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민족 최초의 뉴욕대학 졸업생, 마웅 사예돌라
2025년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 고위급회담에 초청받은 마웅 사예돌라가 로힝야의 현실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마웅 사예돌라 제공
2026년 5월 15일, 미국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외교 공관, 대학,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인사가 모인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한 학생의 뉴욕대학교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매년 수천명이 졸업하는 뉴욕대학교에서 어째서 이 학생만 이토록 특별한 축하를 받았을까?
그 주인공 마웅 사예돌라(Maung Sawyeddollah)는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태어난 로힝야 청년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로힝야를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이라고 부른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이들이 182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유입된 ‘방글라데시 출신 불법 이민자’라며 하루아침에 모든 주민 등록을 말소했고, 그 결과 수백만명이 국적도 신분증도 없는 처지가 됐다. 식민지배 훨씬 전인 ‘라카인 왕국’ 시절부터 이 지역 로힝야 민족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200년 전 선조들의 출신을 핑계로 수세대째 미얀마 땅에서 나고 자란 수백만명의 신분을 일거에 박탈하는 폭거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는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여부에 대한 본안 심리가 진행 중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로힝야는 세계 최대의 무국적 집단으로, 190만~200만명으로 추산된다. 사예돌라 역시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신분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많은 로힝야 친구가 그렇듯, 그도 자신의 정확한 생년월일을 알지 못한다.
‘열린 감옥 속 학살’ 미얀마의 로힝야
사예돌라가 기억하는 고향은 매우 좁다.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를 라카인주의 특정 3개군(부티동·마웅도·라티동) 안에서만 살도록 제한해왔기 때문이다. 로힝야 사람들은 신분증이 없어 은행, 통신, 취업, 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에 더해 미얀마 정부는 갈수록 적극적인 ‘권리 박탈’ 조치를 강화해왔다. “2012년부터는 대학 진학도 금지됐습니다. 미얀마에 사는 로힝야 사람은 고등학교까지만 다닐 수 있었어요. 로힝야 거주 지역에서는 스마트폰 사용도 사실상 불법이에요.” 미얀마 군부의 조치는 2019년 6월, 로힝야 거주 지역의 모바일 인터넷 트래픽을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던 로힝야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대규모 학살의 표적이 된다. 2017년 8월 25일 개시된 미얀마군의 대토벌 작전도 그중 하나였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도망쳐야 했어요.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처형하는 사진과 영상이 돌았어요.” 14세에 불과했던 사예돌라는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 비가 쏟아지는 우기, 정글과 강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길이었다. “사람들이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길을 직접 만들며 걸어야 했어요. 산을 넘고 강을 헤엄쳐 건넜어요.”
지난 5월 마웅 사예돌라의 뉴욕대학교 졸업 사진. 마웅 사예돌라 제공
사예돌라와 가족이 도착한 곳은 방글라데시 국경지대, 세계 최대의 난민캠프인 ‘콕스바자르’였다. 이곳은 24㎢ 안에 100만명이 넘는 난민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가 됐다. 다른 대규모 난민촌 대부분이 기존 주민과 섞여 사는 공동체로 발전한 것과 달리, 방글라데시 정부는 콕스바자르를 매우 가혹하고 폐쇄적으로 운영한다. 거주민들은 특별한 사유 없이 캠프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취업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열악한 캠프에 갇혀 구호단체의 배급만 기다려야 한다. “식량 배급은 한 사람당 한 달에 8~12달러 정도예요. 뉴욕에서 커피 한잔 값이 그곳에서는 한 달 생활비입니다.”
사예돌라는 콕스바자르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 ‘희망의 박탈’이라고 말한다. 이곳에만 울산광역시 인구 전체에 맞먹는 엄청난 사람이 살지만, 캠프 안에는 고등교육 시설이 없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초등학교조차 드물다. “한 집단으로부터 교육을 박탈하면 결국 그들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법조차 알지 못하게 돼요. 그것이 바로 민족 말살입니다.”
사예돌라는 교육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분을 속이고 방글라데시 학교에 다니려다 실패하자, 전 세계 147개 대학에 온라인으로 입학 지원을 시작했다. “인터넷을 하려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어요. 거기서야 신호가 잡혔거든요.” 그의 간절한 노력에 세계가 응답했다. 여러 대학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고, 뉴욕대학교도 그중 하나였다. 사예돌라는 국제학 전공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다. 생년월일도 모르고 신분증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였던 그는 다카 주재 미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여권번호란에 ‘0’을 적은 채 비자를 받아냈다.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미국의 대학교에 진학한 최초의 로힝야, 마웅 사예돌라는 기적처럼 뉴욕 땅을 밟았다.
지금도 진행 중인 혐오와 폭력
잠시 아웅산 수치 정부가 들어서며 민주화 바람이 부는 듯하던 미얀마는 2021년 쿠데타로 다시 군사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군사독재는 소수민족 혐오를 먹고 자란다. 미얀마 군부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과시적인 소수민족 박해 퍼포먼스를 펼치며 대중의 불만을 잠재운다. 그중에서도 로힝야는 불교도가 많은 버마족과 달리 이슬람교도 비율이 높고 문화적으로 가장 이질적이라 여겨져 쉬운 표적이 된다. 군부가 유포해온 자극적인 ‘식민지배 부역’ 사례들은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것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로힝야에 대한 폭력적 박해로 이어진다.
로힝야에 대한 박해와 학살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2025년부터 아라칸 지역 민병대에 의한 주민 학살이 이어졌고, 미얀마 군부는 이 지역 병원 등에 드론까지 동원한 공습을 감행하기도 했다. 난민들이 도망쳐 도착한 콕스바자르는 식량난으로 지옥이 되고 있다. 굶주리다 못해 바다로 탈출하려던 난민들은 2025년에만 약 900명이 벵골만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100만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 중 절반 이상이 아동이다.
사예돌라 뉴욕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내내 고향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여정이 로힝야 동포를 위해 쓰일 방법을 찾고 있다. 지금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육이다. 그는 ‘로힝야 학생연대(Rohingya Student Network)’라는 시민단체를 설립해 콕스바자르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든 것이 ‘최초’인 로힝야 청년에게, 대학 졸업장은 더 위대한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