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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의 취약함

입력 2026.07.03 14:45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바르셀로네타 해변. 박하얀 기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바르셀로네타 해변. 박하얀 기자

“무슨 일 해요?” 지현이 테이블 맞은편 인국에게 묻자 “무슨 일 없었죠.” 다소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자 지현은 “카페에서 하거나 노래하거나”라며 일의 예시를 들었고, 인국은 “내가 이렇게 대화한 적이 없어서”라며 멋쩍게 웃는다. 인국은 50분 정도 지나자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자리를 뜬다.

SBS <내 마음이 몽글몽글-몽글상담소>에 출연한 발달장애인들 간의 소개팅 장면이다. 주로 집과 수영장만을 오간다는 인국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해진다. 어쩌면 50분이 밖에 나와 타인과 대화해 본 최장 시간이었으리라. 그는 소개팅 전, 자신을 소개하는 법과 상대와 어떻게 대화를 할지 예행연습도 해갔다.

지현은 또 다른 소개팅 자리에서 “제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서 시간·돈 계산도 약하고, 교통이 너무 어려워서… 연애한다면 교통 같이해줄 수 있을까요?” 묻는다. 준혁은 “저도 같은 지적장애이긴 한데, 남들하고는 다르지만 더 연습하고 있어요.” 답하며 자신의 장애 경험에 관해 말한다. 이들은 금세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제작진은 장애인의 연애를 상상하지 않는 한국사회에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만남을 부단히 시도하고, 사랑하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어떤 존재와 관계는 가시화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외모와 직업, 나이 등 저마다의 ‘경쟁력’을 어필하며 쟁취전에 나서는 연애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와중에 이 콘텐츠에 눈길이 간 것은,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동시에 상대의 취약함을 품고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이 엿보여서다. 약점을 쉬이 드러내지 말라고, 밀고 당기기가 필요하다는 등의 조언이 SNS에 쏟아지는 요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를 드러내 보이는 듯했다.

결혼에 별 뜻이 없어 보이던 친구가 조만간 결혼한다. 친구는 애인도, 자신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주변에서 결혼을 만류하더라며 넌지시 내 생각을 물었다. 상대방에게 새겨진 폭력의 역사에 대해 듣고,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사랑을 시작한 커플이었다. 친구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상담 시간도 정기적으로 갖고 있다. 이들은 가슴을 후벼파는 말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둘만의 룰을 정립해나가며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같이 있으면 행복해?” 친구는 단번에 답했다. “행복해.” 우리는 마주 본 채 웃고는 다음 대화 주제로 넘어갔다.

요 며칠 이런저런 사랑의 모양을 보면서 나의 사랑 방식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됐다. 오랜 나의 지론은 사랑은 ‘빠지는 것’이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프롬은 사랑의 요소로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존경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고유의 개성을 아는 능력이며, 지식은 자신에 대한 관심을 초월해 다른 사람을 그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서 ‘사람’을 가족, 연인, 친구, 동물 등으로 치환해도 무방할 것이다. 취약함을 인정하고 드러낼 용기와 상대방의 취약함을 품어줄 품을 가질 때 비로소 사랑을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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