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메드 하루나 함자씨 인터뷰
KAIST 항공우주공학과 박사과정생인 모하메드 하루나 함자가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하루나씨 제공
“한국에 오지 않았으면 제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한국 정부와 한국 사람 덕분에 얻은 이 훌륭한 기회를, 한국사회에 좋은 일로 돌려주고 싶어요.”
모하메드 하루나 함자씨(28)는 2017년 고국 나이지리아를 떠나 한국을 향했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지금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 6월 23일 대전 KAIST에서 만난 하루나씨는 한국에서의 미래 계획을 묻자 ‘정착해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나씨는 어릴 적 나이지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 집은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다. 오가는 비행기를 보며 자연히 항공우주 분야에 관심이 갔다. 교수이자 대학의 도서관장이었던 아버지는 관련 책들을 빌려와 아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줬다.
평온한 삶에 위기가 찾아왔다. 나이지리아 북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습격했다. ‘서구식 교육 금지’라는 뜻을 단체명으로 삼은 그들은 기독교도는 물론 같은 이슬람교도여도 교리가 다르면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무장 세력이 집을 불태우고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죽이던 때, 기독교를 믿는 하루나씨 가족 역시 집을 잃고, 간신히 몸만 피했다. 이모는 테러에 희생당했다.
복수심에 직업 군인이 돼 테러와 싸우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어머니의 설득에 공부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한국 정부의 장학생 모집 공고였다. 부모님께 한국행을 말씀드렸다. “K팝이 알려지기 전이라 뉴스의 80%는 북한 이야기였어요. 위험하지 않냐고 걱정하셨죠.” 아버지는 직접 한국이란 나라를 알아본 후 안심하고 그를 보냈다.
“인공위성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 개발”
경희대에서 어학연수를 마친 후 조선대 항공우주공학과, KAIST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석사 때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관측하는 카메라를 개발했고, 지금은 인공위성에서 영상 데이터를 처리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모든 데이터를 지상국으로 내려보내 사람이 일일이 분석하던 방식 대신, AI가 우주에서 먼저 분석해 필요한 데이터만 전송하는 방식이다. “우주에서 처리하면 통신 대역폭을 크게 확보할 필요가 없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과의 대부분은 연구실에서 보내지만, 짬을 내서 하는 특별한 활동도 있다.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원총)의 첫 외국인 집행부원이자 외국인 대학원생 자치회(IGSC)의 초대 회장으로 해야 할 역할이다. IGSC는 지난 6월 5일 원총 산하 조직으로 출범했다.
KAIST 항공우주공학과 박사과정생인 모하메드 하루나 함자씨가 6월 23일 대전 KAIST 교정에서 졸업 후 계획을 밝히고 있다. 주영재 기자
학업에 바쁠 텐데, 가욋일을 맡은 이유를 물었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 관심이 원래 많다고 했다. 광주에서는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 봉사를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시장 표창을 받았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친구를 위해 통역을 해주는 등 곤란한 일이 있을 때 해결사로 나섰다. KAIST에 와서는 학교 정책을 심의하고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는 기구인 KAIST 평의원회에서 학생 대표 2명 중 1명으로 1년간 활동했다.
외국인 대학원생 자치회의 필요성을 이 과정에서 느꼈다. KAIST에는 2025년 기준 전체 재학생 1만2348명 중 외국인 유학생이 1039명으로 약 8.4%를 차지한다. 특히 전체 유학생의 약 62%(648명)가 대학원생이다.
KAIST의 외국인 대학원생은 5년째 계속 늘고 있으나 이들의 권익을 대변할 기구는 마땅히 없었다. 하루나씨는 비자, 취업, 연구 환경, 생활 정착 등 외국인 대학원생이 겪는 특징적 문제에 대응하고, 학교와 논의해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초대 회장으로서 활동 목표라고 했다.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학업장려금(stipend)’ 문제를 꼽았다. 학업장려금은 대학원생이나 연구자가 연구·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학교가 석사 월 80만원, 박사 월 110만원 이상의 최저 생활비를 보장하는 제도다. 그러나 아직 KAIST의 외국인 학생은 이 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입학 때 100만원을 약속받아도, 막상 들어오면 이런저런 이유로 깎이는 경우가 있어요. 외국인은 깎여도 보호받을 장치가 없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이미 외국인도 가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KAIST도 도입 의사를 밝혔지만, 문제는 데이터다. 외국인 인건비는 연구실만 알 뿐 학교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자치회는 학교 요청을 받아 실태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할 계획이다. 학교 행사에 외국인 참여율을 높이고, 한국 학생과 함께 섞여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늘려 캠퍼스의 국제화와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것도 목표다.
“어디 안 간다. 세금 내며 기여하고 싶다”
당연하지만 한국에서 부딪힌 가장 큰 벽은 언어였다.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면 ‘언어를 1순위로 두라’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첫 1년을 한국어 학습에 쏟았다. 지금은 인터뷰 내내 막힘없는 한국어 실력을 보였다. 자치회 회칙에도 회장·부회장 자격으로 한국어능력시험(TOPIK) 4급 이상과 한·영 능통을 못 박았다. 학교·학생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원래 외국 유학생의 한국 정착에 가장 큰 걸림돌은 비자 문제였다. 다만 최근 몇년 사이 상황이 좋아졌다. KAIST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과 주요 이공계 대학 외국인 대학원생은 졸업과 동시에 총장 추천서만으로 ‘과학기술 우수인재 거주비자’를 받을 수 있다. 외국 인재가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2023년부터 적용·확대된 제도다.
최대 5년간 체류하며 구직 활동을 할 수 있고, 영주권 신청 자격도 6년에서 3년으로 대폭 단축된다. 연구 성과에 따라 특별귀화도 가능하고,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도 자유롭게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다. 가족 단위 정착을 돕는 어린이집 등 학교 복지도 도움이 된다. 하루나씨는 우수 인재 비자와 정착 지원 제도가 중국과의 인재 유치 경쟁에서 한국을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드는 요소라고 했다.
“예전엔 취업이 안 돼 6개월 만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비자가 생긴 뒤로 주변에서 그런 사례가 크게 줄었습니다. 연구자의 배우자도 경력이 되면 한국에서 취업 활동을 할 수 있어서 그것도 (외국 유학생을) 붙잡을 수 있는 제도라고 봐요.”
그에게 졸업 후 계획을 묻자 “어디 안 갑니다”라면서 “한국에 정착하기로 이미 정했다”고 했다. 석사까지 7년을 정부 초청 장학금으로 공부한 그는 한국사회에 그 성과를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주식에 7년을 넣었는데 수익이 없으면 잘못된 투자잖아요. 저는 한국이 한 투자가 헛되지 않게, 여기서 일하고 세금 내며 기여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뉴스페이스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으며, 자신 역시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했다. 누리호 발사와 방위 산업의 성과, 국내의 우주 관련 기업을 언급하며 그는 한국의 ‘뉴스페이스’ 시대를 확신했다.
“7년 전만 해도 한국이 항공우주를 이끄는 나라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지금은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계까지 왔어요. 한국이 세계 최고로 변화하는 그 모든 과정에 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친구들에게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라고 자랑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 어디 가면 안 되고, 여기 계속 있으면서 그 과정을 직접 목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