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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인문학의 가치

입력 2026.06.16 06:00

수정 2026.06.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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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요즘 세대는 믿기 어렵겠지만 기자의 고등학교 시절엔 문과가 이과보다 문턱이 높았다. 기자는 이른바 ‘응팔’세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성적이 부족하면 이과에 가라. 문과에 가면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대학 가기 힘들다.” 정년퇴직을 앞둔 그 선생님은 자기 반 학생들의 이름도 모를 정도로 학습지도에 무관심했지만, 이 원칙만은 확고했다. 그는 성적이 애매한 학생들은 성향과 무관하게 이과로 내몰았다. 그가 드물게 보였던 열의였다.

대학 역시 문과 전성시대였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등장으로 없어졌지만, 서울대 법대는 지금의 서울대 의대 못지않았다. 경영·경제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학과였지만 사회학과, 철학과, 사학과, 국문학, 영문학 등 순수 인문계열 학과의 위상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학과들이 소속된 문과대는 어느 대학이든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다. 문과대 전공자가 아닌 기자는 모교에서 가장 고풍스럽고 멋진 건물로 문과대학을 꼽았다. 학교 앞에는 사회과학 등 각종 인문학 책을 파는 서점이 즐비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한동안 정신없이 살다가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는 단어와 마주쳤다. 문과를 졸업하면 취업이 어렵고, 실생활에서도 쓸모없는 학문 취급을 받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 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현상은 더 심화했다. 인문학 계열 학과들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상위권 대학은 예외지만, 철학 등 순수 인문학 학과들이 몇몇 대학에서 정원 미달과 학과 폐지로 내몰리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대학가의 인근을 지켰던 그 많던 책방은 자취를 감췄다. 10여년 전 ‘인문학 열풍’이 잠시 불었지만,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요즘 말로 그저 ‘힙’해 보여서 반짝인기를 누린 정도다.

첨단기술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 이런 세태를 탓할 수 없지만 씁쓸한 지점이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인문학은 인간의 쓸모,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중심을 잡도록 돕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인문학을 공부해야 나란 존재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바른 기준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인문학에 대한 경시는 결국 우리 스스로에 대한 무시와 경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AI 시대를 맞아 인문학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한다. AI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선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이 때문에 인간 본질을 탐구하고 비판적·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철학 등 인문학의 가치를 다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주간경향 1683호의 표지 이야기는 AI 시대에 철학 등 인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문학의 부활’을 자신 있게 예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인문학의 쓸모에 대해 사회가 함께 고민해볼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이용욱 편집장

이용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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