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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젠슨’ 신드롬 가고 ‘엔비디아 세금’ 온다

입력 2026.06.15 06:00

수정 2026.06.1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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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AI 인프라 늘릴수록 엔비디아가 더 큰 수익”

“팀 엔비디아 동맹 발판삼아 탈 엔비디아 전략 짜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6월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하며 각종 간식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6월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하며 각종 간식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을 이끄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6월 5~9일 방한하는 동안 한국은 곳곳이 들썩였다. 황 CEO는 엔비디아의 뿌리였던 게임 업계 방문을 시작으로 은둔의 대기업 총수들을 대중 앞에 내세우며 구름 인파를 몰고 다녔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삼겹살과 소주, 치킨으로 ‘먹방 세일즈’를 하며 스스로를 ‘K젠슨’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이번 방한을 통해 남는 장사를 했다. 공급 측면에서는 AI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하는 기업에 확약을 얻었고, 수요 측면에서는 피지컬 AI와 AI 인프라라는 미래 먹거리까지 알뜰히 챙겼다. 이 과정에서 황 CEO는 엔비디아의 최신 ‘풀스택’(Full-stack· 칩과 소프트웨어 등을 함께 묶은 AI 인프라 패키지)을 한국의 대기업들이 채택하게 만들면서 영업의 저변을 넓혔다.

한국도 AI 산업의 핵심 거점 기지로 눈도장을 찍었다. 황 CEO가 방문한 국내 기업들은 엔비디아와 파트너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글로벌 AI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황 CEO는 6월 9일 출국길에서 ‘엔비디아와 한국 기업 양측이 얻은 것’을 묻는 질문에 “한국에 대한 엔비디아의 기여는 AI 생태계를 조성한 것이다. 한국의 기술 없이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우리는) 함께 산업을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의 답변에는 국내 AI 산업의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담겨있다. 엔비디아의 성장을 위해 한국 기업이 필요하지만, AI 산업에 대한 패권은 생태계를 구축한 엔비디아에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AI 팩토리·피지컬 AI 협력 제안

이번 방한의 협력 키워드는 AI 팩토리와 피지컬 AI로 압축된다. 기존 데이터센터가 데이터를 저장·처리하는 공간이었다면, AI 팩토리는 칩·네트워크·전력을 통합해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부터 서비스 구동까지 담당하는 차세대 인프라다. SK텔레콤과 네이버는 엔비디아 인프라를 기반으로 AI 팩토리를 구축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 기업이 엔비디아와 AI팩토리를 만들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비용 리스크도 상존한다. 엔비디아의 풀스택을 구매하고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AI 업계에서는 이를 ‘엔비디아 세금(Nvidia Tax)’으로 부른다. 칩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의 플랫폼을 사용할 때 기회비용처럼 내는 막대한 지출과 종속구조를 표현한 것으로, AI 사업을 하려면 ‘안 낼 수 없는 돈’이라는 의미다. 값비싼 엔비디아 장비로 AI 팩토리를 구축한 후 한국 기업이 AI 서비스로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엔비디아는 AI 팩토리를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피지컬 AI에 대한 협력도 제안했다. 피지컬 AI는 디지털 공간에서 정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AI를 넘어 로봇과 차량, 공장 설비 같은 물리적 기기가 AI를 기반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술이다. 황 CEO는 이번 방한에서 차세대 성장 모델로 피지컬 AI를 앞세우며, 제조업에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을 핵심 파트너로 지목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홍대 ‘삼소(삼겹살·소주)회동’과 두산 홈경기 프로야구 시구, 게임 업계 방문 등은 피지컬 AI 동맹을 염두에 둔 행보다. AI 업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노하우와 데이터를 가진 기업들(현대차·LG·두산 등)을 ‘깐부’로 흡수해 피지컬 AI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 업계와의 만남은 가상현실 속 로봇, 자율주행, 스마트공장이 학습하고 검증하는 실험장으로서의 미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이런 협력 방안이 모두 엔비디아의 컴퓨팅 자원이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AI 서비스와 인프라를 확장할수록 엔비디아에 대한 기술 의존도가 높아져 그 길목에서 엔비디아가 더 큰 수익을 챙기게 되는 구조다.

‘K젠슨’ 신드롬 가고 ‘엔비디아 세금’ 온다

AI를 지탱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을 엔비디아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 속 국내 기업의 엔비디아 의존이 AI 인프라 플랫폼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과거 소프트웨어 독점 플랫폼인 ‘쿠다(CUDA)’를 무료로 배포해 AI 개발자들이 엔비디아 GPU 생태계에 종속된 것처럼 차세대 산업인 피지컬 AI에도 같은 전략을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지금은 일단 팀 엔비디아 등에 올라타 글로벌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면서도 “다만 엔비디아 생태계 속에서 구축된 인프라는 향후 기업들이 독자적인 칩 등을 개발해도 쉽게 수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어 ‘탈 엔비디아’에 대한 준비도 동시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새로운 의존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기술과 플랫폼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며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한국은 엔비디아의 비싼 GPU를 성실하게 사주는 소비자나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조업 데이터 주권 갖고 협상해야

실제로 앞선 모든 기술 혁신의 승자는 부품 공급자가 아닌,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는 곳이었다. 독자 기술과 플랫폼을 갖추지 못하면 해당 기업들이 만든 질서 안에 갇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AI 산업을 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GPU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 주문형 반도체(ASIC)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준희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장은 ‘한국 중심의 AI 풀스택’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 회장은 이번 젠슨 황 CEO의 방안에 대해 “엔비디아가 자신의 운영체계 안에서 모든 것을 락인시키려는 애플이 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가 GPU 독점력을 바탕으로 로봇 등 물리세계와 결합하는 피지컬 AI 분야까지 지배하려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GPU는 엔비디아 기술을 써도 데이터는 국내에 두고 AI 모델과 서비스 개발은 정부와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미국과의 외교 문제로 협업을 할 수 없는 중국 외에 한국은 제조 데이터와 인프라를 갖춘 유일한 시장인 만큼 데이터 주권을 갖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 중심의 질서를 넘을 수 있도록 한국형 AI 풀스택 전략을 짜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피지컬 AI 핵심 인프라의 외산 의존 탈피를 위한 국산화 선도사업에 뛰어들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6월 9일 젠슨 황 CEO 출국 후 월드모델과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등 원천기술을 자체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월드모델은 피지컬 AI가 가상 환경에서 충분한 사전 학습과 검증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로 한국은 해당 플랫폼을 대부분 외산에 의존해왔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피지컬 AI는 한국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국가적 핵심 기술”이라며 “피지컬 AI 핵심 인프라를 독자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피지컬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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