책의 상징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이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를 노린다”고 반발하며 2023년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다. 이어 지난 3월 헌법에 ‘조국통일 실현’이라는 국가목표를 없애고, 북한 영토를 한반도의 절반으로 규정했다. 한국과 만남은 물론 한국에 의해 체제가 변화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6월 30일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교류·협력으로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통일로 이행한다는 높은 수준의 평화 제도화(따뜻한 평화)는 불가능해졌다”며 “현재는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는 낮은 수준의 제도화(차가운 평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과 북이 빈번하게 만나 교류·협력을 해야만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온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만남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관여정책에서 북한의 변화를 포기한 채 북한을 고립시키는 봉쇄정책으로 국가전략을 변경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국제관계 속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현실주의자로, 비교정치제도와 체제 전환 등을 연구했다.
“교류·협력으로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통일로 이행한다는 높은 수준의 평화 제도화는 불가능해졌다. 현재는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는 낮은 수준의 제도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다.”
-북·중·러가 뭉치고 있다.
“미국의 세계 패권 약화가 근본적인 이유다. 영토 보존의 원칙을 위반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지역에서 미국 패권 약화를 보여준다. 중국이 ‘대만에 군사적 공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언사를 공공연하게 하는 것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패권 약화를 보여준다. 북·중·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미국 패권이 약화하는 시기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는다. 미국에 대항하는 연대가 형성돼 신냉전 또는 다극질서가 만들어지는 흐름이다. 이 연대에서 북한은 중·러에 핵 보유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 북·러 관계가 지금보다 느슨해질 수는 있어도,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202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승리’(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톈안먼 성루에 나란히 서서 손뼉을 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30여년간 북핵을 왜 해결하지 못했나.
“미국은 ‘북한 비핵화, 전쟁 방지, 미국 패권에 기초한 동아시아 지역 안정’이라는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삼중 딜레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1994년 이래 고려한 북한 핵시설 선제타격으로 비핵화를 이룰 순 있지만, 전쟁 방지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래 유지한 경제제재로 전쟁 방지와 지역 안정을 이룰 순 있지만, 비핵화는 달성할 수 없다. 외교적 노력으로 비핵화와 전쟁 방지를 이룰 순 있지만, 한·미동맹 해체를 요구하는 북한의 요구 때문에 지역 안정은 달성할 수 없다. 이는 구조적인 제약이다.”
-앞으로 북핵 협상은 어떻게 될까.
“북한은 핵을 통해 군사적 억지력을 구축한 것 이외에도, 핵 협상 의제설정에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존 협상 담론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였다. 지금은 군비통제나 핵 동결 후 협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이는 정책결정자와 시민의 정책 선호에 영향을 미친다. 향후 군비통제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협상 판에 한·미가 들어왔다고 판단하면,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는 현재 요구의 이상의 것을 원할 것이다.”
-북한이 ‘두 국가’를 되돌릴 가능성은.
“현시점에서는 없다. 두 국가 조치를 되돌리려면 북한에 한국이 꼭 필요한 상황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가까운 시일 내 그럴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에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중·러에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다. 북한의 외교적 협상력은 역대 최고 수준이며, ‘북·중·러 vs 한·미·일’ 대결 구도는 더욱 고착화할 것이다. 두 국가 조치를 통해 북한은 대내적으로 한국에서 발신되는 영향력을 차단했고, 군사적으로 한국과 충돌에 대한 책임의 부담을 줄였다. 외교적으로는 한국을 제외한 상태에서 미·중·러·일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자율성을 얻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지난 6월 30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국 전략 결정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핵심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적대성을 줄일 수 있는지 여부다. 북한이 적대성을 강화한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보자. 한국의 국력은 북한의 50배가 넘는다. 교류·협력으로 한국 정보가 북한에 유입되는 것 자체가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된다. 이에 대한 대응법으로 북한은 두 국가론을 꺼냈다. 한국을 향한 기존 관여정책을 봉쇄정책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 북한을 향해 한국이 기존처럼 관여정책을 구사한다고 해도, 한국에 대한 북한의 적대성은 약화되지 않는다. 한국이 북한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아서 북한이 적대성을 강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이 북한을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부르고, 북한 체제를 존중한다면서 손을 내밀어도 북한은 응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평화적 두 국가론’은 어떤가.
“적대적 두 국가에 대칭되는 형태로 평화적 두 국가를 제시한 것은 일종의 조급함으로 보인다. 북한의 입맛에 맞게 대해줘야 북한이 호응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북한이 짜놓은 판에 말려드는 셈이다. 정부의 평화적 두 국가는 남북이 ‘통일지향 특수관계’(남북기본합의서)라는 전제 위에 북한의 ‘체제 존중’을 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북한은 ‘주권 존중’을 원한다. 한국이 주권을 인정하는 순간 한국 헌법과 법률에 충돌한다. 이 경우 국내에서 불필요한 논쟁만 커지게 된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과 꼭 만나야만 평화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안 만나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관여정책만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대신 정치적 실체로 북한을 인정하고,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정치·군사적 채널을 열고, ‘우리는 대화에 열려 있다’고 주기적으로 표명해야 한다. 이는 차가운 평화로 가는 입구다. 차가운 평화가 지속하면 어느 시점에서 남북기본합의서 등 역대 남북합의나 헌법 제3·4조는 사문화될 것이다. 당장 북한은 한국이 필요하지 않는 한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조급하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