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고와 청룡기 야구 경기 도중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지역 비하 및 5·18민주화운동 폄하 의미로 구호를 외쳐 공분을 산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7월 1일 근조화환이 놓여 있는 가운데 학생들이 근조화환을 무너뜨린 후 둘러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선수들이 광주의 어느 고등학교 야구부를 조롱하는 응원가를 불렀다.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5월 18일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내건 ‘탱크데이’ 광고로 거센 불매운동에 직면한 직후였다. 영상 속 학생들은 광주 학생들을 겨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외쳤다. 그 영상을 보며 나는 십수년 전 어느 날이 떠올랐다.
2009년 5월 25일이었다. 이틀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몸을 힘겹게 일으켜 강의실로 향했다. 학생들이 둘러앉아 한국 문학에 관해 토론하는 인문대 전공 수업이었고, 상당히 유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와 달리, 어두운 기운과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내게 교수가 무슨 일이 있느냐며 말을 건네왔다. 나는 나라에 큰일이 있으니 당연히 마음이 무겁다고 대답했다.
은밀하게 소비되던 온라인의 혐오 문화는 선을 스멀스멀 넘어와 오프라인의 영역까지 잠식하고 있다. 혐오의 언어는 공적 공간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왔다. 그때마다 힘이 쭉 빠지는 듯한 참담함을 느꼈다. 동시에, 어쩌면, 조금씩 무뎌지기도 했다.
“그러게. 대통령씩이나 한 사람이 주가 떨어지게 무슨 짓이야.”
예상 밖의 응답, 그리고 몇 분간 이어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부동산 가격에 대한 불만 섞인 토론을 나는 오래 잊지 못했다. 그리고 다수 앞에 침묵한 나 자신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는 밈은 한국 온라인 혐오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가장 집요하고 상징적인 레퍼토리가 됐다. 그리고 그 후에도 잊을 만하면 비슷한 장면이 왕왕 되풀이됐다. 그 조롱은 특정 정치인을 향한 비난에 그치지 않고, 특정 집단, 특히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방식으로 번져갔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앞에서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말들이 돌았고, 5·18의 고통은 “홍어”, “폭도” 같은 지역 비하와 역사 왜곡의 언어로 폄하됐다.
은밀하게 암호처럼 소비되던 온라인 커뮤니티의 혐오 문화는 어느새 선을 스멀스멀 넘어와 오프라인의 영역까지 잠식하고 있다. 유가족의 단식농성장에서, 국회 회의장 안에서 그리고 생방송 대선 TV토론에 이르기까지 혐오의 언어는 마치 잽을 날리며 간을 보다가 끝내 빅펀치를 날리는 권투선수처럼 공적 공간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왔다. 그때마다 힘이 쭉 빠지는 듯한 참담함을 느꼈다. 동시에, 어쩌면, 조금씩 무뎌지기도 했다.
이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청소년은 성인들이 만든 세상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라는데, 우리는 대체 어떤 사회를 사는 것일까. 혐오 표현은 조롱의 대상만을 향하지 않는다. 그것에 노출되는 모두가, 그리고 사회 전체가, 그 폭력으로부터 깊은 내상을 입는다. 우리는 그저 무뎌져서는 안 됐다. 그러려니 방심한 사이, 스포츠 경기를 즐기러 찾은 어느 경기장도, 편안하게 커피 한잔을 마시러 들어간 커피숍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알기 위해 TV를 켠 우리 집 안방마저, 혐오로 오염돼 악취가 진동하는 공간이 돼버렸다. 여기가 마지노선이라고 사회가 선을 긋지 않으면, 혐오는 결코 스스로 치유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연대와 협력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겠다는 결심 또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지현영 서울대학교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