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있는 사람. 정효진 기자
독일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소설집 <깊이에의 강요>에는 ‘문학적 건망증’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과거에 내가 읽은 책인데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 ‘문학적 건망증’이라는 여섯 글자가 위로를 주곤 했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 있다”고, 내용은 까맣게 잊어버렸어도 내 안에 무언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독서는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다고. 대학 다닐 때는 소설 읽을 시간에 취업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해야 하나 불안했던 것도 같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대학을 졸업한 기자도 어떤 행동이든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내재화했기 때문이다.
쓸모가 떨어지는 학문으로 취급받던 인문학이 중요해졌다고 한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인재를 끌어모으는 빅테크 기업가들이 앞장서서 내놓은 전망이다. AI 시대에 기술을 발전시키고, 발전된 기술로 더 나은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고, 기술에 종속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비판적 사고와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고, 그 능력은 인문학을 통해서 길러진다.
‘AI 시대가 다시 불러낸 인문학’에 관한 취재를 하면서 남은 질문은 ‘그렇다면 인문학적 소양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였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토론 모임에 나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해보고…. 그런데 지금 치열한 대학 입시와 냉혹한 취업 시장을 생각해보면, ‘학습’과 ‘스펙’을 채우기에도 빡빡하니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입시와 취업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평생에 걸쳐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교육정책을 바꾸고, 인문학 지원 인프라를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취재에 응한 철학과 교수들은 “어떤 제도로 인문학적 토대가 커지진 않는다”, “그것은 인문학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지점은 있다.
최근 정부는 ‘AI 3대 강국’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산업계 지원뿐만 아니라 AI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AI 학과 신설, AI 교원 양성, AI 평생 교육 등. 이공계에서도 이런 정책이 곧 AI 강국으로 만들어주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현장은 조금이라도 바뀔 것이다. “AI 시대라서 인문학이 중요해졌다”는데, 인문학은 ‘위기’ 속에 그대로 둘 것인가.
김향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